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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de Sep 12. 2023

수치 - 수치심을 어떻게 사용해 볼까?

[어감] 어색한 감정 시리즈


 작년 여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연구실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세 달 정도의 기간 동안 내가 참여한 연구 프로젝트는 팀으로 진행되었고, 다른 연구보조원들 중에서도 첫 타자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사전 미팅에서는 실험 진행 방법과 연구의 목적 등을 배웠고, 그 후로부터는 박사님+대학원생+연구보조원 이렇게 세 명이 팀을 이루어 시간 별 실험을 수행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사전 미팅이 끝나고 2~3주 뒤부터 해당 랩실에서 실험을 시작했고, 당시 다른 연구보조원들 중에서도 첫 타자로 시작했었다. 본격적인 실험 전 다른 대학원생분께서 ‘오늘은 아마 그냥 지켜보며 어깨너머로 배우면 될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상황이었기에, 지시서 외의 것들을 배우는 날이겠거니 하며 잔뜩 긴장한 상태를 조금 풀고 있었다.


 그때 나와 팀을 이룬 대학원생 분께서 오더니 대뜸 혼자 해보라고 했고, 그 때문에 급격히 긴장한 상태로 일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덤벙대고 어리바리한 내 모습에 그 대학원생은 곧 불만을 표시했다. “사전 미팅 때 불참하셨나요?” 물어보며 노골적으로 내 미숙한 행동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비난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사전미팅 날 뒤에 서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둘러대고 남은 프로세스를 마쳤다. 그때의 나는 매우 수치스러웠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배우는 입장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상황에서 감정을 제거하려 노력했다. 또 지금 당장 무사히 마쳐야 할 프로세스가 있으니 나를 비난하는 그 말 보다 실험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곧 그 대학원생이 나가고, 박사님과 나만 남아 실험을 마무리하는 중에도 내내 그 발언과 표정이 머리에 맴돌았다.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고, 돈도 받지 않고 내가 배우고 싶어서 온 상황인데 대뜸 실험이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서 저런 말을 하다니’하는 분노와 적개심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기서 무엇을 더 배워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식 실험을 마치고서도 박사님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여쭤보고 부탁드렸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 덕분에 연구보조원으로서 잘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박사님으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었다. 그날은 많이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그 대학원생 분과 다시 실험을 같이 하게 된다면 더 좋은 모습으로 일하고 싶다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이유 때문에 박사님께 더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더 호의적인 자세로 실험에 임했고, 박사님은 나에게 아낌없이 알려주시면서 이런 모습들을 좋게 평해 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치열하게 고민하던 나로서는 작은 응원의 말이 큰 힘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 대학원생분은 다른 날짜에 배정되어 나와 함께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 모든 실험이 끝난 후 뒤풀이 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었지만 가까운 자리에 있지 않아 더 이상의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날의 비난, 비판 상황은 분명 나에게 좋은 기회였다. 박사님은 더욱 신경을 써주셨고, 결국 4주간 진행된 본 과정의 마지막 실험에서는 박사님께서 ‘나보다 더 꼼꼼하게 수행하네~ 이제 정말 잘하시네요!’ 하는 말을 들으며 보조연구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뒤풀이 자리에서도 박사님과 가까이 앉아 다양한 얘기들을 할 수 있었다. 비난을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100퍼센트 비난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 비난을 받게 된 조금의 원인을 나의 모습 안에서 찾고 개선하려는 의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비난을 100퍼센트 수용하면서 타인의 생각을 내재화하여 스스로 자책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 사람이 나를 비난하고 싶어 했든, 더 도움을 주고 싶어 했든 그것 자체는 그렇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비난 혹은 비판, 조언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해 본 “비판 혹은 비난을 듣는 상황에서의 개인의 태도”에 대한 내용을 써보려 한다.



 먼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수치심이 드는 스스로의 기분을 인정하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왜 내가 이 말을 듣고 수치심이 드는가에 대해서 짧은 고민 혹은 이해가 필요하다. 내 상황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이 실험에 정말 무임승차하고 싶어서 대충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적극적으로 임하고 싶은 상황에서 이 사람이 조금 나에게 무례한 발언을 했는지 구분해 내는 작업이다. 후자라면 선 넘는 비난은 나에게 원인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 표면적으로는 대응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갖고 고민해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쉽게 자책으로 넘어가지 않아야 함이 중요하다. 내 진심을 내가 외면하는 것은 정말 비참하고, 그 비참함은 또 타인으로 하여금 ‘내 비난이 맞았어’와 같은 이상한 정당성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자책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 수치심을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다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냥 가볍게 넘어가는, 순간적인 대처를 행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 비난을 듣는 상황이 혼자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 즉시 감정을 스스로 풀고 시간을 쓰며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상황에는 그런 방식으로 내 감정에 포커스를 주어 처리하기 어렵다. 나 같은 경우 박사님과 피실험자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라도 쉽게 털어버려야 했고, 이러한 표면적인 대처도 내면의 마음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가볍게 털어냈기 때문에, 나에게 오는 비난 보다 상황의 본질이었던 ‘실험에 집중해야지’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 수치심과 억울함 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덕에 사회적인 상황에서 겉으로는 건강하게 방어하고, 해야 할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상황에서 받은 상처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본질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나에게 비난하며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던 그 사람에게 나의 정당함을 보이려 억지로 노력하는 것과는 다르다. 철저하게 상처받았을 내 내면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그 비난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해 보는 것이다. 나는 박사님께 더 열심히 질문하고 적극적으로 실험에 참여하며, 팀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효율적인 일 처리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방식으로 내 자존감을 회복했다. 그래서 실험에서 정해져 있지 않은 요소들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하고 의견을 조율했고, 그 모습은 박사님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보조원들에게도 나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실패와 오류를 인정하고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책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 이 에세이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또한 나를 수치감과 억울함, 속상함으로 밀어 넣는 외부의 사건들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더더욱 성장할 수 있는가와 같은 건설적인 프로세스를 마음속에 만들어 놓는 것이 정말 큰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항상 어떤 고통과 역경을 통해 성장한다. 편안한 상황에서는 그 상황을 즐기고 안심할 수 있지만, ‘성장’은 항상 고난의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를 믿고 당장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내 성장의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어떤 감정적인 고통이 오더라도 나에 대한 자신감을 한 번 더 성장시키고자 하는 기회로 나를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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