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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Jun 08. 2021

집중과 선택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떠한 이야기가 들리는지


일주일간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고민이 깊었다.

집중, 그리고 선택.

그것도 매우 신중한 선택.



얼마 전 글을 읽다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띄었는데

마침 내가 그 터널을 지나고 있던 터라 멈칫-했다.



맞다.

삶은 늘 선택과 집중, 집중하고 선택하는 것의 연속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거저 주어진 것이라곤

삶, 가족, 믿음(구원)

이 셋뿐.

나머진 모두는 늘 선택의 몫이었다.








2021. 05. 28(금)

Before sunset -

집으로 가는 길.





즐겨 드는 찬양이 있다.

여기서 즐겨 듣는다는 의미는 주야장천(길게는 일 년가량) 그것만 리플레이한다는 말.



특히나 일상을 기록할 때면 듣는 찬양이 되겠다.

스캇 브래너 목사님, '레위지파'의 찬양.

모든 영과 육의 감동이 글이 되기까지의 예열 과정이 바로, 찬양 듣기.

작년 여름, 3개월 글쓰기에 바짝 열을 올리던 때 지속해온 행위를 습관처럼 이어오고 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온 마음 다해 손가락이 움직여지는 것만 같은 순간들을 매번 맛보았다.

('움직여진다'라는 수동태의 동사가 '움직인다'라는 능동태보다 알맞은 표현이라 생각하여 고쳐 적었다)

일종의 글쓰기 의식 같은 것으로 여기며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 간다.

여전히 나는, 하나의 글에 발행이란 버튼을 누르기까지 마음에 힘이 푹- 들어가는데, 아마도 이는 공개적인 글을 내보내는 한 평생 계속될 신성한 긴장감일 것이다.



레위지파의 'Your Grace is an ocean'

작년에 한참 나 자신과의 대화가 짙어질 때,

걸으며, 쓰며, 읽으며, 잠자리에 들 때도

많은 플레이 리스트 중 주로 이 찬양을 몸에 흡수시켰다.

바다 같고, 하늘 같은 그분의 음성이 한 마디 한 마디, 종소리같이 영혼을 때리고 울렸다.

내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Never alone, carrying me on.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묵직하게 말을 거는 내면에  기울이기 위해 찬양의 힘을 빌려야만  때가 많았다.

하루의 끝, 노을을 바라보며 걷는 걸음걸이 속 울려 퍼지는 음율과 가사.

아스라이 저무는 가냘픈 노을의 빛깔과 함께 이것들이 내겐 위로였고, 고백의 장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에 몰두하고, 마음 정리가 필요할 때

아빠 품처럼 너른 이 찬양이 떠오른다.









약 5개월가량 주어졌던 프로젝트성 업무가 끝이 났다.

짧지만 굵게 많은 힘을 쏟아부었으니

방출했던 에너지를 채울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두 가지 제안(job offer)이 동시에 들어왔다.

하나는 단번에 결정 내릴 수 있는 조건이라 거절 의사를 표했고,

다른 하나를 두고 지난 2주간 마음의 갈등을 겪었다.



앞으로의 전망, 지속성, 명성, 근무 환경 등을 따졌을 때 탐나고도 남을만한, 내 이력에 꼭 담고 싶은 회사였다.

문제는 그에 따른 처우였는데, 내 가치에 반하는 두 가지가 있었던 것. (전체 공개 글이기에 더 노골적인 기록이 어려운 것이 아쉽다)



간단한 절차로 결정될 줄 알았던 게

현지인 (영어) 면접 > 임원 면접 > 부서장 화상 면접까지 생각보다 짙은 농도의 과정을 겪었다.



결과는 합격.

그곳에서 일하는 멋진 신여성의 그림이 연상됐다.

그러면 무얼 놓고 고민했느냐.



아...

좀 더 솔직하게 써야겠다.

그냥 네임 밸류에 끌렸다. '이 회사에 다녀요'라고 하면 어깨에 각 잡고 말할 수 있을, 그런 끌림.

음...

결론은 나와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름을 뺀다면..?'

첫 번째로 제안받았던 회사와 마찬가지로 단번에 거절이었을지도.

2주의 기간 동안 밤새워서 이력서를 재정비하고, 면접 준비하고, 기도하고, 면접 보고, 합격까지...

합격했고, 다니면 그만인 것을 밤잠 설쳐가며 머리 쥐어짜듯 고민했던 이유는

겉멋에 치우쳐 이곳을 원하는 건지, 내 진심이 무엇인지, 이 직업과 회사에 어떤 가치를 두고 일할 건지에 대한 그런 종류의 관조적 의문들.

(큰 회사라고 다 부품처럼 일하는 건 아닐 테고, 그 중 좋은 회사도 있을 거고, 내가 지금 어디에 초점을 두고 결정해야 하는지와 같은 것을 짚어볼 필요는 있었다. 예전에 나였으면 무조건 Go! 였겠지만, 이젠 구분지을만한 연륜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럴싸한 직장과 남들의 시선.

그것을 노렸다면 난 애초에 헝가리에 오지도 않았을 거다.

아니, 살면서 유의미한 도전을 뒤로하고 그냥 그럭저럭 숨 쉬고, 밥 먹고, 자고, 일어나고.. 그랬을 것이다.

'결혼 안 하냐, 잘 다니던 직장 왜 때려치우냐, 돈 안 모으냐, 집 나가면 후회한다' 등등.

누군가의 걱정 어린 말들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고, 다만 그걸 의식하고 의견 하나하나에 좌지우지됐다면 지금의 내 길을 걷는다는 자부심과 행복감은 없는 일이 됐을 것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계속 고민이 됐다.

그 정도로 욕심나는 회사(현재 헝가리에 들어와 있는 두 대기업 ‘S’사도 관심 없었던 내가 혹할만한 고고하고, 견고해 보였던 곳이다),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한 동경이 생겼고, 내 기준 되는 가치를 잠시 접어두고 그냥 으레 남들 다 하는 일쯤으로 생각하고 수락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근데 아무래도 나는 '그냥'이란 ‘부사(품사)’랑은 거리가 먼 인물인 것 같다.

의미와 즐거움, 행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내 전공 분야와는 거리가 멀어, 흥미를 가지고 일할 수 있겠다는 기대는 내려놓아야 했고,

면접 때부터 야근이 잦을 거라는 이야기가 이따금씩 언급됐는데, 빈도가 한 달의 3/5 이상은 족히 될 것이 뻔해 보였다.

특히나 이 업계에 대한 스트레스 강도는 동종업계의 한국에서의 내 친구들에게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부분이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직업은 없다지만 그 강도가 얼마나 셀지는 지레 짐작이 될만한 수준이었다.

보수는 점차 나아질 것이라지만 그럼에도 내가 여태 받아왔던 정도에 적잖이 못 미치는 수준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그냥 안 하면 그만이지 왜 고민이야?라고 할 수 있는데,

경험해보지 않고 판단으로만 결정한다는 것이 내겐 꽤나 아쉽고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일단 부딪혀보는 성격) 그렇다면 그냥 ‘일해보고 아니면 관두면 되지’ 할 정도의 가벼운 포지션은 아니었기에.



내 지나온 경험들에 의존하여 향후 나타날 형태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반복해서 돌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답답하기도 했고, 그런 종류의 것들이 계속 쳇바퀴 돌듯 꼬리에 꼬리를 물어 신경이 온통 마비된 기분이었다.



짧다면 짧은 2주의 시간 동안 느낀 건, 내 마음이 무언가를 거스르며 움직이고 있다는 부자연스러운 기분.

(뭔가 불편하게 돌아가고 있는 생각이 결정의 답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능성과 향후 전망에 대해 고민한다기보다 왠지 '이름' 하나에 매료되어 모든 '아닌 것'을 접어두고, '그럼에도 해볼 만한' 기준에 집중하도록 스스로를 몰아갔던 것이다.



아무리 힘든 난관이 있더라도 그것에 뛰어드는 삶은 내게 전혀 괴롭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물 흐르듯 흘러가도 어딘가에서부터 제동이 걸려 나와 반대된다 느껴지면 세상 그런 곤혹이 따로 없다.

이번 건은 후자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도저히 답이 안 나와)

내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문 두드리게 되는 친구 몇몇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중 한 명이 내뱉은 말이 망치가 되어 돌처럼 굳어져 가려 했던 내 생각을 완벽히 깨트려줬다.


"이름? 알잖아, 너. 그거 한 꺼풀 벗기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그랬다. 한 꺼풀 벗겨 들여다보니 단번에 답이 나왔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나만의 삶을 살아가고,

내가 행복해지는 생을 바라보자고 다짐했던 자아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던 것이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혹은 이름 들으면 알만한 회사가 아니고는 원서조차 넣는 걸 꺼려 했다.

이름이 밥 먹여준다 생각했고, 그게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만 같다는 대단히 큰 착각에 빠져있었던, 해맑은 청년이었다.



다양한 아르바이트, 작은 회사,

대기업, 모두가 선호하는 직장 등등 내 풍성한 경험 중,

이력서에 가장 화려하게 쓸 수 있었던 두 회사의 기억이 나에겐 가장 희미한 시간들이다. (기억이 있긴 하다. 도살장 끌려가듯 출근하던 기억)

왜인지 짚어 보니, 그곳엔 ‘내'가 없었다.

부속품처럼 갖춰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나의 역할은 말 그대로 기계가 하면 될 것 같은 일이었다.

빛도, 향기도 없는 꽃 같았다.



대신 아르바이트나 스타트업 회사, 월급 작았던 ngo 단체 등등의 내 역량을 있는 그대로 발휘할 수 있었던 곳의 흔적들은 여전히 이따금씩 떠오를 정도로 재미있고, 가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거기엔 '나'라는 존재가 내가 하는 만큼의 노력과 열정만큼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냄새도 물씬 나는 그곳들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 회사들이 내 마음속 大기업이다.



지난 2주간 나를 애타게 만들었던 회사를 가게 된다면

진정 나다운 삶을 살고, 그것을 찾기 위해 떠나온 한국을 고스란히 소환시키는 꼴이 될 것이 안 봐도 비디오였다.



소담한 분위기를 지닌 헝가리 할머니의 반짝이는 눈빛,

두 손 꼭 잡고 걷는 어느 노부부의 느린 발걸음,

달리는 트램 안에서 책에 푹 빠져 집중하는 어느 청년의 시선.

이런 삶을 동경하며 닮아가고 싶다고 했으면서 '본질'보다 '허상'에 잠시나마 마음이 흔들렸던 나에게

온종일 걷고, 달리는 행위는 필수 불가결한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난 참 욕심이 많다.

주어진 것을 받고 그저 나아가면 될 것을.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어찌나 크면 단순하게 내릴 수 결론을 이리도 어렵게 거스르며 살아가는지...






(*작년 9월 30일에 작성한 나의 기록 중 일부를 꺼내본다)



내 행복함의 기준은 ‘돈, 사회가 정해놓은 때에 맞게 하는 결혼, 해외에서의 멋진 삶’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주변과 비교하지 않는 나만의 삶, 책 한 자락 더 접할 수 있는 시간, 잔고는 부족해도 내 삶이 축복으로 가득 차 있다는 충만한 기분, 견문을 넓히는 것, 주변 이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삶을 나누는 것, 온전한 것에 대한 가치를 논하며 (결혼 잘하는 것, 주식과 부동산이나, 근사해 보이는 것들이 아닌) 아무 사심 없이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가짐, 각자의 가치에 대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열린 마음 등 그런 것이 내겐 행복이다.



물질보단 상황, 사상적인 것에 욕심을 내는 편이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그렇지만 경험(시간)은 남더라. 내 인생 통장에 빛날 정도로 차곡차곡 쌓이더라. 때에 맞게 그 기억이 나에게 다가와 힘을 주고, 용기를 건네주더라.


그렇다. 나는 내적 부유함을 지니고 싶었나 보다. 어찌 보면 돈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 돈을 욕심내서 벌면 그만인데, 내면의 풍요는 욕심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저 주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원했다. 한때 내 모든 아이디는 'to be'였다. 친구들은 그게 그냥 의미 없는 영어라고 생각했을 건데 난 꽤나 고민하여 만든 것이었다. 한때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문학(철학)에 빠져 '존재한다'라는 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그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선구자였다. 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무신론적'이란 단어가 영 마음에 걸렸지만, 그의 문학적 예술성으로 받아들였고, 반대로 난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따랐다.



존재함의 배경을 이곳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난.








어제 결론을 냈고,

난 그 회사에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의사를 전달했다.

좋은 기회가 주어지고, 내 잠재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2주 동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던 차가 결론이 난지 몇 초 만에 급정거를 한 기분이 들어 반나절을 멍한 기분에 사로잡혀 보내기도(조금 아깝단 생각도 들고^^;) 했다.

다시 '향기 나는' 날백수가 된 기념으로 어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걷고, 또 걸은 것이 여운이 남아 이 마음, 두고두고 꺼내보고자 예정에도 없던 글을 쓴다.



반복되는 찬양이 마음속에 퍼지면서 지나온 결단의 시간들이 기특해 쬐금씩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묵직한 과정과 고민 가운데 나온 결정엔 늘 감사의 기도가 따른다. 언제나 가장 최고의 것을 주시는 그분이기에. 그래서 그 감격이 눈물로 변할 수밖에)



앞으로 글에 좀 더 집중해볼 생각이다.

그러다가 값없이 주어지는 삶의 단면이 있다면, 감사로, 열심으로 걸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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