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꺼내보는 벨 에포크. 다른 책들은 두께가 부담스러운데, 가장 얇은 『1913년 세기의 여름』도 충분히 재밌다. 1913년 1월부터 12월까지 파리, 빈, 베를린, 뉴욕 등의 세계 각국의 대도시에서 어떤 (정치, 문학, 미술, 음악, 건축, 사진, 연극, 영화, 패션, 과학적인) 움직임이 있었는지, 시간여행 하듯 일지처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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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모더니즘 소설로 꼽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탄생하고, 현대미술의 빅뱅인 '아머리 쇼'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심리적 내면을 드러내는 데 힘썼던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결정체를 보여준 '제1회 독일 가을 살롱전'이 열리고, 피카소와 브라크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입체주의 미술을 발전시키고, 회화의 두 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 예술 <자전거 바퀴>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탄생하고, 무조 음악의 창시자 쇤베르크가 전위적인 음악회로 청중을 분노하게 만들어 따귀를 얻어맞고, 아주 혁신적인 안무와 음악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되고,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장식은 범죄"라고 외치며 기능주의에 입각한 현대적인 건축물을 선보이고, 프라다가 첫 가게 문을 여는 등 1913년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혁신적인 문화의 결실을 맺은 해였다." (『1913년 세기의 여름』, 옮긴이의 말,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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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모더니즘의 중심지 빈으로 가보자. 그곳의 주연배우들 이름을 일부만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아르투어 슈니츨러, 에곤 실레, 구스타프 클림트, 아돌프 로스, 카를 크라우스, 오토 바그너, 후고 폰 호프만슈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게오르크 트라클, 아르놀트 쇤베르크, 오스카 코코슈카, 이곳에서의 무의식, 꿈, 새로운 음악, 새롤운 시각, 새로운 건축, 새로운 논리, 새로운 도덕을 둘러싼 투쟁들이 광란했다." (『1913년 세기의 여름』,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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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우리가 20세기라고 부르는 시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소련이 붕괴한 1991년까지를 일컫는다. ‘세기말’이나 ‘벨 에포크’라는 용어가 실제로 가리키는 기간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라는 점을 고려하면, 문화사적으로도 19세기와 20세기의 분기점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인 1914년 즈음일 것이다. 이 책은 적어도 문화사에서 길었던 19세기가 끝나고 진정 새로운 세기, 즉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이 시작된 해를 1913년이라고 상정한다. 흔히 모더니티는 제1차 세계대전의 공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예술은 전쟁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전통과 단절을 선언했으며 1913년에 모더니티는 이미 출발선을 떠났다는 것이다.
노먼 에인절 같은 경제학자들이 세계화된 경제 시스템을 근거로 세계대전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호언장담한 것과는 달리, 선견지명을 가진 당시의 많은 예술가들은 불안한 기운 속에서 전쟁을 예감했고, 마치 내일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았으며, 당시 그들이 세상에 선보인 예술은 그 자체로 19세기의 끝과 20세기의 시작을 동시에 알렸다. 이 책 『1913년 세기의 여름』(원제: 1913. Der Sommer des Jahrhunderts)은 제국주의는 정점으로 치닫고, 민족주의는 점점 확산되고, 발칸전쟁을 비롯한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고, 기술 발전은 속도를 더해가고, 도시는 자기소외와 신경과민에 시달리는 사람들로 득시글거리고, 모더니즘이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의 전통 개념을 뒤엎어버린 바로 그해, 1913년에 관한 책이다." (『1913년 세기의 여름』 책 소개글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