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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나 Dec 07. 2023

육아는 엄마의 시간을 훔쳐간다

23.12.7.



23.12.7.


노트북을 열고, 문서 앱을 열어 날짜를 적어 넣는 데 두 달이 걸렸다. 그만큼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엄마의 정신을 바쁘게 하고, 몸을 피곤케 하며, 무엇보다 시간을 훔쳐간다. 아, 또 토롱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의 일기는 여기서 또 멈춰지는구나.



토롱이가 집에 온 뒤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일의 연속성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난 분명히 빨래를 돌리러 가는 길이었는데 어느새 젖병을 들고 분주히 분유를 타고 있다. 기저귀를 갈던 도중 손수건을 집어 들어 아가가 게워낸 찌꺼기를 닦고 있고, 온라인으로 장을 보던 중에 자다 깬 아가를 달래러 간다. 그러다 보면 집 곳곳에는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빵조각처럼 내가 아이로 인해 멈춘 일의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빨래통에는 빨래가, 기저귀 갈이대에는 못 다 버린 기저귀가, 그리고 장바구니에는 주문하다 만 먹거리들이.



나의 일기도 멈춰진 것들 중 하나다. 아니, 멈춰지기는커녕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 망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나는 일기를 쓰는 것이 큰 기쁨이요, 내 삶에 주어진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하는 나는 하루 종일 베이비타임 앱에 수면과 수유, 기저귀 간 시간을 적어 넣느라 분주하다. 그게 아니면 거실에 앉아 홈캠에 찍힌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 조금 더 쉴 수 있겠다. “



이렇게 육아는 나의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쥐도 새도 모르게 가져가버린다. 그리고 수년 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훌쩍 커버리고 나는 나이만 먹었어'라며 헛헛해하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인스타그램에서 아이를 키우며 매일 피드를 올리고, 영상을 만들고, 공구를 진행하는 육아 인플루언서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하루만 48시간 일리는 없는데 나에게는 여력이 없다. 그저 내가 정한 목표는 아이를 낳기 전의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을 하며 나를 살피는 시간을 갖는 것, 즉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 가능하면 매일. 그것이 육아로부터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10시 47분부터 널브러진 오늘 일기는 13시 37분에 주워 담아졌다. 적어도 시작과 끝이 있었으니 얼마나 기쁜 날인지. 게다가 토롱이와 둘이 카페에 처음 간 날이다. 토롱이는 커피와 산책을 글쓰기만큼이나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힙시트에 구겨 넣어진 채로 집 앞 카페까지의 걸음을 허락해 주었다. 이제 일기를 마치고 힙시트 차는 법 영상을 봐야겠다.



새로운 일기장을 사서 펼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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