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멋을 내고 사진을 찍었다. 그 몇 컷의 사진 틈에 눈이 반쯤 떠지다 만 내 사진을 본 딸들이 데굴데굴 구르며 웃어댔다. 궁금하면 못 참는 남편은 딸들 손에 쥐어진 핸드폰을 낚아채었다. 자신도 참아지지 않는지 '풋' 소리까지 내며 웃다가 이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빠는 놀려도 엄마는 놀리지 마라! 너네 엄마는 완전무결해야 해!"
스물두 살에 만나 그 나이 숫자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남편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래, 나 완전무결해! 이것들아~ 당장 지우지 못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진은 하트 버튼이 눌려진 채 그들의 핸드폰 즐겨찾기로 저장되어 있다.)
남편은 알지도 못하는 우리 엄마의 기억 속 내 유치원 시절 이야기가 있다.
그날은 학예회 예행연습날이었다.(나 시골 깡촌에서도 유치원 나온 여자다.)
각자가 준비해서 가져와야 하는 하얀색 블라우스와 네이비 주름 멜빵 치마를 입고 대기줄에 서있었다. 연습에 앞서 손동작을 펼치는 아이들 틈에서 내 치마만 다른 것을 발견했다. 촘촘한 주름 간격과 금색 버클이 달린 멜빵 치마 틈에 널찍한 주름과 은색 버클이 달린 멜빵 치마를 입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 모든 것은 그 시간에 멈추고 말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입은 치마가 훨씬 고급 졌다.)
하루 입는 건데 그냥 입으라는 엄마의 말의 나라를 잃고, 부모를 잃은 메가톤급 통곡으로, 꼴딱 넘어가는 특유의 울음을 선보이며 유치원에서 돌아온 내내 울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엄마는 시내 장에 나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치마를 사 갖고 오셨다.
엄마는 엊그제 있었던 일 마냥 그때 일을 떠올리며 머리를 흔드신다.
엄마의 기억이 아닌 내 기억 속 잊히지 않는 일 중 하나는 중 1 여름방학에 일어났다.
'염상섭의 「삼대」를 읽고 원고지에 독후감을 쓰고 제출하시오.'
여름 방학 과제물에 쓰인 한 줄을 보고 방학한 첫날 시내 서점에 나가 책을 사들고 들어왔다. 작은 글씨와 300쪽이나 되는 두께의 압박, 게다가 재미까지도 없는 그 책을 읽느라 나는 한 달을 꼬박 채웠다. 그랬음에도 다 읽지 못해 개학 전날 새벽을 꼴딱 새워야만 했다. 그 한 줄의 독후감 과제명은 그해 여름방학의 투쟁이었다. 사력을 다해 마지막까지 읽어내고 연습장에 쓰고 원고지에까지 옮기니 새벽 5시였다. 개학날 아침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당당하게 독후감 원고지부터 제출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독후감 과제를 낸 유일한 학생이라며 나를 칭찬하셨다. 그날 나는 칭찬만 받았다. (상 따윈 존재하지도 않았다.)
조용히 군중 속에 묻혀 튀지 않음을 좋아했다. 지적받고 틀렸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싫었던, 완전하지 않지만 완벽을 이상향으로 삼았던 십 대 시절을 보내고 나는 이십 대가 되었다. 그런 내 앞에 이상한 남자가 나타났다.
아는 언니의 소개를 받고 나간 소개팅 자리에 '당기시오'를 못 봤는지 유리 문의 머리를 대차게 박으며 남자가 카페로 들어왔다. 그 남자는 이미 10분이나 늦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느라 집 밖을 한 달 만에 나왔다고 말하는 남자의 말에는 나를 웃기는 재미가 있었다. 웃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그때부터 망....)
원칙에 얽매이지 않지만 그만의 자유로움 속에는 이상한 질서가 숨어있다고 생각했다.(그러니까 그때부터 망....)
그의 세상에서 만나는 웃픈 에피소드들은 그 남자를 만날 때마다 나를 웃겼다. 그중 몇 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술과 스타크래프트가 대학 생활의 전부라 생각했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정신이 조금 들었다.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리포트도 제때제때 제출하려고 단단히 맘을 먹었다. 프린트가 집에 없던 시절이라 파일로 만들어 출력까지 마쳐놓은 리포트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형이 비운 책상에 믹스커피를 들고 나타난 남동생은 리포트 위에 자신이 사랑하는 믹스 커피를 올려두었다. 운명의 리포트는 남동생이 의자에서 일어나다 툭 건드려주며 진한 갈색 문양의 유니크한 리포트로 만들어주었다.(아마 그대로 그걸 냈다지......)
그 남자는 IMF이었음에도 취직에 성공했다. 첫 월급을 타고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던 남자는 제법 가격은 나가지만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었는데 이 정도는 해줘도 될 거 같다고 생각했다. 월급의 2/3을 투자해 발목까지 내려오는 에메랄드빛 롱 코트를 장만했다.(참고로 그 남자의 키는 171.4였다. 그때는 그랬다.)
그날 저녁 첫 월급의 기쁨을 나누고자 동기들과 회사 앞 포장마차를 찾았다. 소주를 마셔 몸은 뜨거운데 그날따라 손끝이 시렸던 남자, 난로에 가까이 손을 대자 굽어져 있던 손가락이 하나씩 펴지기 시작했다. 좀 더 바짝 난로 쪽으로 손을 갔다 대었다. 난로 안에 고구마가 들었나? 타는 냄새가 나네..... 곧이어 동기들이 그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야야 니 코트! 니 코트 탄다."
그 이상한 남자와 나는 20년째같이 살고 있다.
"근데 너네 엄마 똥 얘기하면 무조건 먹혀!"
"맞아, 엄마는 더러운 얘기에 바로 웃더라."
"어허, 그래도 엄마 놀리지 마라! 엄마는 완전무결해야 되거든!"
그때 그 자리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