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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Jan 22. 2021

소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칼 뉴포트 <디지털 미니멀리즘>

밖에서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은 항성 이어폰을 끼고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있다. 혹자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이 외부 공간에서 나만의 상징적인 공간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소리의 차단, 혹은 나만 듣는 소리를 통해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공간과 시간을 갖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딱히 찾아볼 정보나 콘텐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등의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서있는 것보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어색함을 덜어내고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내는 편리한 방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길을 걷거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지하철 두 세 정거장을 짧게 이동하는 때에 되도록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는다. 몇 분 안 되는 그 시간에라도 생각을 정리하거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호흡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남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선호하는 바가 다를 테니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개인 취향과 선호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스마트폰과 SNS로 인해 사람들의 소통 방식이 바뀐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폰 1세대가 출시된 것이 2007년이니까 벌써 13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사람들은 전화 통화보다는 카카오톡으로 더 많이 대화하고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소통을 강요당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 뒤에 숨어 더욱 소극적이고 중독적인 소통의 방식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미디어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들. 우리는 그 속에서 정작 우리가 찾고자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찾은 정보들 중에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그 정보가 가진 의미는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과 글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손이 멈추는 대로 클릭을 하고 콘텐츠를 소비할 뿐이다.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말은, 우리의 뇌가 눈에 비친 콘텐츠를 받아들인 이후 분석도 선택도 기억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물론 유튜브를 통해 진지하게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정치, 경제, 영화, 책 리뷰 영상과 같은 정보 중심의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자신이 빈둥거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위안의 수단으로써, 다시 말해 그 순간의 지적 허기를 잠시 채웠다 잊혀지는 정보로써 대하는 경우, 이 역시 '소비'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그것이 인포테인먼트라고 하는 장르의 허구성이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에 중독되어 진정한 소통의 방식을 잃었다. 고독과 성찰을 잃었고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세대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조차도 아이폰을 처음 출시했을 때 아이폰이 소셜미디어의 중계기로 전락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사실 아이폰의 핵심기능은 인터넷이 아니라 아이팟의 음악 재생 기능과 통화기능이라고 생각했고, 초기에 서드 파티 업체들이 만드는 앱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걸 허용하면 멍청한 프로그래머가 코드를 잘못 짜는 바람에 사람들이
급히 전화를 해야 할 때 통화가 안 될 수도 있어."


그런 면에서 스티브 잡스가 현대인들을 스마트폰 중독에 빠지게 한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 마크 주커버그는? 2012년 페이스북을 상장하면서 주커버그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페이스북은 세상을 좀 더 개방적이고 연결된 곳으로 만든다는
사회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소통의 중요성에 공감했던 현대인들 중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과 더 많이, 그리고 가까이 연결될 수 있다고 믿었던 우리가 이제 와서 마크 주커버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도 힘들어 보인다. (다만 나는 그가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을, 망가진 이 사회를 바로잡는 데 사용하도록 모두 환수했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을 갖고 있기는 하다.)


자신의 발명품이 소셜 미디어를 소비하는 중계기로 전락할 것이라 예상치 못하고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를 비난할 수도 없고, 주커버그의 생각에 동조했던 우리가 이제 와서 '다 너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 결국 문제는 우리다.


책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기술 과부하에 걸린 현대에 어떻게 디지털 도구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정보의 중독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구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만든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편리하고 더 좋아진 세상에서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뉴스, 소문, 이미지의 폭격이 우리를 광적인 정보 중독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망가졌다. 당신도 망가질지 모른다.


중독은 해로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반복에 대한 강렬한 동기를 제공하는 약물이나 행동에 빠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저자는 소셜 미디어 중독도 도박 및 약물 중독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소셜 미디어의 피드백은 예측 불가능한 것인데, 이는 도박이 주는 피드백과 동일한 메커니즘이며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공되는 보상이 훨씬 더 유혹적이고 실제로 뇌에서 도파민을 더 많이 분비시킨다고 한다.


알터는 사용자들이 어떤 것을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올릴 때마다 일종의 '도박'을 한다고 지적했다. '좋아요' (혹은 하트나 리트윗)를 받을까, 아니면 아무 반응 없이 묻힐까? 전자는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한 엔지니어가 말한 '유사 쾌락의 밝은 종소리'를 내고, 후자는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어느 쪽이든 결과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중독에 대한 심리학이 알려준 대로 이것이 포스트를 올리고 미친 듯이 확인하는 일을 자극적으로 만들어준다.


다른 사람이 올린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는 것이 나름의 소통이며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믿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아주 낮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런 피상적인 소통을 하느라 우리는 외부에서 입력되는 정보에서 벗어나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고독 결핍의 시대라고 했다. 성찰보다 소통을 중시하는 태도 때문에 감정을 다스리고 복잡한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일, 도덕적 용기를 갖는 일, 그리고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다지는 일에 우리는 소홀할 뿐만 아니라 무능하다.


저자는 즐겁고 지적인 삶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 "디지털 정돈 과정"을 제시했다.  

  1.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지 않은 부차적인 기술에서 벗어나는 30일의 기간을 설정한다.  
  2. 이 기간에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활동과 행동을 탐구하고 재발견한다.  
  3. 이 기간이 끝날 때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여 부차적 기술들을 하나씩 다시 쓰기 시작한다.  
      각 기술이 삶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파악한다.


저자의 조언은 일단 스마트폰에서 소셜 미디어 앱을 삭제하라는 것인데, 나도 그의 조언에 따라 페이스북과 브런치 앱을 내 폰에서 삭제했다. 대신 유튜브는 남겨 두었는데, 내가 공부의 목적으로 보는 몇 개의 채널과 명상 및 음악 채널을 필요할 때만 직접 검색해서 보기로 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것을 그냥 보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소셜 미디어를 폰에서 제거한 이후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실천 지침으로 책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사수하고, 가끔씩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외출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저자는 오래 산책하고 친구와 (직접적인) 대화를 자주 하며, 양질의 여가활동과 사람과의 모임을 즐기라고 조언했다.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코로나의 시대에, 깊이 없는 소셜 미디어의 소통보다는 좀 더 친밀하고 확실한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훈련을 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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