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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de Mar 20. 2023

분노 - 너와 나 분리하기

[어감] 어색한 감정 시리즈


 2019년부터, 5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다. 남자친구는 나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좋아해 줬고, 나도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을 사랑한다. 지금도 행복하게, 서로를 존중하고 의지하며 잘 만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연애가 그렇듯, 순탄치만은 않았다. 스무 살 때부터 관계를 이어오다 보니 그 과정에서 나의 정신적인 성장과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었다. 오늘의 어감은 '분노'이다.


 연애 초반, 남자친구의 엄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 집안 배경 그의 그것에 비해 부족했으며, 학력도 만족스러워하지 못하셨다. 결국 그들을 처음으로 대면하는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던 날, 그의 가족은 날 크게 낙담시켰고, 그때부터 나와 남자친구를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스멀스멀 고개 내미는 자격지심과 분노. 이런 폭발적이면서도 잔잔하게 내 무의식 속에 깔리는 굴욕적인 감정이, 사랑스러운 마음만 가득해도 부족한 연애 중 생길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내가 가지는 내 자아상, 내 환경, 내가 생각하는 남자친구에 대한 생각. 여러 곳으로부터 오는 복합적인 감정들은 스스로를 비하하며 마음으로 자학하는 큰 이유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이유로 연애 초반에는 나 자체, 내 환경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쓰나미처럼 몰려와 그때는 분노인 줄도 모르고 나를 혼내기 일쑤였지만 그것은 명백한 분노였다. 지금에서야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의 가족에 대한 말이 나오면 일종의 발작버튼이 눌린 것처럼 당혹스러워했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나를 비하하기 위함이라는 피해의식을 가졌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나며 이 사건과 감정을 여러 차례 돌이켜볼 수 있었다.  상처를 받은 것은 ‘내 감정’이었고, 남자친구의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그녀의 감정’ 일뿐이었다. 내가 남자친구와 비교하게 된 감정은 그녀가 나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내가 남자친구나 그의 엄마에게 분노를 느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온전히 ‘내 감정’이었다. 당시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의 감정’은 나의 통제 하에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었지만, 실망하고 끊임없이 자책하며, 큰 우울감과 자격지심을 느끼도록 한 ‘내 감정’은 그 누구도 아닌 내 통제 하에 있었다. 남자친구와 3주년쯤 되었을 때, 그니까 그 일이 있고 나서 2년 정도가 지났던 그때에서야 나는 그녀와 나를 분리해 냈다.


 누구도 진정으로 내 감정을 돌봐줄 수 없다.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내가 상처를 돌아보면서 굳이 스스로 상처를 내고 받을 이유가 없다고 느끼며 생각을 재정립하니, 어느 날 정말 괜찮아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려 2년이 걸리고 나서야 그랬다. 이 전에 남자친구가 엄마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문득 두려움에서 나오는 분노가 들었었지만, 이후에는 큰 감정의 동요 없이 그의 말에 공감하고 경청해 줄 수 있었다. 비로소 그때 ‘해방’의 감정을 느낀 것 같다. 5년 차가 된 지금은 그의 가족들도 그 상황에 대해 미안해하며 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남자친구와는 그 과정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얘기했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소통하며 건설적인 미래를 그려 나가는 사이가 되어주었다. 내 꿈과 미래가 중요한 만큼 남자친구의 그것도 중요해졌고, 더욱 행복하고 단단한 연애를 한다고 느껴진다.









 이 경험을 통해 분노가 어떻게 나의 연애와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다.

 먼저, 분노는 필수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 분노가 마음속에서 고개 내미는 것을 회피하고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노를 직면함은 분노로 인해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분노를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 분노가 나의 행동을 결정하지 않도록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분노가 내 마음속에 생겼음을 인정하고, 차가운 머리로, 원인 분석과 내 통제 범위를 확인하고, 감정 재해석을 시도해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원인 분석을 통한 자기 수용과 재해석은 분노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어려운 감정을 직면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이런 감정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보는 것이다. 이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조절하고, 내 통제 하에 있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두면서 재해석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분노를 잠재우고 스스로가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물론 이 어색한 감정을 마주하는 행위는 쉽지 않지만, 뭐 어때. 감정은 다 그런거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목사인 라인홀드 니부어의 말이다.


-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serenity)을,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courage)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wisdom)를, 저에게 주시옵소서.


 우리는 이 복잡하고도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나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 과정에서 오는 다양한 생각들을 비롯한 감정들은 우리를 낙담시킬 때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시야를 바꿈으로써 감정에서 헤어나와 아주 깨끗하고 맑은 진실을 마주볼 수 있다. 그 진실은 우리에게 '자유'라는 선물을 준다.

 

 난 이 시리즈를 쓰며 진정 자유롭고 싶다. 이 글을 찾은 여러분도 그러하길 빌며. '어감', 꽤나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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