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나나 Apr 10. 2023

01. 19살, 사내 왕따가 되다

나의 첫 사회생활

광고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확고한 꿈을 가지고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부모님은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냐며 반대하셨지만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다. 내가 어른이 될 때쯤엔 학벌사회가 아닌 능력 중심 사회로 변해있을 거라고, 하루빨리 경력을 쌓아서 남들 대학 다닐 때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그렇게 엄마 아빠에게 큰소리를 쳐댔다.


고3 여름, 학교에서 단체로 간 중소기업 취업박람회에서 첫 직장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온라인 마케팅 회사였고, 집에서 뛰어가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 박람회에서 짤막한 면접 후 몇 시간 만에 2차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다음날, 면접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소소한 대화를 나눈 뒤 당일에 바로 합격 문자를 받았다. 이상하리만큼 수월했지만 그때는 내가 그 회사에 다닐 운명이라며 한껏 들떠있었다. 꿈도 꿈이지만 월 15만 원 용돈쟁이를 탈출하고 월 150만 원 월급쟁이가 된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그렇게 뭐든 잘 될 것 같았던 첫 직장에서, 나는 두 달 만에 사내 왕따가 되었다.


당시에는 블로그나 카페, 지식인 등의 바이럴 마케팅이 대세였던 시대였다. 회사는 아이디를 사들여서 광고를 쓰고 광고글이 상위권에 노출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클릭하여 순위를 높이는 일로 광고비를 받았다. 내가 입사 후부터 약 4개월이 넘도록 가장 많이 한 일은 검색 순위 올리기였다. 팀에서 올린 광고글들을 일일이 검색해서 계속 클릭해야 하는 일이다. 심지어 다양한 아이피로 글을 클릭해야 순위가 잘 올라갔기 때문에 모든 직원의 휴대폰을 빌려 글을 검색하고 클릭하고를 반복해야 했다. 쉽게 말해 '노가다'작업이다. 당시 직원이 약 60명쯤 되었는데 60명의 휴대폰을 모두 한 번씩 빌려 평균 10개가 넘는 글들을 검색하고 누르면 대략 2시간이 걸렸다. 하루 세 번을 해야 했으니 8시간 근무 중에 무려 6시간을 돌아다니며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를 반복했던 것이다.


처음엔 휴대폰을 뭐라고 하면서 빌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근처에 가서 "핸드폰..."이라고만 말해도 선뜻 내어주셨다. 서서하면 불편하니까 의자를 가져와서 하거나 자리에 가서 하고 다시 갖다 줘도 된다는 분들도 많았다. 처음엔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나중엔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자리로 가서 하곤 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팀장님이 조용히 나를 회의실로 불러내더니 조금 뜸을 들이다가 물으셨다.

"너.. 다른 사람 핸드폰 빌려서 왜 자리로 가져오니?"

"편하게 자리로 가서 하라고 허락해 주셨어요. 다른 팀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던데요?"

"염탐하는 건 아니고?"

기가 찼다. 내가 왜 남에 핸드폰을 굳이 들여다보겠나.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냐고. 내가 억울한 표정을 짓자 팀장님은 나를 타일렀다. "네가 그러지 않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다른 팀에서 그런 말들이 오가고 있어.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야." 내가 그러지 않았다는 걸 안다는 분이 나의 피 같은 점심시간까지 뺏어가면서 이런 말을 해주는 이유는 뭘까? 이미 사실이 아닌 일이 사실인 것 마냥 소문이 도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뭘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퍽 어린애 같았다. "왜 다들 저를 싫어하나요?" 내 말을 들은 팀장님의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섞인듯한 오묘한 표정을 기억한다.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원래 회사라는 곳은 남 뒷담화 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게 일상이야."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나보다 한참 나이도 많은 어른들이 굳이 날 표적 삼아 스트레스를 푸는 것인가. 팀장님과 이야기가 끝난 뒤 아무렇지 않은 척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니 눌려있던 감정들이 역류했다. 어리지만 인정받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뒷담화의 주인공의 되어 화장실에서 숨죽여 우는 어린애였다.


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사실이 아닌 일을 해명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해명한다고 해서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눈치 보는 일이 늘어갔다.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했다. 회사에서의 시간들이 너무 고단했다. 내내 신경이 곤두서있고 누가 나를 쳐다만 봐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는 나대로 뒷걸음질 치고,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나를 피했다. 안 그래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팀원들마저 불편해졌다. 점심시간에 집으로 뛰어가 밥을 먹고, 핸드폰을 빌릴 땐 불편하더라도 자리로 가져가지 않았다.


집에서는 그냥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며 웃기지 않냐며 아무렇지 않은 듯 센 척을 했다. 그렇게 혼자 한참을 앓았다. 그저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겠거니, 익숙해지겠거니 하면서 악착같이 버텨내자 마음먹는 게 전부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