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랑꼴리한 말미잘 Jul 07. 2022

대학이 뭐길래

첫 딸 대학 도전기

"애들 과외를 좀 시켰으면..."

희가 조심스럽게 ㅇ과장에게 말을 꺼냈다.

"무슨 소리야?"

"요즘 과외 안 하는 애들이 없다는데요. 애들 수학이 좀 쳐지니까 조금 도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100원 한 장 허투루 쓰는 희가 아니었으므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과외비가 꽤 비싸다던데"

말도 못 꺼내게 할 줄 알았던 ㅇ과장이 일단 관심을 보이자, 희는 얼른 말을 이어갔다.

"윗집 홍씨네랑, 박사장 네 애랑, 우리 인이랑 셋이 모여서 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동네에는 둘째 딸 인이와 동갑내기들이 여럿 있었다. 마침 그 아이들이 모두 여자아이어서 공부며 외모까지 은근히 비교되는 형편이었다. 이 아이들이 같은 학년이니 함께 그룹과외를 하면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연년생인 큰 딸 유이에 이어 인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대학입시라는 큰 과제가 다가왔다. 둘 다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성적이었다.  형편이 되는 집 아이들은 모두 과외를 하거나 입시 학원을 다녔다. 중고등학교의 교사들이 방과 후에는 과외 선생을 했다. 입시에서 중요한 과목인 수학 족집게 선생은 벌이가 좋았다. 잘 나가는 선생들은 학교 봉급보다 과외 수입이 더 좋았던 시기였다.

동갑내기들끼리 모여하는 과외는 추진되었다.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인이는 꽤 도움을 받았다. 혼자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어려웠던 부분들을 잘 가르쳐주니 성적이 올랐다.


1980년이었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했던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자 정국은 안정되는 것 같아 보였다. 실은 전두환 군부의 정권 장악이 완성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전두환 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나라를 통치했고 대통령이 되는 준비를 해나갔다.

7월 30일. 국보위에서는 '교육 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 방안'을 발표하였다. 국보위는 고질적인 사회병폐로 지목돼 온 과열 과외 현상을 근절하겠다면서 과외를 금지, 대학 입시 본고사를 폐지하는 대신 고등학교 내신과 예비고사 성적만으로 대학입자를 선발하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 정책으로 과열된 입시 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인가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발표된 정책으로 일선 학교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각 학교마다 달라진 입시제도에 따른 방안을 마련하느라 난리였다. 입시학원 수강도 금지가 되었기 때문에 학원마다 수강료를 돌려받으려는 학생들이 줄을 섰고, 졸지에 족집게 과외 선생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과외금지 조치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혼란을 겪었지만,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던 ㅇ과장의 딸들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과외가 전면 금지된 이후 하반기 중간고사의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과외를 통해 예상 시험문제 공부를 못하게 되자 과외를 받던 아이들의 성적이 추락한 것이다.

유이와 인이는 성적이 크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다른 성적 추락자들로 인해 등수가 크게 오르며 급부상하였다. 이후 과외는 비밀리에 다시 성행했지만, 자신감을 얻은 유이와 인이는 좋은 성적을 받아와 ㅇ과장과 희를 기쁘게 했다.


바뀐 입시의 첫 대상자가 바로 82년에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들이었고, 유이가 그에 해당하였다. 먼저 시험을 치르고 점수를 받은 후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는 방식이었다. 이렇다 보니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지원자가 몰리는지 눈치작전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미달이 되기도 하고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보이는 곳도 있어 천차만별이었다.

유이가 시험 보는 날. 언제나 입시날은 추웠다. 온 가족의 응원과 기도 속에 유이는 시험을 치렀고, 꽤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제 이 점수를 갖고 어느 대학으로 갈 건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ㅇ과장은 고심 끝에 유이를 불렀다.

"시험 보느라 고생 많았다"

"네"

"이제 어디갈지를 정해야지. 어디 생각한 데 있니?"

"...."

웬일인지 유이가 답이 없다.

"아버지는 이대 법학과를 쓰면 어떨까 하는데"

"이대요?"

"이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여자대학이잖아"

"근데 법학과요?"

"네가 똑똑하고 자기주장도 잘하고 하니 판검사가 되어도 좋고, 아니면 행정고시를 보아 공무원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전 생각이 좀 다른데요"

"그래? 그럼 어디"

"@대 철학과를 갈까 해요"

"뭐?"

충격적이었다. 서울대도 아닌 연고대도 아닌 대학의 그것도 철학과를 가겠다니?

그로부터 유이와 ㅇ과장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난 이대가 싫어요!"

"이대가 왜 싫어? "

"간판만 번드르르한 데는 싫어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여자대학으로는 최고 명문 아니냐?"

"그렇게 좋은 데면 엄마 아빠가 가세요!!!!!"


유이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ㅇ과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며칠간의 설득에도 변화가 없자 ㅇ과장은 회초리를 준비하여 유이를 안방으로 불렀다. 희나 다른 가족들은 일체 들어오지 않게 하고 문도 잠겄다.


"정말 @대 철학과를 가겠다는 거냐?

"네"

"왜? 이유나 들어보자"

"속물이 되기 싫어요"

"이대 다니는 사람들 모두 속물이란 말이야?'

"좋은 집안에 시집가려는 아이들이 간판만 보고 가는 데잖아요."

"아버지가 너한테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는 거야?

"내 인생이에요"

"뭐라고?"

"아빠 인생에서 못 채운 걸 왜 저한테 하라고 하세요? 이대도 법학과도 다 아버지가 원하는 거잖아요. 나는 아빠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을 거예요"


ㅇ과장은 회초리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단 한 번도 손찌검을 한 적이 없는 ㅇ과장이었다.


"네가 혼자서 태어났느냐? 부모를 어떻게 이렇게 업신여길 수가 있단 말이야?"


ㅇ과장은 회초리를 내리쳤다. 연약한 딸의 다리에 빨갛게 자국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이는 아버지 말은 듣지 않겠다고 악을 쓰기 시작했고, 매질은 계속되었다.


문밖에서 초조하게 서성이던 희가 소리쳤다.

"유이야. 어서 잘못했다고 빌어! 여보, 문 좀 열어봐요"

굳게 잠긴 문을 두드리며 희가 정신없이 소리쳤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고 유이가 울부짖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

"이러다 큰일 날라"

희는 밖으로 나가 안방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한쪽이 잠기지 않아 창문을 열고 기어올라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회초리를 들고 있는 ㅇ과장의 손에서 유이를 떼어내고 보니 유이는 거의 혼절해있는 상태였다. 희는 황급히 유이를 데리고 방에서 나왔다.


ㅇ과장의 손에서 회초리가 툭 떨어졌다. ㅇ과장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단 말인가. 그 참혹한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았고 집안에 쌀 한 톨이 없을 때에도 어쨌든 가족을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왔던 세월이 아니던가.

그런데 딸이, 가장 믿어왔던 장녀가 내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희는 유이를 데리고 나와 작은 방에 눕히고 찬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물을 먹이고 부르튼 다리에 연고를 발랐다.


"어쩌자고 아버지한테 그렇게 대들어?"

"나 이대 안 가요"


희는 한숨을 쉬었다. 고집이 센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반항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대학입시는 인생에서 큰일이 아니던가. 어떻게든 설득해야 하는데,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잠이 든 유이를 놓고 나오는데 둘째 인이가 슬쩍 다가왔다.

"친구 때문일지도 몰라요"

"뭐?"

"유이 언니 친구 서미현이라고 있잖아요. 그 언니랑 엄청 붙어 다녔는데 둘이 같은 데 가려고 그러는지도 몰라요"

"설마." 아무리 친구가 좋기로서니 같은 대학을 가려고 부모에게 반항을 한단 말인가. 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이는 대학을 학벌로만 바라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버지 어머니의 기대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대 나와 좋은 집안에 팔려가듯 시집가는 인생은 싫다고 생각했다. 남들 다 가는 대학, 남들 다 가는 학과는 시시하게 느껴졌다. 철학, 멋진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두 분 모두 좋은 직장, 괜찮은 결혼. 이런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니까 말이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까"


물론 아버지가 등록금을 내주지 않는다면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야겠지. 집에서 나가는 건 어떨까? 마음 같아서야 바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대책 없이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급격히 친해진 친구 미현이가 @대를 선택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유이는 자신의 선택이  소신 있는 판단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망하는 대학에 지원서를 내는 날까지 ㅇ과장과 유이는 부딪히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 사람 모두 뜻을 굽히지 않았으므로 집안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었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복수지원이 가능했므로 ㅇ과장은 이대의 원서를 사다 놓고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유이는 미현이와 같이 가서 @대의 원서를 샀다. 원서를 제출하는 날, 유이는 일찌감치 집에서 나가버렸다. ㅇ과장은 셋째 연이를 불러 이대에 가서 원서를 접수하라고 일렀다. 연이는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버스를 타고 이대에 가서 원서를 제출했다.


 눈치작전이 치열했다. 가족, 친지, 아르바이트생들까지 투입되어 각 학교마다 접수상황을 살피고 경계하는 분위기 속에서 연이는 이화여대를 난생처음 가보았다. 대학은 멋있었다. 이렇게 멋진 학교를 왜 안 가려고 하지? 그러나 여대라서 싫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항상 공부도 잘하고 멋졌던 큰언니 유이. 남녀공학이 어울릴 것 같긴 하다. 항상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썼던 큰언니가 막연히 국문과에 갈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철학과라니? 철학과가 무엇을 공부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철없는 사촌동생들은 철학과를 나와서 철학관을 차리는 거 아니냐고 키득거렸다.


유이는 결국 @대 철학과를 선택했다. 합격 확인을 하러 가는 날도 유이 혼자 학교에 다녀왔다. 결과는 과 차석으로 합격이었다. 그러나 ㅇ과장의 집에서는 합격의 기쁨이나 축하의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했던가. 내키지 않았지만 ㅇ과장은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도 대학에 합격한 딸이었다. ㅇ과장과 희는 아이들의 학자금으로 꽁꽁 간수해두었던 돈을 꺼내 입학금을 치렀다.


호된 홍역을 앓고 유이는 스무 살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다. 82학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쟁과 세 개의 상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