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왕 수바:이지은: 웅진주니어:2023
이번 전설은 '태양 왕 수바'다. 팥빙수의 전설, 친구의 전설 시리즈를 쓴 이지은 작가님은 여름에 맞춰 수바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왜 여름에 맞췄다고 하냐면 표지에 등장하는 '수바'의 생김새가 흡사 수박을 닮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머니가 수박을 공 굴리듯 굴리며 파도를 타고 있고, 그 아래로는 물속에 둥둥 떠 다니는 수박들이 있다. 표지의 뒷면을 펼치면 할머니가 수박을 두드리며 '수박이냐?'묻고 있다. 이번에도 이전 두 전설에 등장한 빨간 보자기를 머리에 쓴 할머니가 등장한다. 작가의 이름 옆에 역시나 '수박의 전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책을 펼치면 이지은 작가가 들려주는 수박이 이 세상에 생겨난 전설이 시작된다. 이야기는 한국의 전래동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뿐만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있어서 우리가 흘려 들었던 옛날이야기들의 보인다. 어른이 읽는 다면 정감 어린 옛이야기의 익숙한 요소에 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옛이야기를 모르는 아이들도 물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돼지를 닮은 수바의 모습을 처음 본 할머니는 '돼지여?'라고 말한다. 정중한 태도로 자기가 '태양 왕 수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태양 왕수박?'이라고 말한다. 얘기를 잘 들어달라는 수바의 말에 할머니는 '아까부터 잘 듣고 있었다. 수박아'라고 말하며 귀를 덮고 있는 빨간 망토를 살짝 들어 귀를 보여준다. 각종 아기자기한 말장난과 티키타카, 할머니의 무표정과 시시각각 변하는 수바의 표정은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웃음 포인트다.
하늘에서 떨어진 '태양 왕 수바'는 어쩌다 속아서 머리 두 개 달린 용들에게 날개를 빼앗겼다며 할머니에게 날개가 다시 달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한다. 날개를 찾아 주면 용의 보물을 주겠다는 말에 할머니는 수바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수바는 날개를 찾는 방법을 땅의 신,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수바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 할머니는 "예끼, 빌기만 해서 될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행동과 지혜로 수바의 날개를 찾아준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는 용인 수바에게 선물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수박씨라는 것으로 전설은 마무리된다.
신나게 책장을 넘기며 읽다가 할머니의 기묘한 행동과 번뜩이는 재치에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유쾌하고 즐겁게 이어지던 전설과 신화의 시대 전래동화는 할머니의 말과 행동으로 사람의 전설이 된다. 작가는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 안에 가득한 에너지를 믿으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이미 책을 읽을 때 뭘 가르쳐야지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나 같은 꼰대의 생각일 뿐일지도 모른다. '태양 왕 수바'는 그냥 신나는 이 여름 시원한 수박, 수박아이스크림, 수박주스, 수박국수 먹으며 즐겁게 놀라는 이야기였을 거다.
초등학생 딸에게 읽어 보라고 주었다. 책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비가 계속 내려 바닥도, 옷도 눅눅하다, 물기가 물씬한 소파에 널브러져 있으니 내 마음도 축축해지는구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듣든지 말든지 귀여운 목소리로 조잘조잘 수바와 할머니의 대사를 읽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가 읽어주는 '태양 왕 수바'의 말맛이 귀에 들어오더니,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의 평상에서 수박을 아작아작 씹어 먹다가 수박씨를 흙바닥에 퉤퉤 뱉던 어느 날의 내 팔의 뜨거움이 느껴졌다. 그렇지. 여름은 태양이지. 그 아래서 먹는 시원한 수박이지. 그래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