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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Nov 15. 2024

사진은 남아서 무얼 하나

좋은 사진을 찍는다는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캐나다에 한 달 정도 다녀왔다. 홈스쿨링을 하는 한 가정에 홈스테이로 갔었는데, 핸드폰도 카메라도 없이 한 달을 보냈다. 나의 초등학생시절 최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행이었는데 사진이 한 장도 없다. 홈스테이를 하던 집 엄마가 찍어준 사진 몇 장을 DVD에 구워주었는데, 그것마저 찾을 수가 없었다. 홈스테이를 하며 정말 많은 걸 보고 경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은 붙잡을 수 없이 흐릿해져 갔다. 그 어린 나이에 그게 억울해서 엄마를 앞에 두고 울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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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그때부터였나. 사진 한 장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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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여행을 준비하며 캐리어가 필요했다. 집을 뒤지다가 장롱 위에 캐리어를 발견했다. 캐리어는 앨범과 사진으로 가득했다. 아빠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처음 맡았던 반과 찍은 사진, 엄마의 졸업사진, 기억도 안 날 만큼 어렸을 때 나의 사진까지. 평소엔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가던 추억들은 사진을 통해 되살아나 이야기가 되었다. 사진은 남아서 과거와 현재를, 부모님과 나를 이어주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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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좋은 사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좋은 사진이 아닐까. 미국여행을 오면서 작고 오래된 콤팩트 카메라 하나를 샀다. 후지 X10. 굉장히 오래된 카메라에 폰 사진정도의 화질이지만 디자인은 나름 예쁘게 생겼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며 내 사진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아직 서툴지만,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겨서 빛을 조절하고, 구도를 찾고, 색감을 조정하면서 이 사진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고민해 본다. 앞으로 이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할 날을 기대한다.


뉴욕 센트럴파크


p.s

 이 글은 제가 작년 여름 미국 동부여행을 시작하기 전 쓴 글입니다. 2달 반 정도 다녀왔는데, 보스턴을 시작으로 나이아가라, 뉴욕까지 여행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들과 미국을 여행하며 200페이지 정도 적은 여행기들이 있는데 사진들과 함께 하나씩 브런치에 풀어보려고 합니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려 볼게요.

 여러분들에게 사진은 무슨 의미인가요?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도 각자에게 모두 소중한 사진 한 장쯤은 있잖아요. 근사한 카메라로 사진이 아니더라도, 휴대폰 갤러리에 저 위에 박혀서 보지 못했던 그 사진들을 꺼내 보는 건 어떨까요.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순간, 나를 담은 셀피까지 모두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힘으로 쓰기 위해 남긴 소중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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