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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나 Aug 22. 2023

쉬어가기

[2023.8.14.~8.20.] 미라클 모닝 휴식 주간


 미라클 모닝 없는 한 주가 지나갔다. 방학 내내, 아니 그전부터 종종거리며 초고를 완성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휴식이랄까. 한편으로는 그에 밀려 하지 못한 것들을 해치우는 일주일이었달까.



Aug 14.


 지난주 금요일, 초고를 보냈다. 그 후 주말 동안 예상치 못한 해방감을 느꼈다. 요즘은 뭘 하든 ‘~하고 글 써야지’가 사고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제 초고에 대한 피드백이 올 때까지 일단은 손을 놓게 되었다. 밥을 먹은 뒤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기 전에, 무엇을 하든 그 자리에 어떤 할 일을 둘 지는 나의 자유다. 지금도 나는 자유의지로 글자를 적고 있기는 하지만 시일에 맞춰 글을 적어 내는 것과 일기는 다르니까.


 토요일에는 조리원에서 연계해 준 스튜디오에서 만삭 촬영을 했고, 일요일에는 이전날의 스튜디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혀니의 의견에 따라 다른 곳과 계약도 했다. 웨딩 사진도 찍을 때에는 고심하지만 나중에는 잘 펼치지 않듯, 아이 사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꾸준히 사진을 찍어 따로 앨범을 만들어주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는데 남편은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최대한 예쁜 곳에서 다양한 모습을 남겨주고 싶단다.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려고 해도 남아있는 사진이 없어서 아쉬운 자신과는 다르게 꾸준히, 많이, 예쁜 사진들을 찍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어 마음을 굽혔다. 덕분에 토롱이는 뉴본 촬영도, 50일 촬영도, 만삭 촬영도 두 번 하겠구나… 고생할 토롱이도, 나도, 혀니도 빤히 보인다. 부디 사진이 잘 나와서 혀니의 어린 시절 사진에 대한 아쉬움도 씻겨지고, 토롱이와의 추억도 잘 남기면 좋겠다.


 어제 아침에 다녀온 홍콩식 브런치 카페가 매우 만족스러웠다는 내용을 남긴다. 경의선 숲길에 있는.. 이름이 뭐였더라. 만월. 프렌치토스트가 맛있다. 과일을 함께 주면 더 좋겠다.


 오늘은 글쓰기 굴레에서 잠시 벗어난 기념으로 그간 밀린 일들을 해치웠다. 우선 자동차 점검 일정을 잡았고,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임산부라 흉부 엑스레이와 자궁경부암은 제외하고 간략하게 할 예정이다. 금식과 채혈… 생각만 해도 별로지만 어쩔 수 없지. 카드사에 전화해서 포인트 관련 상담도 했다. 이사 오면서 엘지에서 가전을 구입했는데 결제 방식이 어마어마하게 복잡하다. 지금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한화 단체 보험 청구도 했다. 학교에서 드는 단체 보험인데 특약을 신청했던 터라 임신 관련 청구가 가능하다고 한다. 우선 난임병원에서의 자료만 올렸다. 무려 60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신기하게 한 장에 만 원꼴로 보상금이 들어왔다. 워낙 난임이니 임신이니 보상이 잘 안 된다고 들어서 예상보다 큰 보상금에 놀랐고, 오늘 낮에 앱으로 신청했는데 몇 시간 만에 입금까지 되어서 더욱 놀랐다. 처방전도 추가로 올리고, 출산 후에는 강북 삼성 병원에서 진료받고 출산한 내역으로 다시 한번 청구를 해야겠다.


 책도 반납했다. 한동안 집에 있는 육아 책을 읽을 예정이라 또 빌려오지는 않았다. 토롱이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허둥지둥할 나를 위해서 조금이나마 육아 지식을 쌓아두기로 했다. 책을 읽는다고 우아한 육아생활이 될 리는 없겠지만, 마음의 준비라도 해두고 싶다.


 오후에는 산책도 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뜨개 가방에 책 한 권과 펜 한 자루를 넣고, 부채를 손에 쥐고 길을 나섰다. 경의선 숲길을 따라 대흥역 근처까지 걸었다. 가는 길에 보았던 2층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조용히 책을 읽던 사장님이 아주 친절한, 큰 창문에 경의선 숲길이 담기는 카페다. 카페를 사랑하는 나는 여기에 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땀이 잔뜩 났지만 임산부여도 ‘안정을 취하라 ‘는 말에 반항한 것 같아 또 한 번 기분이 좋다. 하지 말라는 걸 하면 원래 기분이 좋은 법이다.


 할 일을 많이 했다. 꼭 해야 하는,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도 필요한 일들이었다. 그런데 귀찮다고, 할 일이 많다고, (또는 피 뽑는 게 무섭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었다. 쓸데없는 일은 거르되, 필요한 일은 미루지 않는 삶. 효율적으로 부지런한 삶을 살자. 욜로니 여유니 중요하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한정된 시간을 사는 존재이므로.



Aug 17.


 평화로운 광복절, 그리고 분주한 이틀을 연달아 보냈다.


 수요일에는 오전에 학교를 찾았다. 출간 전에 교장 선생님을 뵙고 겸직 허가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교장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건 5분 남짓, 그러기 위해 왕복 한 시간 반을 운전했다. 아직은 그게 예의이고 적합한 절차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겸직 허가 신청서에 사유와 기타 정보들이 자세히 포함되는데도 굳이 대면 보고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예전을 떠올려보면 조퇴를 하려고 해도 교감 선생님께 우선 대면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나이스에 복무를 바로 올리면 된다. 겸직 허가나 병가도 그렇게 바뀌기를. 교육청에서 업무 경감을 매년 부르짖지만 실제로 잘 되고 있지는 않다. 우선 주어진 권리를 합당하게 쓰는데 추가적으로 쓸데없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는지.


 학교를 다녀온 뒤 저녁에는 두 번째 만삭 촬영을 했다. 지난 일기에 적었듯 한 번도 할까 싶었던 만삭 촬영을 두 번이나 하다니. 분위기나 색감이 이전 스튜디오와 많이 다르다. 일단 혀니가 좋아하니 난 그걸로 됐다. :-)


 목요일은 한층 더 바빴다. 아침부터 건강검진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날 9시부터 금식을 하고, 이튿날 9시에 집을 나섰다. 스티커가 붙여지고 뚜껑이 씌워지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치약처럼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착착 검사를 진행했다.


 엑스레이는 건너뛰고 한 시간 만에 끝난 검사. 집에 가기 전, 산책 겸 운동으로 병원 바로 옆 경희궁과 서울 역사박물관을 들렸다. 경희궁은 작지만 고요했다. 계단이 가팔라서 숭정문 앞까지만 갔지만 고즈넉한 도심 속 궁은 짧은 아침 산책에 그만이었다. 그 옆의 서울 역사박물관은 시원했다. 한양 여성 문밖을 나서다 전시가 한창이었다. 작은 전시였지만 막상 보다 보니 집중. 궁녀, 의녀, 기녀, 여인전이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삶을 상상해 본 시간. 그 와중에 수놓은 방석이 왜 이리 아름다운지!


 낮에는 토롱이 침대에 둘 매트리스가 도착했고, 토롱이 정기 검진을 위해 다시 한번 병원으로 향했다. 하루에 병원을 두 탕 뛰다니.. 역시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손발만 잔뜩 보고 돌아왔다. 몸무게는 어느덧 1.49kg. 진료는 2분쯤 걸렸던 것 같은데 대기는 두 시간이었다. 출산을 장려하려면 산부인과나 소아과 등 관련 병원부터 이용하기 쉽게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


 저녁에는 며칠 동안 열심히 빨고 말리고 털고를 반복한 손수건과 천기저귀, 아기 옷 등을 지퍼백에 담았다. 건조기가 없었을 땐, 아니 세탁기마저 없었던 시절에 엄마들은 다 이걸 어떻게 감당했을까. 물론 지금처럼 유난스럽게 위생을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하긴 육아는 템빨이라고 분유제조기부터 기저귀 갈이대까지 육아를 도와주는 물건들이 많이 생긴 반면, 개월별로 챙겨야 할 물건들과 육아법이 복잡해져서 요즘은 요즘대로 육아가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퍼백에 분류하고 라벨링까지 하고 나니 뿌듯함이 한껏 차올랐다. 작디작은 배냇저고리와 양말을 신겨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Aug 20.


 여유롭고 보람찬 한 주를 보냈다. 금요일에는 여행도 떠났다. 30주가 넘어가면서 더 늦기 전에 바다를 보고 싶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예약한 양양 호텔. 지금 31주 차를 맞이하고 보니 잘한 일이다. 조금만 걸어도, 날이 약간만 더워도 너무 쉽게 지친다. 허리도 많이 아파서 자는 동안 몇 번이나 깨어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잠든다. 30주 넘어 해외여행 가는 임산부들 정말 대단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양양이었다. 금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도 했지만 서울 양양 고속도로 덕분에 휴게소를 들렸는데도 3시간 만에 도착한 낙산 비치 호텔. 조금 노후됐지만 바닷가와 낙산사가 바로 옆이라 골랐다. 결과적으로는 입지만으로도 만족. 특이한 것은 번호표를 뽑고 그 순서대로 3시부터 체크인을 한다는 것. 우리는 오전에 도착해서 6번을 뽑았다. 예스!


 번호표도 뽑았으니 점심을 먹을 차례. 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커피와 던킨 도넛을 먹긴 했지만, 막상 설악산 오색식당에서 산채나물 정식 한 상을 받고 보니 허기가 졌다. 멋도 모르고 주문한 메뉴에 더덕구이가 없어 아쉬웠는데 사장님이 도토리묵과 함께 서비스로 주셔서 감사히 잘 먹었다. 밥을 먹으며 매미 소리, 계곡 물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때 부모님과 함께 했던 동해안 여행이 생각났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흠뻑 빠져계셨던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하얀 무쏘에 텐트와 코펠, 김치와 쌀을 싣고 몇 주에 걸쳐 동해안 일주를 떠났다. 물안계곡에서 시작한 우리 여행은 춘천, 부산 등을 거쳐 동해의 등줄기를 타고 남해까지 내려왔다. 그중 가장 신기하면서도 좋았던 기억이 설악산 오색약수터다. 오토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물을 길어와 코펠에 찌개와 밥을 해 먹었다. 엄하고 불편했던 아빠와 함께 오색약수터에서 마신 물맛은 지금도 잊지 못할 만큼 특별했다. 그 후로 부모님과 함께 다시 가지 못했다는, 28년이 지나서야 이렇게 왔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펐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금, 이제는 같이 오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기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슴 깊이 되새긴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설악산로 카페. 혀니가 고른 숲 속 카페였다. 한옥과 마당이 아름답고 여유롭게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보통 이런 곳은 맛이 없을 때가 많았는데 여기는 꽤나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청귤 스무디 한 잔만 마셔보아도 다시 올만한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날 들린 설온 카페도 숲 속 온천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다. 바다 뷰 카페를 좋아하는데 이번 양양 여행 중에는 바다 대신 초록으로 가득한 창을 마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족. 참고로 설온 카페는 푸딩, 후르츠 산도 베이글, 버터크림 라테 모두 다 맛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3층 객실을 받았다. 방은 좁지 않은 편이지만 4층까지밖에 없는 호텔이라니 낯설었다. 그래도 언덕 위에 있다 보니 주차장 섞인 오션뷰마저도 가슴이 뻥 뚫리게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한숨 자고 슬렁슬렁 낙산사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점이 최고. 낙산사는 5:30에 입장 종료인데 4시가 넘어 일어났는데도 가까운 위치 덕분에 여유로웠다. 낙산사는 무료입장인 데다가 중간중간 쉴 곳이 많았다. 노송들 사이로 부는 바닷바람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같은 그늘이어도 대로변이나 휴게소 콘크리트 바닥 위를 걸으면 숨 막히는 더위의 기운이 있다. 몇 분만에 사람을 진 빠지고 짜증 나게 만든다. 그에 비해 자동차의 열기나 도심의 지열이 빠진 낙산사의 흙길은 그저 시원함 자체다. 해수관음상까지는 못 갔지만 중간에 정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바다를 품은 절의 전경이 속 시원하게 펼쳐졌다.


 저녁에는 송이버섯마을. 꽤 오래 여자친구가 없었던 혀니는 이렇게 친구들과 갔던 곳에 나를 종종 데려가곤 한다. 결혼식날 축사에서 혀니 친구가 커플 모임에 혀니 혼자 나와 쿨한 척했다고 했는데 그때 쌓인 한을 지금 나랑 푸는 듯 ㅎㅎ 송이버섯과 차돌박이가 한가득 든 전골냄비와 버섯으로 만든 온갖 밑반찬들이 앞에 놓였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콧김에 버섯향이 흘러나왔다. 간이 심심한데도 국물에 자꾸 손이 가는 맛. 소주를 먹지 못하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바다 산책. 노을을 맞으며 모래 위를 걸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순간. 그리고 대화가 끊이지 않았던 다음날.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개학이 조금은 덜 아쉽게 느껴질 만큼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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