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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de Sep 12. 2023

용서 - 용서는 결국 용기

[어감] 어색한 감정 시리즈



 용서는 분노의 다른 형태 같다. ‘용서’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개인적 에피소드가 이 시리즈에서 ‘분노’에 작성한 내용인 것을 보면 그렇다. 마치 분노가 첫 번째 단추부터 세 번째 단추까지 확 풀어버리는 것이라면, 용서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세 번째 단추를 성공적으로 잠궈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어떤 분노를 유발하는 현상으로부터, 나를 멀찍이 떨어트려 보는 것. 나로 하여금 분노를 일어나게 하는 것, 나의 분노, 그리고 나. 이 세 가지를 분리해서 관찰해 보는 것이 용서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용서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얼마 전에 몸소 느꼈다.


 사실 어감 시리즈 중 ‘너와 나 분리하기’에서 남자친구의 어머님을 대상으로 작성했었다. 그때는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잘 용서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에 나는 거의 3년 전 그 일로 또 남자친구와 다투었다. 여전히 나는 술을 마실 때면 울면서 그때 내가 어머님으로부터 받았던 수치와 모욕감, 무시의 상황을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도 푸념처럼 늘어놓았다. 나도 속상했고 남자친구도 속상해했다. 난 정말 그 사람을 용서했다고 생각했고,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마무리되진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을 진정 용서할 수 있을까? 심리학에서는 어떤 공포의 대상을 극복하려면 그것을 마주 보지 않은 상황에 안주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계속 부딪혀보라는 얘기다. 나에게 분노 공포 화를 불러일으키는 그 대상을 외면해서 그것을 더 키우지 말고. 다가가서 만져도 보고 때려도 보고 하면서 그것을 작게 만들라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그것은 내가 마주하지 않으면 내 뒤에서 더더욱 커져 내 상상 속 거대해진 그림자로 내 시야를 가릴 뿐이다. 결국 용기다. 용서는 마침내 그 대상을 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겠다는 용기 같다. 용서에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용서가 도덕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서를 하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혐오하며 용서를 미루는 자신에 대해서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용서하기로 결심했다면,



난 그 대상을 용서하기로 진정 결심했는가? (강박적 사고가 아닌가?)


용서를 하는 과정에 놓여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용서를 할 용기조차 가지지 않았는가?





나는 내가 어머님을 용서하는 중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며 용서의 속성을 재정립한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용서하기로 진정 결심하기까지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분노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감정은 생각하는 습관까지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용서 그리고 용서할 용기를 갖는 것은 많은 주의력과 인내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을 용기를 가진다면 진정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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