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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Graph Sep 14. 2017

살아간다는 것은

일상문학 스물네 번째



신들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렸었다. 그런데 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산꼭대기에서 다시 굴러 떨어지곤 했다.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그들이 생각한 것은 일리 있는 일이었다. - p.183.




퇴근 시간, 버스 차창을 보노라면,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어느 날은 경이로, 

어느 날은 현기증으로 다가옵니다. 


그렇지만 결국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빙글빙글 돌아가는 인생,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오는 것이죠. 


이런 쳇바퀴 도는 인생은 까뮈가 살던 199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같았나 봅니다. 

까뮈는 우리의 인생을 시지프 신화에서 찾았습니다. 

열심히 돌을 굴려 올라가도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돌, 

그 돌을 다시 가지러 내려가는 아주 잠깐 동안의 행복. 




까뮈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을 '부조리'에서 찾습니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통을 향하여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내쉬는 숨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곧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하여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도 더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 p.186.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살다가도 문득 생각이 납니다. 

매일 가는 학교, 직장,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집. 정확히 짜인 시간표. 

혹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만 변경되는 시간표, 

야근에 잡무에 과제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해가 져 있고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죠. 


직장인에게는 상사의 눈초리가, 

학생에게는 학점이, 장학금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취업이, 

더 넓게 보자면 인생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저 멀리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각성입니다. 



인간이 부조리를 깨닫게 되면 두 가지 선택지가 생깁니다. 

하나는 돌 굴려 올리기를 멈추어 버리는 것. 즉, 자살이죠.           

          

알베르 까뮈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보이지 않게 마음속이 침식당하여 골병이 들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중략) 삶이 무엇인지를 또렷하게 직시한 나머지 결국은 광명의 세계 밖으로 도피해버리게 되는 죽음의 유희, 바로 이것을 추적하여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p.17.

 



 또 하나는 시지프가 택하고 있는 희망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살아가는 날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이 그의 생활로 되돌아가는 이 미묘한 순간에 시지프는 자기의 바위를 향하여 돌아가면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 행위들의 연속을 응시한다. 이 행위들의 연속은 곧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자신의 기억의 시선 속에서 통일되고 머지않아 죽음에 의해 봉인될 그의 운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 p.188.


문득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깨닫더라도 우리는 결국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부조리를 망각하려 하는 것인지, 

삶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살하기엔 너무 나약한 것인지 몰라도 

대부분의 우리는 계속해서 돌을 굴려 올립니다. 


힘겹게 굴려 올려 정상에 올려두면 그 돌은 다시 땅 밑으로 떨어집니다. 

그렇다 해도 우린 다시 그 돌을 잡으러 내려갑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의 바위도 우리의 것입니다. 


삶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때 

본연의 침묵으로 되돌아간 우주 안에서 경이에 찬 작은 목소리들이 대지로부터 무수히 솟아오르게 됩니다.




  산다는 것은 곧 부조리를 살려놓는 것이다.    








표지 그림 : The Myth Of Sisyphus is a painting by Nicci Bedson which was uploaded on May 2nd, 2015.

인용 : 알베르 까뮈 <시지프 신화>, 김화영 역, 책세상, 2004

소스 : 어릴 적 썼던 학술 코너 기사





일상문학 숙제

1. 돌을 굴려 올리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2. 그럼에도 다시 돌을 굴려 올린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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