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다른 세상에 살던 너와 나.
새내기들이 한껏 들떠 캠퍼스를 누비는 3월이었다. 당시 남자친구 준이도 그런 신입생 중 하나였다. 입학하자마자 OT, 신입생 환영회, 개강파티, 신입생의 밤에이어서 이번엔 1박으로 MT을 간다고 했다. MT는 대학의 꽃이라고 하던가. 그 어느 때보다 격앙되어 나에게 소식을 알렸다. 언짢았다. 내가 아는 MT는 위험하고 문란하여 매년 3월마다 빠지지 않는 뉴스감이었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에둘러 말했다.
“너 술도 잘 못 먹는데 괜찮겠어?”
- 적당히 빼면서 먹으면 되지.
“선배들이 막 못되게 굴면 어떡해?”
- 우리 과 선배들 다 착해 걱정 마!
“거기 여자들이 너 여자친구 있는 거 알아?”
- 응 다 알아. 나 사랑꾼으로 유명해!
창과 방패였다. 내가 그저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물어보는 줄 알았는지 싱글벙글이었다.
”MT 안 가면 안 돼? “
다시 한번 명확하게 말했다. 순간 준이의 표정이 굳었다. 가벼운 걱정이 아니라 진심인 걸 그제야 알아챈 것 같았다. 학생들 대부분이 가는데 본인이 안 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 그런 일들이 모든 학교와 MT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라며 날 설득했다. 우리의 팽팽한 의견대립은 길어질 듯하다 툭- 끊겼다.
“너도 작년에 1박 워크숍 갔잖아.”
아, 맞네. 나도 갔구나. 하지만 MT와 워크숍은 엄연히 다르다. 어쩌면 뉴스에 나올 수도 있을 뻔한 일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MT와는 다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회사와 학교는 같을 수 없다며 논리적 인척 했지만 준이 입장에선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준이를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막을 권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불안했지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 걱정과는 달리 그의 MT에서 작은 사고 하나 나지 않았다. 오히려 술을 못하는 준이를 위해 선배들이 대신 마셔주고 친구들과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MT얘기를 듣는데 그의 세상이 나의 세상과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그를 그토록 말린 진짜 이유를 알아챘다. 내가 겪지 못하는 일을 준이가 경험하는 게 싫어서였다. 우리의 공감대가 사라지고 서로 다른 세상으로 멀어져 가는 게 두려워서.
내가 택한 길이지만 이런 고통은 예상치 못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육과정을 거치던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다. 단지 우리가 만나 데이트를 하는 것만으로 하나 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생겨나면서 그와 분리됨을 느꼈다. 때론 함께여도 외로웠고, 서로의 힘듦을 보듬어줄 수 없었다.
언젠가 힘들다고 말하는 준이에게 모질게 대답했다.
“용돈 받으면서 학교생활하면서 대체 뭐가 힘들어?”
준이는 그 말에 분명 상처받았다. 그는 보란 듯이 알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일을 잘해 꽤 높은 자리까지 권유받곤 했다. 난 더 이상 사회생활을 벼슬처럼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내가 똑같이 상처를 돌려받았을 때가 돼서야 그의 흉터를 알아차렸다.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이면서 생기는 균열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해 서로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 또 받았다. 어른이 될 준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어른의 세상에 놓였다. 제 아무리 어른인 체 속여봐도 생각과 행동들은 어리석었다. 나의 지난 언행들이 모두 자기중심적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