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NEVER GIVE UP!
회사소개서에 있는 ‘아이데틱’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네버가 2번이나 적혀있다는 건, 포기하지 않겠다는 절대적 소임을 나타낸다.
올해 지스타가 그랬다.
노력과 기쁨, 시련과 역경, 반전과 역전의 일들이 다채롭게 찾아왔다. 그럼에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건 소임을 다해 결과로 기여한 점이 크지만, 우리는 일로 승부 보는 것 외에도 도전과 성취, 동료애, 팀워크 등 가져가야 할 것이 아주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2023 지스타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록하기로 했다.
지스타는 1년에 한 번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되는 국내 최대 게임쇼다. 전시 오픈 시간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대기줄을 이룰 정도로 게이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행사이자 축제이다.
우리 회사 '아이데틱'은 감사하게도 매년 글로벌게임사의 지스타 전시마케팅을 총괄해 왔는데, 올해는 ‘웹젠’과 ‘EA’ 요즘 정말 핫한 게임사들을 담당하게 되었다.
EA(Electronic Arts)는 전 세계 1등 축구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저들은 이미 잘 알고 있듯, 이제 더 이상 FIFA로 불리지 않고 EA SPORTS FC™로서 새롭게 미래를 써가고 있다.
EA는 축구 커뮤니티 멤버십 'EA 파운더스 클럽(Founders Club)' 런칭을 기념하여 팬들을 위한 첫 번째 오프라인 이벤트를 지스타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우리는 유저들에게 새롭게 출범한 EA 브랜드가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파운더스 클럽하우스'를 기획, 총괄하였다.
이와 동시에 우리 회사는 제2 전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스였던 '웹젠(WEBZEN)'의 전시 마케팅을 맡았다. 웹젠은 7년 만에 지스타에 복귀해 ‘테르비스’ 신작을 유저들에게 공개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지스타는 단 4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지만, 일의 준비과정을 돌아보면 결국 장기전이다. 긴 시간 매진하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기에 우리는 기준점을 세워두고 웹젠과 함께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준비했다. 웹젠이 서브컬처 시장에 퀀텀점프하기 위한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거라 굳게 믿으며.
뮤(MU)와 R2 등 게임으로 국내에 이미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웹젠은 그간 서비스했던 게임과는 다른, 서브컬처 게임을 선보이는 이례적인 출전이었다. 웹젠이 자체 개발한 신작 ‘테르비스’와 퍼블리싱을 맡고 있는 ‘라그나돌’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 총 3종의 서브컬처 게임 IP로만 승부수를 띄웠다.
같은 장르이지만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게임들을 방문객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부스를 구성했고, 구석구석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탬프 미션 투어를 기획했으며, 지루할 틈을 조금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무대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동안 유저들이 원해왔던 모든 서브컬처 게임의 시퀀스를 비로소 한 부스에 모두 구현해 냈다.
무엇보다 웹젠은 게임 퀄리티와 견줄 만큼 ‘굿즈’에도 진심이었다. 웹젠프렌즈 브랜드 상품부터 IP의 개성을 담은 굿즈까지. 디자인, 착용감, 소재, 디테일 모두 놓치지 않고 심혈을 기울인 아이템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굿즈 미팅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지스타 행사 이틀이 지나고.. 구경만 했을 뿐인데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굿즈 맛집’으로 커뮤니티에 소문이 났다. 찐팬들의 강력한 지지와 유저들의 신작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며, 웹젠은 수많은 사람들의 지스타 데스티네이션이 되었다.
웹젠은 제2 전시장의 대규모 부스 외에도 제1 전시장 앞에 야외부스도 마련했다. 우리는 실내와 야외팀을 나눠서 준비했고, 각각 다른 위치에 있음에도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소통에 더욱 신경 썼다.
야외팀은 목공 벽체가 세워지고 LED 진입, 무대 설치, 조명, 그래픽 작업 등 모든 진행 과정을 사진 찍어 단체창에 공유했고, 심지어 제2 전시장에서 야외부스까지 오는 지름길과 주차 경로 등을 안내하며 면밀히 소통했다.
지스타 오픈 전날, 단체창에 일기예보가 올라왔다.
지스타 행사 기간에는 늘 수능일이 포함되어 있고 수능일 = 한파와 연결된다. 우리는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롱패딩, 핫팩을 준비했고 야외부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대비해 리허설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날씨에서 기온보다 ‘강수확률 80%’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천 시, 야외부스 운영이 어렵기에 이벤트 임시 종료에 대한 안내문과 우비, 비닐, 방수포, 팔레트 등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철두철미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우리를 시험하듯 초겨울에 걸맞지 않은 폭우와 강한 바람이 찾아왔다. 기상청이 안내한 ‘가끔 비’가 아니라 ‘강한 비’였다. 이 날은 지스타 개막일이었다.
오후 4시경 비가 걷잡을 수 없이 세차게 내려 운영을 종료해야 했다. 야외부스 담당자였던 근웅 님은 앞으로 마주칠 위기에 대해 인식했다. 창고 안에 수백 개의 기념품이 들어있는 종이 박스가 방수포에 덮여 있었지만 비가 그치지 않고 밤새 올 경우에는 행여 기념품이 젖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야외 상황을 알게 된 대표님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실내 필수운영진을 제외하고 스탭들이 모여 야외기념품을 호텔의 비상룸으로 옮기기로 했다.
쏟아지는 폭우가 시야를 가리는 상황에서 기념품 박스를 꺼내다가 젖을 수도 있기에,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운반해야 했다. 자동차가 야외부스 광장까지 들어와도 되는지 지스타사무국을 통해 확인하고 차량 3대를 준비했다. 사실 이런 상황은 그 누구도 익숙지 않지만, 고민이나 주저함 없이 대표님의 지도 하에 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시장, 야외창고, 차량, 호텔 구역마다 적재적소에 팀원들이 배치되었다. 지원 차량은 창고문 천막 아래까지 들어오고, 팀원들은 빠르게 기념품을 트렁크에 옮기고, 다음 차량이 들어오면 또 기념품을 옮기며, '대기, 완료, 이동, 도착' 간명한 언어만이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2시간 반이 정신없이 지나서야 호텔 룸 안에 모든 기념품이 무사히 옮겨졌다.
팀원들은 비에 젖은 신발로 인해 발이 얼어 어기적 걸으면서도, 박스를 열어 단 한 방울의 물이 묻지 않은 기념품을 보고 함박웃음을 보였다.
오프라인 행사에서 마주치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은 궁극적으로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다반사다. 항상 여러 선택지를 두고, 가장 나은 해결책과 팀워크가 있어야만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다.
이 날의 일은 리스크 레퍼런스가 되어 장표에 기록되겠지만, 그곳에 담기지 못하는 이야기는 내가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팀원들이 발맞춰 뛸 수 있게 했던 리더십과 각 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신에게 날아온 골을 넣어줬던 팀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고생 뒤에 찾아온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진정한 팀워크라고.
뭐,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다음날 행사가 운영되었다.
오프라인 행사가 끝나면 ‘휘발된다’는 기분이 든다. 불철주야 열정적으로 달려온 우리의 시간이 일회성으로 끝나버린 아쉬움이 가장 크다. 메인 무대가 끝남과 동시에 물품을 정리하고 부스를 철거하는 내내 이상하리만큼 헛헛한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팀원들은 유독 전시 행사를 마감할 때 시원섭섭함을 토로했다.
이번 지스타는 달랐다.
지스타의 메인 주인공은 관람객이자 게임이겠지만, 웹젠 부스 안에서 주연들이 빛날 수 있도록 조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스탭들을 조명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지스타 마지막 날, 대표님은 각 존에 있는 팀장들에게 태도와 역량이 우수했던 직원, 알바생, 인포모델, 코스프레 모델들에게 상을 수여하자는 의견을 주셨다. 곳곳에 숨은 영웅들의 업적을 알리고 축하하자는 의미가 가장 컸다. (게다가 웹젠 본부장님의 배려로 무대에서 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시간 일찍 부스를 조기 마감하고 모든 운영진들이 무대 앞에 모였다. 이번 웹젠 무대 MC로 활약을 보였던 천보영 님과 우리 회사 애슐리 대표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격조는 잠시 접어두고 말랑말랑하고 유쾌한 시상식이 이루어졌다.
-수상 리스트-
운영요원에게는 성실상과 다재다능상
모델에게는 MBTI EEEE상
코서에게는 폼미쳤다상
웹젠 직원에게는 파워J상과 솔선수범상
그리고 우리 아이데틱 직원에게는 인정상과 생고생상을 수여했다.
한 명, 한 명 이름이 호명되어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모두가 진심으로 박수치며 노력을 인정하고 축하해 주었다. 야외부스에서 추위와 맞서 웃음을 잃지 않고 일했던 웹젠과 아이데틱 담당자에게 가장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사소할지라도 이렇게 감사를 표현하며 나눈 긍정적인 감정들은 우리를 더욱더 하나로 연결해 준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마땅히 했던 일이 이렇게 축하를 받을 일인가 싶겠지만, 입술이 터지고 부운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건 옆에 있는 '동료의 선행'이 가장 크다. 팀원을 위한 헌신적인 태도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숨은 영웅들. 사실 우리는 서로 어떻게 일하는지 바라보며 용기와 힘을 얻고 있다.
전시가 종료되면 정말 끝인 걸까? 아니, 진정한 막일의 시작이다.
인파가 빠지고 황망해진 전시장에 드릴, 박스테이프 소리, 각 종 소음이 분주한 발걸음과 함께 울려 퍼진다.
전투가 끝나고 병력이 철수해도 누군가는 전장을 수습하고 전리품을 수송해야 하지 않는가.
마지막 철거팀은 신속하게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그럴 수 있었는데..
물품을 실어 서울로 보내야 하는 화물차량이 하역장을 찾지 못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 알바생들은 모두 퇴근하고 KTX 시간이 가까워져 어쩔 수 없이 떠난 동료들. 패킹한 수많은 박스만이 걱정과 함께 차곡히 쌓여있었다. 남은 사람들은 힘이 빠져 허리가 절로 숙여졌다.
'이걸 우리끼리 다 실을 수 있을까..'
한 시간이 흘러서야 야속하게 등장한 화물차.
가장 후발대로 남은 직원들과 웹젠 담당자까지 겉옷을 벗어던지고 양팔 소매를 걷어 부쳤다. 행사 기간 동안 전부 소진되었다고 생각했던 힘이었는데, 팀원의 "한번 해보자!"라는 말 한마디에 눈빛이 본격적으로 달라졌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하자는 마인드로 서로를 마킹하며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쏟았다.
5톤 트럭에 빼곡히 쌓인 백개가 넘는 박스들.. 예상치 못한 전우애로 싹튼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전쟁터 전우들이 불안하고 힘든 상황에 갇혔을 때 전장의 총알보다 밑도 끝도 없는 장수의 전의에 용기를 받는 장면이 더러 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렵고 지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를 믿어주고 이끌어주는 팀으로 인해, 그들의 지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기세가 바뀌게 된다.
에이전시에게 현장이란 늘 버라어티한 순간들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다시 그곳으로 이끄는 건 어떤 마음일까.
불가능해 보였던 많은 일들을 팀원들과 헤쳐나가면서 '팀워크'가 그 어떤 것보다 가장 큰 보상이라는 걸 느끼기 때문아닐까? (성과와 월급은 거들뿐..)
2024년 지스타도 분명 할말 많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