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되어 있던 회의가 취소되면서 시간이 생겼다.
얼떨결의 자유 시간.
주중에는 아이보랴, 일하랴 그저 동동거리며 시간에 쫓기듯 살고,
주말에는 육아에 매여 이렇다 할 나만의 시간을 가진지도 참 오래였다.
입버릇처럼 ‘내 시간 좀 생기면 좋겠다’고 말해왔었는데, 이게 웬걸?
막상 시간이 생기니 무얼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는 거다.
TV나 보며 뒹굴거리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는데...
도통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에
괜시리 왔다갔다 아이가 어질러 놓은 집안을 정리하고,
TV 보면서 빨래 좀 개고,
그렇게 깜박 졸고 나니 어느새 아이의 하원 시간.
순간 머리를 댕- 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운동 하나, 먹고 싶은 음식 하나 없다니...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 생각’이라는 걸 해본 게 언제였을까
아이가 잘 먹을 만한 음식,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
아이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옷과 신발,
아이가 즐길 거리가 많은 카페 그리고 식당 등등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매일은 아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또 고민했던 시간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쉬는 시간이면 핸드폰 초록 창에 ‘비 오는 날 아기랑 갈만한 카페’, ‘실내 아기랑’, ‘세 돌 아기 전집’, ‘세 돌 아기 영어’ 등의 검색어를 두드리고, 인스타그램 릴스로 ‘서울 가볼 만한 키카’ 등 리스트를 확인하고, 공구를 찾아 헤매이곤 했던...
다시 나를 찾아야 할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얼 좋아했었지, 나는 무얼 하고 싶지
내 마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보내줄 수 있는,
다시 한번 그런 내가 되어보고 싶다.
나에게도 다정한 그런 나.
천천히 나를 살펴주고 싶은 마음에 오랜만에 다시 일기를 끄적여 본다.
매일은 어렵겠지만
몇 번이고 다시, 일기로 돌아오리라는 마음을 가져보는 그런 하루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