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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Feb 27. 2021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교수의 프레임워크 연습

마이클 샌델 교수는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우리가 거래 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하면서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믿음은 신앙과도 같이 공고해졌다. 그에 따라 거래의 대상은 일반 재화를 넘어 우리의 삶의 영역 안의 거의 모든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공항과 놀이 공원에서 돈을 더 내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카풀(Carpool) 차량만 다닐 수 있는 전용도로(우리나라로 치면 버스 전용차선)도 돈만 내면 주행이 가능하다. 돈을 내고 진료 우선  예약권을 사면 로비에서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제치고 먼저 진료를 받을 수도 있는 나라도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돈을 주고 새치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어떤 것은 쉽게 용인되고 또 어떤 것은 논란을 일으킨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줄서기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 내 다양한 인센티브와 벌금제도 역시 도덕적 가치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금연이나 체중 감량을 돕기 위해 국가 기관이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도 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용돈을 주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원하는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면 이런 인센티브는 옳은 것일까?


이스라엘의 한 유아원에서는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또 과거 중국에서는 한 가구 한 자녀 정책(2016년 폐지됨)에 따라 한 자녀 이상을 낳으려면 20만 위안을 내도록 규제했었다. 이 벌금은 정당 한 것일까? 그리고 제대로 작동했을까?


이런 사례들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은 각기 다르다. 샌델 교수는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한 도덕적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논란이 된 문제를 불평등(공정성)과 부패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불평등(공정성)은 그 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거래의 당사자가 부당한 강요를 받지는 않았는지, 결정의 자유가 있었는지(경제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은 아닌지), 거래에 관련된 정보는 투명하게 제공되었는지를 살핀다.


부패의 관점은 그 일을 돈으로 거래하게 되면서 그 일이 가진 기존의 가치가 얼마나 훼손되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축을 통해 사안을 살펴보고, 그 거래를 통해 얻는 혜택과 훼손된 가치를 서로 비교해 보면 내가, 또는 이 사회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프레임워크를 활용해서 샌델 교수의 의견과 내 생각을 조금 담아 앞에 언급한 사례들을 분석해보았다.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지점에서 생각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 것임을 미리 밝힌다.


1. 공항과 놀이공원의 프리미엄 패스
2. 우선 진료권
3.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용돈 주기
4. 중국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5. 유아원에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게 벌금 부과하기


1. 공항과 놀이공원의 프리미엄 패스


돈을 더 내면 줄을 서지 않고 먼저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개해 두었고 강요한 사람도 없으니 최소한 불평등한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공공의 영역이었다면 줄을 서서 모두가 공평하게 받아야 할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으니 불평등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부패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서비스는 줄서기라고 하는 전통적 가치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줄서기는 돈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지불하고 얻는 혜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줄서기에 있어 사회적 의견은 시간의 지불과 돈의 지불 방식 모두가 수용 가능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같다. 여러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서비스의 가격 차별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적인 전략이 되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은, "네 차례를 기다려야지. 새치기는 나쁜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돈이 없으면 네 차례를 기다려야지. 돈 안 내고 새치기하는 건 나쁜 거예요."라고 가르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2. 우선 진료권


같은 새치기이지만 돈을 더 내고 우선 진료를 받는 경우도 공정할까?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 돈 있는 사람을 먼저 치료하기 위해 의사라고 하는 제한된 인력을 우선 배치하게 되면,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인력과 시간이 배정되지 않는 것이니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의 차별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명의 위급을 다투는 상황이 아닌 이상 돈을 더 낸 사람이 빨리 진료를 받는 건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다.


부패의 측면에서 볼 때 의료 시스템이 돈 있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우선순위를 주는 것은 그것이 가진 공공성을 훼손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의사와 병원도 개인의 영리를 추구할 권리가 있으므로 돈을 더 내는 환자를 먼저 치료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3.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용돈 주기


부패의 관점에서 아이가 독서를 보상이 따르는 일로 생각하게 되면서 독서라는 원래의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인센티브를 경험한 아이들 중 일부는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부모들은 당장 입시가 중요한데 한가한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4. 중국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벌금의 경우는 어떨까? 중국에서 20만 위안을 내고 아이를 더 낳는 부자들에게는 벌금이 단순한 요금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마치 자녀를 더 출산할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이상한 사업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가가 시행한 공공 정책 본연의 가치가 훼손된 사례다.

(참고로, 이 정책으로 인해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에 정책 자체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도시화와 여성의 사회 참여 증가로 출산율은 어차피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록 정부가 시행하는 공공 정책이지만 돈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에 비해서 극히 일부이며, 그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걸 문제 삼는 게 오히려 문제라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네 가지의 사례를 간략히 살펴보았는데, 불평등과 부패의 두 축으로 각 사례를 살펴보게 되면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이 사회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에 언급한 '유아원에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게 벌금 부과하기'의 사례는, 학부모들이 이 벌금을 늦게 아이를 데리러 와도 되는 서비스 요금 정도로 생각하게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학부모들이 죄책감없이 기꺼이 '요금'을 내고 늦게 픽업하기 시작했고, 선생님들은 원치 않는 야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례의 분석은 각자에게 맡겨본다.


실제 이 책에서 샌델교수는 공리주의/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시장논리와 불평등/부패를 기반으로 한 도덕적 판단 논리를 대립시켜 설명했지만, 나는 단순하게 설명하기 위해 불평등/부패의 프레임워크만을 가지고 몇 가지 사례만 재구성해 본 것이므로, 관심있는 사람은 직접 책을 통해 더 깊이있는 분석을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을 읽으며 생각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이제 돈의 영향력은 우리 삶의 거의 전부를 뒤덮고 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위대해도 우리의 삶보다 더 위대할 수 없다. 인간으로서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가치들.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계속 사유해야 한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돈이 있어도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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