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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an 08. 2023

Covid 일지(4)

Covid 일지(4)


PCR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새벽에 출근해 송풍기(blower)로 눈 치우는데 반가운 문자. 아내는 80% 나아져 개를 데리고 뒷산에 올랐다. 흰눈에 노출된 고라니를 쫓느라 개는 체력이 방전되었다. 음성 나온 딸은 몸 상태가 영 아니란다. 저녁부터 밥을 따로 먹자고 한다. 저러다 양성이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낫다. 아프면 일이고 뭐고 낭패가 심하다. 드디어 우리집에 상륙한 Covid. 문설주에 피를 바르면 재앙이 비켜가는 모세 시대처럼 대책은 없을까. 저녁에도 기침 가래약과 타이레놀을 먹고 자야겠다. 나흘째 증상 없는데도 약을 먹고 잔다. 이래저래 먹는 약으로 안 먹어도 배부르다.


해 바뀌자 오른 기온 탓인지 진뜩한 눈은 낮이 되자 빗물처럼 녹아 번들거린다. 눈 맞은 정자를 사진에 담다 그만두었다. 전통은 얼어죽을. 정자는 양반의 문화다. 평민과 노비는 돌을 날라 기초를 쌓고 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올렸다. 양반과 자제들은 오뉴월 땡볕 아래 김 매는 풍경을 보며 시조를 읊조리고 중앙의 정치를 의논했을 터다. 문자를 배울 수 없는 평민의 문화는 초가집이거나 생활 도구, 판소리, 탈춤, 오광대놀이, 별신제 등이다. 빼어난 목청으로 민중의 울분과 애환을 달랬던 판소리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적신다. 가보로 전한 양반의 서책이 있었기에 역사를 톺아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평민과 노비는 죽어라 일을 해야 풀칠하고 살았다. 깨놓고 얘기하면 정자 문화의 전통은 양반의 전통이다. 그들의 시름과 평민과 노비의 시름은 얼마쯤 결이 다를까.


백성에 대한 수탈과 탐학에 저항하여 일어난 봉기는 고려 명종 때의 망이•망소이의 난을 비롯해 홍경래의 난과 19세기 중반 전국적인 들불로 일어났다. 이들의 목적은 신분 타파와 탐관오리 숙청이었다. 동학 혁명을 비롯하여 관군과 외세에 의해 꺾인 민중 봉기였지만 후대의 자손들에게 권력에 대한 저항 의지를 심어주었다.

창덕궁 비원(秘苑)에 세워져 임금과 중전의 산책길 쉼터인 부용정(芙蓉亭), 담양 소쇄원에 양산보가 지은 광풍각(光風閣),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에 세운 단청이 아름다운 한벽루(寒碧褸), 해남군 보길도에 지어 윤선도가 안빈낙도의 이상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던 세연정(洗然亭), 함양군 화림동의 큰 바위 위에 진시서가 세운 거연정(居然亭) 등 정자와 루의 실물을 재현한 모습은 운치가 있다. 양반과 평민, 천민의 문화는 격은 다르나 소중한 민중의 역사다. 밖으로 발화되지 못했지만 양반이라고 뭇생명이 서로 어울려 사는 대동 세상을 꿈꾸진 않았을까. 무릉도원이나 청하동천(靑霞洞天)이나 내남 없이 더불어 사는 세상 아니겠나.


쉬는 날과 야간 근무 때만 낮 수영을 한다. 세상이 달라져 한겨울에도 멱을 감다니. 물 감(感)이 그립다. 투 비트 발차기 연습을 위해 오랫동안 별렀던 센터스노클을 주문했다. 수영은 할수록 진화한다. 장거리 수영은 오픈 워터에서 하는 게 제격이다. 파도에 묻히고 너울을 타고 끝없는 대양으로 팔다리를 놀려 나아가는 꿈. 한나절을 가도 실은 접싯물에서 노는 격이다. 기껏 종재기에서 놀다 와서 바다를 다 아는 것처럼 허세부리는 게 인간이다. 나도 그렇다. Covid도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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