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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나의 마음숲 Jun 18. 2021

엄마 꿈은 뭐야?

"엄마 꿈은 뭐였어?"


첫째는 일곱 살이 되면서 자주 내게 물었다.

둘째가 여덟 살이 되니 또 물어왔다.

셋째의 아홉 살,

또다시 내게 물어온 아이들이 궁금한 엄마의 꿈이자 나의 꿈.

나는 뭐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더라?

잘하는 건 뭐였지?

좋아하는 게 있었나?


허황되게 꿈꾸기엔 일찍 철이 들었고,

현실에 맞춰 꿔보자니 너무 보잘것없어 스스로가 초라했다.

눈에 띄게 잘하는 것도, 가슴 뛰게 좋아하는 것도 없는 나는 꿈이 없는 채로 어른이 되었다.

스물여덟,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서른넷에 두 딸을 둔 엄마가 되었으며,

서른일곱, 감히 상상치 못했던 삼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팍팍했던 살림으로 사 남매를 키워내느라 애썼던 부모님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인생 참 알 수 없다.

그런 내가 삼 남매의 엄마가 되다니.


'아이가 너무 예뻐서 하루하루 커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우아하고 고상한 CF 속 엄마가 되길 꿈꿨다.

아니 바라봤었다.

첫째를 7살까지 외동으로 키우며 잘하면 우아할 수도 있을 뻔했다.

첫째의 오랜 바람을 하늘이 들어주었는지 둘째가 찾아왔다.

그리고 3년 후 셋째가 찾아오면서 나에게 우아는 영영 안녕이 되었다.

유모차에 아이 둘을 태우고, 어린이집 가방 하나, 유치원 가방 하나를 메 단채 첫째 학원으로, 수영장으로, 놀이터로 하루를 이틀처럼 꽉 채워 썼던 그 시절.

어떤 이는 나를 타고난 긍정 맘이라 말했고,

어떤 이는 측은한 눈이 되어 안쓰럽게 바라봤다.

정작 그 시간의 나는 묵묵히 내 방식대로 버티며 견디고 있었을 뿐,

내가 어떤 엄마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1시간 넘게 걸리는 출퇴근의 지옥을 피하고자

남들보다 일찍, 남들보다 늦게 퇴근했던 남편에게 육아의 시간을 바라기에 나는 너무 모질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으로 위로와 위안을 삼았다.

실컷 뛰어놀고 좀 무리가 되었다 싶은 다음날 아침이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코피가 났다.

그 시간을 엄마인 나도 함께 했건만,

아니 나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늦게 잤음에도

한 번을..... 그 단 한 번을 코피는커녕 감기도 허락지 않으니 내가 봐도 나는 육아에 꽤 적합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 내가 가진 평범함 속에 숨어있던 무던함은 그 시간 안에서만큼은 자주 특별했다.

때때로 힘들어도 기뻐도, 좋아도 싫어도 그 하루를 보내는 일에 무던함이 나를 우울에 빠트리지 않는 중요한 특별함이 되어주었다.

내게 있어 육아는 아이를 몹시 사랑해서도 아니었고, 재능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꾸준히 그 시간을 버티고 해내면서 나라는 사람을 엄마라는 역할에 맞춰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말과 행동을 한 번에 하는 멀티도 가능하고,

틈틈이 남는 시간도 쪼개 쓸 수 있으며,

지극히 개인 의적 성향의 내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배워가고 있었다.


'재능이 없는 사람도 한 가지 일에 지속해서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발전하는 무언가가 생기는구나!'


그 일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성장이 숨어있음을 육아를 통해 나는 깨닫고 있었다.


"엄마 꿈은 뭐야?"

열두 살의 둘째가 내게 물었다.

그 무엇을 꿈꾸며 살아도 괜찮을 나이,

마흔다섯 아줌마는 지금부터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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