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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Jul 18. 2021

벽간 소음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

더 큰 소리에 집중하기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한 작년 겨울, 외부 모임을 자제해 달라는 나라의 부탁을 듣고 옆 집 남자는 지인 네댓 명을 집으로 불러 모았다. 새벽 두 시가 되어도 깔깔거리는 소리와 잔뜩 상기된 목소리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잔 부딪치는 소리를 좋아하는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지만, 벽을 타고 전달되는 타인들의 흥분감은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침대에 누운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벽간 소음의 불편함을 처음 겪은 나는 마냥 화가 난다기보다는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 시간에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며 놀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아니지, 나도 가끔 친구들을 불러 신나게 놀고 싶을 때가 있으니 저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내가 너무 예민한가? 오늘만 봐줄까? 한 시간만 더 참아 볼까? 아니지, 이렇게 참는 내가 바보인 걸까? 


오랫동안 속으로 화를 삭이다 결국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처음 보는 옆집 여자의 주의를 받고서 아까보다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의 톤과 조심스러운 어투의 대화들. 하지만 대화 내용이 벽 너머로 들리는 건 여전했다. 아, 이건 사람이 아니라 벽의 문제구나. 한쪽에서는 최대한 조용한 대화를 나누려고, 한쪽에서는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각자의 노력을 기울였다. 인간들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내 집과 옆 집 사이에 세워진 가녀린 벽은 고스란히 그 소리를 전달했다. 


그날 이후 벽간 소음에 대한 관심은 내 안에 자연스레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벽간 소음 대처법들을 열심히 알아보다 내가 어젯밤 했던 행위는 법정에서의 나를 불리하게 만드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옆 집의 파티는 그 후 몇 번 더 반복되었고, 더 이상 초인종을 누를 수 없게 된 나는 경비실에 전화해 옆집의 상황을 일러바쳤다. 한 번은 잠결에 주먹으로 벽을 치며 '잠 좀 자자' 하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이쯤 되면 나는 벽간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총동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 벽간 소음 해결이라기보다는 나의 편안한 밤을 위해. 내 발악에 지쳐 특별히 신경을 쓴 건지, 한동안은 매우 평화로운 상태로 지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옆집 남자에게는 밤늦게 친구와 통화를 하며 게임을 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조용했던 나의 밤은 다시 시끄러워졌고, 대처법을 궁리하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친구와 통화를 하는 행위에 마저 내가 간섭해 버리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벽간 소음으로 지친 마음 한편에 아주 조금 남아 있는 인류애를 억지로 끄집어 내 이번에는 내가 참자고 다짐한다. 전화 통화 소리에 발악하는 것은 동시에 나 또한 내 집에서 누군가와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의미하기에.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거든. 출근을 위해 일찍 잠들어야 했던 나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귀마개를 끼고 잠을 청했다. 내 집에서 내가 귀마개를 끼고 자야 하다니. 불만을 가지려면 천장을 뚫을 만큼의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웬걸? 귀마개를 끼자 온 세상이 금세 조용해졌고, 억울한 마음 또한 덩달아 가라앉았다. 누구나 한 번쯤 우리 몸에 전원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귓구멍에 귀마개를 꽂는 이 작은 행위가 내가 그토록 바랐지만 방도를 찾지 못했던 전원 버튼 끄기를 실현해주다니. 귀마개를 낀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깊은 잠에 들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었나. 고작 2천 원짜리 귀마개 하나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했던 고민과 불만이 싹 씻겨 내려갔다. 지금까지의 대처법들과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나를 희생했다는 것이다. 옆집 사람이 아닌 내 귀에 약간의 불편함을 선사하는 행위를 통해 평화를 되찾았다. 잘못한 건 옆집 사람인데 왜 내가 불편함을 겪냐고? 아까도 말했 듯 이건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벽의 문제였다. 나는 그를 탓할 만큼 탓했고,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늦은 밤의 전화 통화는 3주간 계속되었고,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나는 그냥 귀마개를 끼고 자기로 했다.


사회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따박따박 말하고 그렇게 해서 작은 이익이라도 챙기는 사람들을 강하고 똑똑한 사람이라 여긴다. 동시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고 사는 사람은 나약하고 미련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다. 나 역시 분쟁을 일으키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사는 류의 사람에 속한다. 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입을 막으려고 몸을 던지기보다 자신의 귀에 귀마개를 끼고 모든 상황을 종료시켜 버리는 자가 대단해 보인다. 경쟁이 필수가 아니라는 말이 슬슬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즘의 세상. 이익과 손해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관습의 부속물일 뿐인데 말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에 용감하게 맞서는 대신 조용히 내 귀에 귀마개를 끼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일들이 많지 않을까?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불편함을 스스로 감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온몸을 받쳐 뜨겁게 맞서야 할 일은 따로 있으니, 생각보다 별 거 아닌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는 말자는 것이다. 사회가 강요하는 용감함에 대한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내 마음이 하는 소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게 아니라면 때로는 피하는 것도,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귀마개를 끼고 외부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을 통해, 내 안에서 들려오는 더 큰 소리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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