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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an 08. 2023

Covid  일지(5)

Covid 일지(5)


그예 일이 터지고 말았다. 목소리가 변한 딸이 인후통을 호소하더니 자가 kit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다음은 내 차롄가. 한 사람이 걸리면 온가족이 다 옮는다는데 나도 피해갈 수 없을까. 난 그동안 출근하느라 집에 없어서 Covid로부터 비껴나 있었는데 딸은 일을 그만둔 후 집에만 있었으니. 내일 모레 양일간 휴무다. 여름 같으면 텐트 짊어지고 물가에나 갈 텐데 한겨울이라 그것도 성가시다.


 몇 해 전만 해도 겨울 침낭을 메고 산과 들을 쏘다녔는데 갈수록 몸이 귀찮다고 한다. 청도 운문댐 아래 강자갈밭에서 자고 일어나니 텐트천정에 얼음 조각이 우수수 떨어졌다. 밤새 나온 입김이 얼어붙은 거였다. 밤으로 개울 건너 반짝이는 마을의 불빛은 얼마나 따스했던가. M면 강 건너 정자에서 한둔할 때는 밤새 고라니가 짝을 찾느라 꽥꽥댔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잤다. 뭇별이 깔린 까만 밤하늘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주남저수지의 석양에 물드는 갈대 길을 달릴 때 철새들의 합창은 지친 나그네의  귀를 즐겁게 했다. 통영의 아름다운 밤바다. 거제 내륙을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쉬워 결국 다시 거제도에 내려가 반년을 살았다. 홀애비 살림 반년만에 따스한 인연을 주렁주렁 달고 돌아왔다. 자전거로 안동영천 포항을 지나 영덕 영양으로 돌아오는 사박 오일 동안 브레이크가 고장나 긴 내리막에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나중에 일박했던 영양의 골짜기를 찾았는데 물이 정말 옥수였다.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과 솔숲이 오롯이 비칠 정도였다. 강산은 더렵혀졌지만 골짜기로 들어가면 맑은 물이 가는 숨통을 이어가는 게 느껴졌다. 울릉도 일주도로 자전거 여행 때 만난 산나물 삶던 할머니. 할머니가 주신 샘물을 달고 시원하게 들이켰다. 할머닌 아직도 무탈하신가. 푸른 바다에 점점이떠 있는 고깃배를 보면서 삶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이구나 생각했다.


Covid는 지난 주 칠만을 헤아리더니 이번 주는 4,5만을 오르내린다. 끝나지 않은 바이러스의 창궐은 일상이 되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더 독한 놈이 나타나면 인류의 능력은 한계에 달할 지 모른다. 여우를 피하니 호랑이를 만나는 꼴이다.

 전쟁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반도의 민중은 정권에 따라 남북 호혜의 기회를 잡기도 놓치기도 일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핵무기는 핵전쟁을 억제한다. 핵의 가공할 위력 때문이다.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의 물꼬를 터도 시원찮을 마당에 선제 타격이니 확전 불사니 하는 말들은 무책임한 망발에 불과하다. 정작 칼자루는 남의 나라에 맡겨놓고 으름장을 놓는 건 비굴한 정신 승리에 다름 아니다.


나는 경술국치 당시 순종의 조서(詔書)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백 년 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어찌이리 닮았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짐(朕)이 동양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 일 양국의 친밀한 관계로 피차 통합하여 한 집으로 만드는 것은 상호 만세(萬世)의 행복을 도모하는 까닭임을 생각하였다. 이에 한국 통치를 들어서 이를 짐이 극히 신뢰하는 대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讓與)하기로 결정하고 이어서 필요한 조장(條章)을 규정하여 장래 우리 황실의 영구 안녕(安寧)과 생민의 복리(福利)를 보장하기 위하여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에게 전권위원(全權委員)을 임명하고 대일본제국 통감(統監)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와 회동하여 상의해서 협정하게 하는 것이니 제신(諸臣) 또한 짐(朕)의 결단을 체득(體得)하여 봉행(奉行)토록 하라.

<순종  실록> 대한 융희4년 8월 22일


전시작전통제권을 타국에 내주고 자주국방을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 나라는 평시작전권만 갖고 있다.  선진국으로 도약한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국방력에 무엇이 모자란단 말인가. 굳이 통일이 아니어도 좋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상호 협력과 왕래만이라도 가능하도록 물꼬를 트자는 거다. 남북이 합치는 일은 다음 세대,그 다음 세대에서 시기가 무르익으면 그때 가서 해도 된다. 문제는 평화 협정과 대화의 지속이다. 흡수통일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통일하면 땅 투기, 리조트, 공장을 세우겠다는 발상은 천박한 개발주의다. 통일 독일은 서독의 입김이 아니었다. 동독 시민들의 용기 있는 조용한 혁명으로 시작된 거였다. 일부 동독 시민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서독과 합치는 것을 반대했을 정도다.


그나저나 Covid가 발등의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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