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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Mar 11. 2021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글쓰기에 변화가 필요한 때

[1]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멈칫했지만, 걸음을 멈출 시간도 없을 만큼 강의실은 작았다. 그 사이 난 강의실 맨 뒷자리까지 들어와 버렸다. 강의실의 문은 마치 극장의 상영관 입구와 비슷한 구조로, 안으로 완전히 들어서기 전에는 강의실 전체를 볼 수 없었다. 개미지옥을 닮은 강의실. 그 구조는 '일단 들어와!'라고 말하는 은근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입구가 강의실 뒤편에 있었다면 문 앞에서 망설이다가 발걸음을 돌릴지도 모를 남성 수강생들에 대한 수년간의 노하우가 담긴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글쓰기 강좌에 남자가 많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는 게 더 불편했다. '내가 무슨 사춘기 중학생도 아니고, 남자가 있든 없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래, 그건 다 호르몬 부족 때문이다.  남자가 나이를 먹으면서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한다는데, 육체적 기능저하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나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별 일도 아닌데 눈물이 난다. 점점 더 소심해지고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런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와이프도 친구도 아닌 넷플릭스다. SF, 액션, 미스터리물의 추천은 점점 줄고 휴먼, 멜로, 다큐 등의 장르 비중이 늘고 있다. 예전에 좋아했던 SF와 액션물을 골라 잔뜩 '찜' 리스트에 추가해 봐도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은 내 취향의 변화를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찜만 해 놓고 안 보는 걸 모를 줄 알고!'


탈모, 노안, 복부비만, 무릎 통증과 같은 육체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필요한데, 내 정신적 변화를 감지한 디지털 미디어는 기다려주지도, 조심스럽지도 않다. 훨씬 더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방법으로 그 변화를 받아들이라고 위협한다.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에 진 걸까. 그걸 모르겠다. 졌다는 느낌만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 中>


[2]


글은 쓸수록 는다고 하는데...


요즘은 글이 지독하게 안 써진다. 여성 호르몬이 넘쳐 정신 상태까지 변하고 있는 지경이면, 보통의 여성이 가진 풍부한 감수성과 언어 능력이라도 조금 생기면 좋으련만, 그런 선물은 거저 주어지진 않는 것 같다. 글 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입력이 부족해서 출력이 안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책 읽는 양을 늘려보아도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기는커녕 있던 생각도 다 사라지고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어쩌면 원래부터 비어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주절주절 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가 끄적거린 글들이 쓰레기처럼 하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학습의 과정에서 정체기를 겪는 것을 플래토 현상(Training Plateau)이라고 한다. 오래전 한 인터뷰 영상에서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가 심한 정체기를 겪는 악기 전공생들에게 한 조언이 생각났다. 야노스 슈타커는 플래토를 단순한 의미의 반복된 정체기로 설명하는 대신, 실력이 계단식으로 상승하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해 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다음 계단의 높이는 훨씬 더 높아져서 그다음으로 도약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고 했다. 그에 비례한 연습과 끈기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미 다음 단계의 가장 아랫부분까지는 도달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워풀하지만 섬세함은 부족했던 그의 연주보다 더 따뜻한 조언으로 들렸다.


글이 잘 안 써지는 요즘의 상황이 슈타커가 말한 대로 내가 한 계단 올라섰기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글쓰기의 실력이란 것이 어떤 지향점을 향해 향상되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글의 수준과 생각의 빈약함은 깨닫게 되었으니 그런 면에서 글에 대한 안목은 한 계단 올라섰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글감이 마르고 생각이 부족하니 남의 책과 영화의 내용을 인용하는 양과 빈도가 늘었다. 아주 많이. 그런 식으로라도 글쓰기를 지속하며 정체기를 극복해 보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나의 내면은 말라버리고 껍질만 남은 느낌을 받는다. 변태를 완성하지 못하고 고치 안에서 죽어버린 나비 아니, 나방처럼 말이다.


첫 수업, 화면에 쓰인 "인용"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선생님은 본인이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이며 인용이 많은 글은 오히려 깊이가 없게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감추고 있던 치부가 들춰진 듯 당황했다. '어떻게 알았지?'


글을 보는 안목과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정작 인용에 기대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으니 큰 일이다.

'선생님, 도와 주실 거죠?'


[3]


선생님은 지적질 위주의 수업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 오직 딱 한 가지에만 능했는데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살인자의 기억법 中>


살인자는 살인에 능하고, 나는 지적질에 능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꼰대들의 공통적인 성향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꼰대들은 지적질을 통해 자신이 어른임을 증명하려고 한다. 


"야, 앞 페이지로 돌아가 봐. 뭐야, 앞에 있는 워딩하고 뒤에 있는 숫자하고 안 맞잖아!"

"앞에 워딩은 목표대비를 언급한 거고... 뒤에 있는 숫자는 전년대비인데요."

"그럼 표시를 똑바로 하던가. 시작하자마자 강판당하고 싶어?"


회사에서 보고서 리뷰를 할 때의 흔한 대화의 모습이다. 며칠 밤을 새워 준비한 보고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강판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어딘가에서 몰래 모여 교육이라도 받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막말에 대한 변명은 언제나 한결같다. "다 너 잘 되라고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네가 이해하고 기분 풀어."


이런 식의 무례한 대화가 가능한 이유는 자기 자신에 너무 매몰되어 타인을 의식하지 못하는 공감 무능력 상태에 빠진 때문이다. 혹시나 내가 이런 꼰대가 되지나 않을까, 나는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고 살아왔다. 하지만 꼰대가 되는 걸 피할 수는 없나 보다. 나는 무례하고 과격하지는 않으나, ‘비겁하고 야비한 꼰대’가 되었다.


3년 전, 마케팅 지원업무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자리였다.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 하염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있던 차라, 이번에는 실력은 좀 부족해도 성실하기만 하면 그냥 뽑자는 생각이었다.

"당장 일손이 달려서, 일단 제 선에서는 합격입니다. 그런데 사장님 면접은... 미안한 얘기지만 설득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왜 저희가 한ㅇㅇ 씨를 채용해야 하는지를,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저한테 설명해 보세요. 몇 번 다시 해도 괜찮습니다."


지원자는 한두 번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수십 번 면접을 봤지만 눈물을 흘리는 지원자는 처음 봐서 몹시 당황했다. 함께 배석했던 90년생 직원은 내가 말은 차분하게 했지만 눈 빛에 살기가 가득했다고 비난했다. 이런, 살기라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 본 회사 지원자에게 내가 화풀이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당장 필요한데, 그렇다고 경험과 실력이 부족한 사람을 뽑을 수는 없는 난감한 상황에 짜증이 나서 사장님을 들먹이며 지원자를 괴롭힌 것이다. 비겁하고 야비한 살기였다.


글쓰기의 플래토에 빠져 짜증이 가득한 꼰대가 글쓰기 수업에서 다른 수강생에게 지적질을 남발하는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대신 내 글에 대한 지적질은 겸손한 자세로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다짐한다. 이 다짐에 비겁하고 야비한 살기 같은 건 없다. 진짜다.


[4]


나이를 한 두 번 먹어 본 게 아닌데, 아직도 나이 먹는 게 익숙하지 않다. 몸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아무도 아닌 Nobody가 되어 가는 게 낯설다. 하긴 어떤 나이든, 그 나이는 처음 살아보는 것이니 낯설 수밖에 없다.


남자들은 듣지 않는 강좌를 신청한 내가 낯설고, 인용에 의지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내 빈약한 글솜씨와 얕은 생각이 낯설다.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내가 어느새 비겁하고 야비한 꼰대가 되어 버린 현실이 낯설고, 그런 내가 남들에게 폐를 끼칠까 두렵다.


나는 글쓰기 수업 하나 듣는 걸 가지고도 이렇게 걱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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