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재능을 찾기 힘든 이유
청소년 상담을 하니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2주 전부터 학원에서 밤늦게 공부를 한다. 평일은 학교 끝나고 12시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원과 과외 스케줄로 빡빡하다. 학원에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껌도 비치되어 있고, 얼음도 있다. 상담 스케줄은 당연히 시험 이후로 변경한다. 시험 2주 전부터 시험 끝나는 주까지 청소년 상담은 스케줄 변동이 많다. 그리고 드디어 시험이 끝나면 상담센터의 문을 연다.
선생님 이번 시험 망했어요.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에너지 드링크 마셔가면서 살인적인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고 기껏 한다는 말은 늘 "망했다" "망쳤다" "짜증 난다" "이번 생은 가망이 없다" 등이다. 상담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가
아이들은 이런 질문을 싫어한다. 아니 솔직히 어려워한다. 대부분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초등학교 때까지는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중학교에 올라가서 시험을 보고 나면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그러니 아이들도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문과냐 이과냐, 법대냐 의대냐, 몇 등급이냐, 어느 대학 갈까 등의 생각을 한다. 공부가 좋아서 학원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그렇지, 누가 공부를 좋아하겠어. 문제는 공부를 하는 동기도 없다는 것이다.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남들 다 하니까 하는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분명 개개인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고,
재능이 있을 텐데
부모가 아이들의 재능을 찾아주지 못하는 이유,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청소년을 상담하면서 저절로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부모가 자기 아이의 재능이 공부이길 바라는 바람 때문이다. 기계를 잘 만질 수도,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것 보다 공부가 재능이길 바라고, 공부가 제일 쉽고, 공부가 제일 길이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는 있는데 가장 큰걸 잃어버릴 수 있다. 아이들이 점점 곪아간다. 적성에도 안 맞고, 재능에도 없는 공부를 하느라 점점 무표정으로 변해간다.
두 번째는 우리 아이가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 다 하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학원 전기세 내주는 분들이 많다. 학원이라도 안 다니면 그나마 나오는 성적도 안 나온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낸다. 중간고사 앞두고 혼자 하면 안 할 께 뻔하니까 한 문제라도 풀게 하기 위해 보내는 것이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들인 돈이 아까워 아이에게 한 소리를 안 할 수 없다. 아이 입장에서는 공부에 재능도 있고, 적성에도 딱 맞는 친구가 노력도 하니 따라갈 재간이 없다. 돈 아깝다고 말하는 부모님께 미안하고, 점점 삶의 자신감이 없어진다.
세 번째는 아이가 보이는 재능이 싫어서다. 예를 들면 미술에 재능을 보인다. "예체능은 안돼. 돈 많이 들고, 먹고살기 힘들어". 기계를 잘 만지는 아이에게 "기름 밥은 험해서 마음에 안 든다. 딴 길 찾아라"라고 딱 자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공부가 재능이기를 바라면서, 학원 전기세를 내준다. 공부하는 학원비 들어보면 미술 학원을 다녀도 될 듯싶긴 하다. 미대에 갈지 안 갈지는 나중 문제다. 하고 싶은 것, 공부보다 조금 더 해보고 싶은 것을 거절당한 아이들은 화나고, 무기력해 진다.
비 현실적일 수 있는 나의 바람을 적어본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술을 전공하다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전공대로 먹고사는 사람이 더 드물다. 철학과 나와서 논술 강사하고, 심리학과 나와서 PD를 하는 사람도 있다. 성악과 나와서 온라인 쇼핑몰을 하기도 하고, 교육학과 나와서 커피숍을 하기도 한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아는 사람들이다.
성적과 전공과 상관없이 살고 있다. 미술에 재능이 있다면 일단 미술을 시작하게 해 주었으면 한다. 미술학원에 가보니 취미로 그릴 때와 달리 입시 미술이 진짜 어렵고, 내가 하고 싶은 미술과 다른 것 같다고 느껴 미대를 안 갈 수 있다. 그런데 손으로 무엇인가 만들고, 그리면서 행복하고 손으로 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공부의 의미도 알려주어야 한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성적을 올리기 위함도 있지만 학생의 본분과 삶의 태도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 결국 남들 다 하니까 끌려다니듯이 학원에 다니기보다는 내가 필요하다고 느껴 학원을 다녀야 한다. 취미로 미술학원 다니면서 공부하면 당연히 공부만 한 아이들보다 성적이 낮을 수밖에 없다.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과 비교한다면 아마 평생 자신감이 없고,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영역의 삶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현실에서 직업으로 연결되는 능력을 갖추는 힘을 키우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보니 입시 전쟁에서 속 편한 소리 한다는 비난과 비판의 소리를 들을 것 같다. 10대 아이들의 마음을 듣는 사람으로 최근 들어 우울, 자해, 공황, 불안, 분노, 무기력 등의 단어를 안고 오는 수가 늘어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우울해도 중간고사에 학원에서 에너지 드링크 마시고, 자해로 팔다리가 성하지 않아도 기말고사에 과외선생님과 졸음 껌을 씹어가며 공부한다.
시험이 끝나고 이번 생은 망했다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성적 안 나와도 상관없다.
성적에 맞추어 아무 대학을 가도 상관없다.
그런데
대체 난 뭘 하고 싶은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 하는지
뭘 할 때 행복한지
고민하자
덧붙이는 말 : 부모님들께 "남들 다 하는 공부로 곪아가는 아이를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