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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슈 Aug 22. 2021

내 공간이 작업실에서 사무실이 되기까지



주절주절, 그냥 무언가를 쓰고 싶어졌다. 주제 없이 주절주절 .. 떠들고 싶은 날이다.


어제부턴가 하루종일 기분이 가라앉아있었다. 수면 위로 올리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의욕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은 무얼 하나.



주말인데 할 일이 있어 사무실에 왔고, 하기 싫어져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가구 배치를 바꿨다. 얼마전부터 동생이 자취를 시작했다. 작은 집에 사무실 겸 주거공간으로 쓰고 있는데, 휴식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방 하나를 그렇게 꾸미고 싶다기에 그러면 내 소파를 가져가라고 했다. 초록색 벨벳 1인 소파. 몇 년 전이었는데, 홍대에서 버려진 소파를 발견했는데 한 눈에 반해버려서.. 세월감은 있어보였지만 반짝거리는 게 아주 근사한 소파였다. 언젠가 내가 작업실이 생긴다면 그 작업실에 놓고 싶다, 생각했다. 차가 없던 나는 택시를 불렀고, 기사님께 이 소파를 태울 수 있을까요? 물어봤다. 그렇게 10km가 넘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그리고 딱 1년 뒤, 작업실이 생겼다.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한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바로 책상으로 출근, 그리고 퇴근하지 않는 삶. 새벽까지 일하고 있는 나를 보며 우리 엄마는 제발 잠 좀 자라고 했고, 그렇게 일할거면 차라리 작업실을 얻어서 공간을 분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돈이 없었던 나는 서울에 갈 생각은 전혀 못 했고, 집 앞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어야지 했다. 18년도의 나는 내 진로를 사진과 그림 둘 다 해야지, 고민하고 있을 때여서 스튜디오를 겸할 수 있는 사무실이었으면 했다. 채광이 좋고 역에서 가까운 곳. 몇군데를 둘러보고, 뷰를 보고 바로 결정했다. 아, 여기다.





페인트를 칠하고, 바닥에 장판을 깔고, 가구를 조립하고.. 예상보다 시간과 돈은 더 많이 들었지만 내 공간을 내 마음대로 꾸미는 것은 재밌었다. 한 달 정도는 매일 사무실에 출근해서 가구 조립하는 게 일이었을 정도로, 작은 책상부터 선반, 의자까지 많은 것들을 조립하고 배치했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 나올 정도로 공간 활용도가 낮게 배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 작업 공간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나날들.





처음엔 가구 몇개만 가지고 시작했기에 휑했다. 지금 모습이랑은 전혀 다른 사무실의 모습. 3년 전인데.. 왜 이렇게 낯설까 ㅎㅎ 장판을 까는 것은 내 아이디어였다. 회색빛이 도는 사무실은 원치 않았어서, 조금 더 따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밝은 나무색, 화이트, 그리고 초록색. 이렇게 컬러 컨셉을 잡고 배치했지만........ 내 취향이 핑크라는 것을 간과해버린 것... 핑크핑크한 소품들이 잔뜩 들어서니 그냥 키치한 공간이 되어버린 것도 같다.


+ 사진 보고 깨달은 건데 이 때는 칸막이도 없어서 공간분리 할 때 천으로 가려놨음 (ㅋㅋㅋㅋㅋㅋ)




포토존 꾸미겠다고 장판 깔고 열심히 시트지 바르고 있는 모습. 나중에 이 시트지 바른 장판은 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때 취향이 중세시대 이런 거 좋아할 때라서 그런 느낌 내고 싶었던 것 같음.





장판 위에 대리석 시트지를 발라서 한쪽만 분위기 있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책상에도 시트지 작업을 아주 열심히 했다. 원래는 하얀색 유광 책상이었는데... 왜 저렇게 대리석에 꽂혔던 건지는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이소 시트지 여러장 사와서 열심히 붙였다. (지금은 저 책상 버렸음)



취향의 이것저것을 갖다두고 완성한 포토존. 말이 포토존이지 사실은 셀카존인 것이다... 일이랑은 아무 상관 없는 공간이어서 나중에는 다 정리했다. 하지만 이 공간 꾸밀 때는 꽤나 재밌었다. 내 초록색 소파랑 정말 잘 어울리게 꾸며놔서 뿌듯했거든.





배경천을 바꾸고, 소품을 바꿔주면 또 다른 분위기의 포토존이 만들어졌다. 작업실을 같이 썼던 친구와 사진 찍으면서 노는 게 재밌었던 나날들. (지금은 올리지 못하지만) 친구들의 사진도 여럿 찍어줬다. 그리고 스튜디오도 겸해야지! 하면서 샘플을 만들었지만... DSLR을 오래 들고 있으니 손목이 아파서 실패. 매주 주말마다 프리마켓에서 캐리커쳐를 하고, 평일엔 아이디어스에서 들어오는 주문 - 캐리커쳐를 또 그리고, 취미로는 사진을 하고 있을 때여서 손목에 무리가 안 갈 수 없었다.


오래 그림을 그리려면 사진은 취미로만 해야겠지 싶어서, 스튜디오를 겸하는 것은 포기했다.




사진 보니 이 때는 칸막이를 사온 것 같다! 천에서 조금 업그레이드 된 모습 ㅎㅎ 난 책상 두개를 썼고, 한쪽은 컴퓨터 한쪽은 작업책상이었다. 이 때는 사무실보다는 작업실에 가까운 모습이었어서 책상 고를 때도 가장 큰 걸로 고르고.. 오른쪽 사진 속 책상이 180*80cm짜리 크기 책상이다. 하지만 지금도 이 책상 잘 쓰고 있기 때문에 후회 안 함. 좋은 선택이었다!


그림그리는 것보다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이 더 잦았는데, 공간을 처음 꾸려본 나는 바보같이 창문 바로 앞에 내 자리를 배치한 것이다.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통유리창 앞에 책상이 있으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자리라는 것.. 여름은 어찌 어찌 버텼지만 수족냉증인 사람한테 냉기가 올라오는 자리는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어서 나중엔 책상 배치를 바꿨다.




하슈스튜디오 1주년 파티 때 모습. 지금 생각해보면 저렇게 공간을 좁게 만들어놓고 어떻게 열몇명의 사람들을 초대해서 놀았나 모르겠다 ㅎ.ㅎ.. 하지만 재밌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어서, 1주년 2주년 파티는 다 했는데.. 3주년 파티를 못 한 게 너무 아쉽다. 언제쯤 다시 파티를 열 수 있으려나.





꼭 파티가 아니더라도, 종종 친구들을 초대해서 신나게 놀았다. 추억이네.





이 수많은 순간들에 초록색 소파는 항상 내 작업실에 있었다. 여러 사람이 왔다갔다 하면서 한번씩은 앉아본 소파. 포토스팟의 역할도,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도 모두 잘 해준 내 소파에게 박수. 작업실에 들어온지 3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작업실보다는 사무실의 공간에 더 가까워졌다. 큰 공간을 혼자 쓰기엔 너무 넓어서 친구에게 작업실을 같이 쓰자고 했던 게 초반 1-2년. 작업실을 같이 쓰던 친구가 나가고나서, 나는 하슈랜드 팀원을 구하기 시작했다. 알바로 시작해서 직원까지, 사람을 찬찬히 늘려가다보니 이제는 내 마음대로 공간을 짤 수 없겠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알바생 둘을 처음 뽑았을 때는 내 책상 옆에 책상 하나를 더 배치했다. 넓은 책상 하나에 둘이 앉아서 작업할 수 있게 만들었고, 뒤에 책상 하나를 더 둬서 간단한 택배 포장을 할 수 있게 했다.




이게 작년 12월의 사진. 사무실 구조를 바꿔야지, 마음 먹었을 때 쯤이었나? 아닌가? 뭐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의 나를 남기고 싶어서, 좋아하는 사진 작가님을 불러서 촬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서 촬영하기 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이건 언제지.. 이것도 작년 말쯤인 것 같은데. 이 땐 사무실에 침대도 있었네 ㅎㅅㅎ..!! 종종 사무실에서 야근할 때면 여기서 자곤 했다. 포토존은 창가 바로 앞에 둬서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굉장히 불편한 배치라고 생각하지만..!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올해 초였나. 공간을 더 분리하고 싶어서, 사무실을 한번 뒤집어 엎었다. 하지만 이 배치가 좋은 배치는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은 몇달 뒤였던 것....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는 배치긴 하지만, 소통하기 너무 어려운 공간 배치여서 나중에 다시 한번 사무실 뒤집어 엎기!






올해 4월. 직원이 한명 더 필요해져서 추가 채용을 하면서 사무실 구조를 다시 바꾸고 싶어졌다. 공간을 더 넓게 쓰고 싶었고, 소통이 잘 되도록 구조를 짜고 싶었다. 내 사무실은 실평수 11평 정도로 아주 좁은 공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넓은 공간은 아니다. 칸이 나뉘어져있는 것도 아니어서 필요에 의한 공간 배치를 해야 했는데,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은 아래와 같다.


- 대표 자리 (내 공간)

- 직원 공간 (책상 3개)

- 회의용 테이블

- 포토존

- 다용도실 (냉장고, 식기 등)

- 창고

- (가능하다면) 휴식 공간


좁은 공간에 많은 것들을 한번에 넣으려고 하니 너무 어려웠다.




혼자 열심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봤는데, 내가 원하는 느낌의 구조가 잘 안 나와서 건축 쪽 일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너무 쉽게 배치를 잘 짜주었다. 당장은 인원을 더 늘릴 일이 없을 것 같아, 대표 자리 + 직원 2~3명 자리 정도로도 족할 것 같았다. 갖고 있는 가구들로 최대한 배치했다.


창가는 춥거나 더우니까 최대한 오래 있지 않아도 되는 공간으로 만들고, 포토존과 (내) 휴식공간이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는 바로 회의테이블이 보이고, 옆에는 냉장고가, 왼쪽으로 돌아가면 직원들 책상이 보이는 형태. 





그렇게 완성된 우리 사무실! 내 자리에서 보이는 직원들 자리. 이렇게 배치하려고 책상도 새로 사고, 최근엔 서랍장도 사고, 탁상용 선풍기도 .. 뭔가 많이 샀군! 예전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꽤 많이 달라졌지 싶다.




여기는 포토존. 왼쪽은 미니스튜디오가 있어서 인공광으로 깔끔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오른쪽은 창가 옆에 원형 테이블을 놔둬서 감성 터지는(?) 제품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비록 정리는 안 되어있어 알아보기 어렵지만....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젠가 하겠지...(..) 그리고 사진 속에는 안 보이지만 포토존 뒤로는 사진찍을 때 쓰는 샘플들, 촬영 소품 등을 놔둔 선반이 있다.




예전엔 작은 냉장고를 쓰다가 지금은 큰 냉장고로 바꿨고. 회의 테이블도 제법 근사하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많은 것들을 한다. 수다를 떨거나, 다같이 그림을 그리거나, 간식을 먹거나, 매주 회의를 하거나. :)




여기는 내 자리. 조금씩 돈을 벌 때마다 하나씩 장비를 사서 업그레이드 했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 쓰던 모니터, 지인한테 받아온 10년 넘은 모니터 이렇게 두대를 썼는데 지금은 최-신형 모니터!ㅋㅋㅋ 와이드 모니터다. 뿌-듯. 올해에는 컴퓨터도 새로 샀고, 모니터암도 새로 샀고.. 이렇게 보니까 정말 장비를 많이 샀네 싶다.





그리고 제일 기분 좋은 것! 내 사무용 책상은 있었는데, 그림그릴 수 있는 책상은 아니어서.. 작업실처럼 작업 가능한 책상이 있었음 좋겠다 생각했는데 드디어 만들었다. 원래 이 쪽에는 내 초록색 소파와 다리 안마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내 사무실이 작업공간, 휴식공간, 놀이용 공간보다는 사무 공간이기 때문에 소파에 앉을 일이 거의 없어져서 동생에게 줬다. 오랫동안 애정해온 소파여서 아쉽지만.. 그것을 떠나보내니 이렇게 남는 공간이 생겨서, 후다닥 공간 배치를 바꿨다. 


아 , 신난다. 이젠 저 책상 위에 정리하고 한번씩 그림그리고 놀아야지. CEO로서의 삶 말고, 창작자로서의 삶도 가끔은 살고 싶단 말이다.





사무실 창가로 보이는 풍경이 아주 근사한 것들이 많다. 통창에, 앞에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어서 매일 하늘을 보면서 일한다. 어쩌다 한번, 운이 좋은 날에는 이렇게 멋진 무지개를 마주치기도 한다.





또 다르게 운이 좋은 날에는, 퇴근할 때쯤 불타오르는듯한 하늘도 볼 수 있다. 창문에 매달려서 오른쪽 끝을 보면 해가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이럴 땐 일하는 것을 다 놓아두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수다 떨고 싶어서 브런치를 열었고, 어쩌다보니 하슈랜드 사무실의 3년간 변화 과정을 쓰게 됐다. 언젠가는 써야지 했던 주제인데 이렇게라도 쓸 수 있게 되어 좋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지만, 내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게 되어 즐거웠다.


오늘 나는 내 정들었던 소파를 떠나보냈고, 새 공간 - 그림그릴 수 있는 책상 - 을 얻었다. 처음, 작업공간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쯤 가지고온 소파라서 파는 건 생각도 못했고, 누구 주기도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의 작업공간이 생겼다고 들었을 때는 주저 없이 주고 싶었다.


요즘의 나는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8시간 넘게 모니터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림그리고 싶단 생각이 종종 든다. 오직 그림, 작업만을 위한 공간을 얻고 싶어서 다른 작업실을 찾아보기도 했을 정도였는데.. 내 사무실에 작게나마 내 책상이 생겨서 좋다. 항상 책상에는 전자기기와 그림도구가 섞여있었는데, 이젠 진짜 분리해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기뻐!





이 사무실에서 얼마나 더 있을진 모르겠지만....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지기 전까지는, 우리 잘 해보자.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이 글을 다시 봤을 때,

지금의 내가 귀여워보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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