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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라노 Aug 27. 2022

엄마와 어머니

씨앗글(3) : 이 씨앗글을 필두로 인문학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입니다.

명색이 글쟁이로 삽니다만 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모르기도 하지만 막상 써볼라면 행갈이와 운율은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를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포기해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입니다. 어머니 요양원에 모시던 때 강변에 서면 저도 모르게 시가 지어지곤 했습니다. 좋은 시인인지는 둘째 치고, 도대체 시이기는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강변에 설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리곤 했던 겁니다.   


강은 누워서 흐른다

강은 평생을 누워서 흐른다

세상의 소요와 혼탁에도 

강은 다만 누워서 흐르고 또 흐른다

강가에 서면 아프다

서 있는 모든 것들은 아프다

이가 아픈 것도 서있기 때문이다

이도 강처럼 누울 수 있다면 아플 리 없다

나무도 아프다나무도 한평생 서서 살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팠으면 저리 가지만 앙상한가

겨울은 특히 나무가 아픈 계절이다

평생을 서서 일한 엄마는 이제야 강이 되었나 보다 

강처럼 누워서 어디론가 흐르고 또 흐른다

붙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붙잡아도 소용없는 단호함으로

나도 강이 되고 싶다

엄마 옆에 누워서 흐르고 싶다

엄마 젖 만지며 한없이 꺼지고 싶다. 


- 졸시, ‘강변에 서서’ 전문.


시라고 부를 것도 없는 치기어린 감상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제 마음은 진실했습니다. 어떤 글을 좋은 글이라 하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솔직하게 쓴 글은 좋은 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쓴 글을 올려놓고 보니 새삼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호칭입니다. 먼저 나온 호칭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강변에 서서'에선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생각나는 글이 있습니다. 안양교도소에서 재소자 대상 인문학 강좌를 하던 때였습니다. 재소자들에게 가슴에 담아둘 시 한 편 씩 지어보라는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외롭고 힘들 때 자신이 쓴 시를 읊조리면 마음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는 조언을 덧붙이면서였습니다. 재소자 중 한 명의 글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목도 없는 시였고, 시라 부를 만한 형식을 갖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 마음을 흔들어 놓은 글이었습니다. 


"태어나 줄곧 엄마라 부르던 분을 언제부턴가 어머니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마도 제 키가 엄마 키보다 커졌을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론 줄곧 어머니라 불렀습니다.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고, 어머니가 첫 면회를 오셨습니다. 보자마자 눈물이 났습니다. 뜻밖에도 내 입에서는 그간 줄곧 부르던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키는 여전히 제가 더 큽니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온 뒤로부터는 다시 어머니를 엄마라 부르게 됐습니다. 마음의 키는 여전히 엄마보다 훨씬 작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안양교도소, 어느 재소자의 글. 


***

이 글을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제 졸저에도 수록했습니다.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인 중 한 명이 보내온 글 중에 위의 재소자 얘기가 담긴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난 달 시작한 어르신을 위한 인문학 강좌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르신 한 분이 반갑게 저를 맞더니, 어디선가 봤던 그 글의 출처를 알아냈다며 보재주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세상에나, 얼마전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의 글이었습니다. 생전 이어령 선생이 낸 책에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인문학을 듣는 어르신이 보내온 고 이어령 선생의 글을 아래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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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어머니 


어느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죄수들에게 물었답니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보고 싶냐?"고...

그랬더니 두개의 대답이 가장 많았답니다.

"엄마"와 "어머니"라는 답이.

왜 누구는 '엄마'라고 했고 왜 누구는 '어머니'라고 했을까요?

둘 다 똑같은 대상인데...

그래서 또 물었답니다.

엄마와 어머니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랬더니, 나중에 한 죄수가 이렇게 편지를 보내왔답니다.

"엄마는 내가 엄마보다 작았을 때 부르고,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보다 컸을 때 부릅니다! "

즉, 엄마라고 부를 때는 자신이 철이 덜 들었을 때였고, 철이 들어서는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첫 면회 때 어머니가 오시자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부여안고

"엄마~!" 하고 불렀다고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엄마와 어머니의 정의를 명확하게 한 곳은 없겠지만,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불가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따르면, 엄마는 우리를 낳을 때 3말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시고, 낳아서는 8섬 4말의 혈유(血乳)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주민등록증 외에 또 하나의 증을 가지고 계십니다. '골다공증..'

- 그런데 아버지는 손님 -

'힘없는 아버지’에 대한 슬픈 이야기 하나 하겠습 니다.

유학간 아들이 어머니와는 매일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는데, 아버지와는 늘 무심하게 지냈답니다.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 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이렇게 유학 까지 왔는데, 아버지께 제대로 감사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만 부모 같았지, '아버지는 늘 손님처럼 여겼다’ "라고 말입니다.

아들은 크게 후회 하면서

 ‘오늘은 아버지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겠 다’는 생각으로 집에 전화 했습니다.

마침 아버지가 받았는데, 

받자마자 

"엄마 바꿔줄게!” 하시더랍니다.

밤낮 교환수 노릇만 했으니 자연스럽게 나온 대응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니요. 오늘은 아버지 하고 이야기 하려고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돈 떨어졌냐?”고 물었습니 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돈 주는 사람’에 불과했던 겁니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큰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너무 불효 한 것 같아서 오늘은 아버지와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고 싶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

“너, 술 마셨니?” 하더랍니다..�

- 故. 이어령 교수 글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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