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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나의 마음숲 Jun 19. 2021

육아, 내 아이를 위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워킹맘으로 3년, 전업맘으로 12년,

엄마 경력 18년.

(힘줘 말하지 않겠다. 최대한 힘 빼고 말해본다. 18년.....)


결혼과 동시에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던 이유는 그 안에서의 내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이었다.

여상을 나와 일에만 올인했던 같은 부서 미혼의 선배는 대학 나온 한참 후배들과 경쟁하며 마흔이 되던 해에 과장이 되었다.

회사 창립 이래 첫 번째 고졸 여 과장의 탄생은 그룹사 사보에도 실릴 만큼 꽤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 승진하던 선배는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나는 나만의 다른 길에 대한 마음을 키웠다.

나는 내가 앞으로 치러야 할 치열함의 끝이 그 선배의 모습이고 싶지 않았다.

그 선택은 야간대학이었고, 그 이듬해 대입에 성공했다.

뒤늦게 간 대학에서의 시간은 내게 오래도록 기억될 추억거리들을 남겨주었다.

평생 함께 갈 수 있는 친구들을 얻었고, 그들과의 시간을 얻었다.

다만 내가 찾고자 했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을 뿐.


경영지원본부에서 본부장 비서로 일한 나는 회사 내에 꽤 많은 인맥을 알고 있었다.

결혼하기 몇 개월 전 지방으로 발령이 난 남편 소식을 듣고는 내게 조언해주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부장님들은 주말부부를 하라셨고, 선배 언니들은 따라내려가라고 독려했다.

내 마음은 선배 언니의 말에 더 많이 움직였다.

남편의 발령은 내가 꿈꿔왔던 퇴사의 좋은 기회이자 구실 거리였다.

과장으로 승진했던 날 선배가 더없이 환했던 것처럼 나는 퇴사하는 날 더없이 환했다.

남들보다 이른 취업을 했던 내게 생애 처음의 자유가 주어졌다.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밖에 없는 낯선 곳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심심할 수 있었다.

소속 없는 자유와 심심함은 그때까지 내게 단 한 번도 주어져본 적 없는 사치였다.

그때까지 살면서 채워지지 않았던 자유의 배부름으로 나를 꽉꽉 채웠다.

이만큼이면 충분해 싶은 마음이 채워지기까지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나도 이제는 엄마가 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빨간 얼굴에 꼬깔콘 머리를 한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날,

그날부터 아이는 나의 눈과 귀와 마음을 향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왔다.

오로지 나를 향하는 아이의 눈과 귀와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알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나의 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일,

나라는 사람의 효용가치,

내 아이의 엄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사람인 내게 주어진 사명 같은 일,

내 아이의 엄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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