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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Jan 25. 2023

내가 변하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리처드 파워스: 알에이치 코리아;2022)

로빈은 더 알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 노래기를 왕골 밭에 내려놓았고 우리는 길을 계속 갔다. 나는 아들에게 그 맛있는 냄새가 청산가리이며, 많은 양을 쓰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다. 로빈에게는 정직함이 아주 중요했다. p. 36


우주생물학자 시오는 9살 아들과 살고 있다. 아들의 이름은 로빈이고 이는 새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그가 사랑하는 아내 얼리사는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이었다'로 끝나는 이유는 아내가 이제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시오는 9살 아들과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로빈은 여러 병원과 의사들에게 선천적인 정신질환이 있다는 판명을 받은 아이다. 예민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말을 할 때 발음도 불분명하다. 의사들은 '수많은 답이 제시되었고, 그중에는 해마다 이 나라에 공급되는 식량에 뿌리는 수십억 킬로그램의 독소와 연결되는 몇 가지 증후군도 포함되었다. 로빈의 두 번째 소아과 의사는 로빈을 자폐 '스펙트럼'에 넣고 싶어 열심이었다. p.17'라고 말했고, 시오는 그들이 로빈을 어떤 범주에 넣고 치료하려고 하는 지점을 반대한다고 할 수 있다. '스펙트럼이라는 게 그런 것이니까. 인생 자체가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진 무질서이고, 우리 모두가 연속적인 무지개 속 특정 주파수로 진동할 뿐이라고 그 남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다음에는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아마 그런 기분에 붙는 이름도 있으리라. p. 17'라고 시오가 의사가 내린 진단에 대해 생각하는 걸 보면 말이다. 


시오는 알고 있다. 자신의 아들은 예민하고 정직을 중요시 여기고, 엄마만큼이나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지만, 보통의 사람과의 관계는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학교에서는 로빈을 의사에게 데리고 가기를 요청한다. 그러나 시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종국에는 로빈의 뜻에 따라 홈스쿨링을 하기에 이른다. 병원을 가지 않고 아내의 지인과 연락하고 상담을 하다가 새롭게 개발 중인 심리치료법에 아들을 맡긴다. 


이 책의 원제는 bewilderment(당황, 어리둥절한)이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은 나쁜 쪽으로 변화해 가고만 있는 지구와 나라 그리고 주변의 상황에 당황하는 시오를 보고 지은 제목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은 작가의 마음에 있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시오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문장은 무척 아름답고 설득력이 있어서 저절로 솔깃해지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책을 읽으며 불편하고 바꾸고 싶은 내 속에 있던 어떤 미지의 마음들이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뒤늦은 소리지만,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이 마케팅이다. 대학은 브랜드를 구축해야 했다. 모든 자선 행위는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했다. 우정은 이제 공유와 ‘좋아요’와 링크로 측정된다. 시인과 사제들, 철학자와 어린아이의 아버지들,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노골적인 흥정을 벌였다. 물론 과학도 광고를 해야 했다. 나 혼자 뒤늦게 순진함을 졸업했다고나 할까. p. 260


내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권력 분립에 대한 교육 내용에는 없었지만, 국회의사당 경찰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의 책임하에 있다. 그러나 그런 구별은 지난 사 년간 사라지는 추세였다. 이제는 국회 자체가 백악관의 지실을 받았고, 임명받은 판사들은 이에 협조했다. 이 나라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 덕분에 꾸준히 일어난 규범 파괴는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를 대통령의 비전 아래에 합쳐 놓았다. 법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두 경관은 이제 대통령을 따랐다. p. 318


선거가 다가오는데 양당 지지도는 막상막하였다. 혼돈을 추구하는 행정부의 대리인들은 뉴스거리가 될 조치 하나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십자군 전쟁’을 노리고, 환경 운동을 때리고, 과학을 함부로 대하고, 납세자의 돈을 아끼고, 근거지에는 고깃덩이를 던져 주고, 상품 문화에 대한 새로운 위협을 막았다. p. 333


전체적인 작가의 주장과 이를 표현하는 문장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멋있었으나 엄마인 나로서는 시오가 로빈을 대하는 방식과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어디까지 무지하게 아들을 키우나 지켜보자 하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는데, 시오는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빠였다. 시오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주변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얼리사가 살아있을 때는 멋진 그녀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인 것 같지만 사람 변하지 않는 것이니 절대 그랬을 리가 없다. 얼리사는 자기 일도 열심히 하면서 혼자 섬세하고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 로빈을 키우느라 지쳤을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아는 시오지만 결국 자기 고집대로 아이를 키운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엄마가 보기엔 방목이다. 요즘 유행하는'금쪽이'라는 말을 만드신 오은영 님은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안 되는 것은 안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이를 일관되게 아이를 지도하는 것이 올바른 양육이다. 나는 이에 동의한다. 그런데 책 속의 아빠는 세상에 대한 온갖 부조리를 잘 파헤지면서 비건인 로빈이 우유와 시리얼을 먹는 장면이 계속 나온다. 로빈은 정직한 것을 좋아하는데, 아빠는 계속 좋은 쪽으로 거짓말을 한다.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런 상황들이 나는 불편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작가마저도 싫어졌다. 어쩐지 작가가 시오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니 자꾸 고집쟁이 아저씨가 떠오른 까닭이다. 삶은 실수의 축적으로 구성된다. 디 라미가 내 아들을 구경거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들고 나타났을 즈음에는 내가 저지른 양육 실수가 얼마나 많은지 더 세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p. 272 시오가 이 말을 했을 때는 정답!!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리고 '작가님 여기저기 적혀있는 평가처럼 소설을 시처럼 아름답게 잘  쓰신다는 것도 인정하고, 세상에 문제제기를 제대로 하시는 것도 인정하지만 제발 내가 다 알고 있다는 자신의 틀에만 갇혀있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시 찬찬히 복기해서 보다 보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작가의 큰 그림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오'라는 인물은 주인공치고는 비호감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지만, 끊임없이 자기변명을 하고, 주변과 제대로 소통해 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비판만 하는 사람이다. 우주생물학자라는 직업을 살려 지구보다는 우주를 향해 안테나를 세운 사람이다. 그는 결국 나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불만을 가지고, 완벽한 소통을 하지 못해 외롭고, 끊임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나를 완벽하게 사랑해 줄 누군가와 나 대신 세상을 바꿔줄 사람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다. 내가 변하고 힘을 내기 전까지는. 작가는 어쩌면 이 모든 걸 안배하여 이 책을 쓴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 이 행성은 훌륭한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훌륭했다. 뜨거운 태양과 쏘는 듯한 비와 살아 있는 흙냄새, 어떤 계산으로도 결코 가질 수 없는, 변화하는 세상의 공기 곳곳을 수놓는 끝없는 생명들의 노랫소리만큼이나 훌륭했다. 마지막 구절


행성의 아름다움을 늘어놓는 시오의 마지막 생각을 보면서도 ''그래 지구는 아름답지'가 아니라, 저 인간 아직도 철이 덜 들었네.'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내가 생각한 그게 맞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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