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키스슈타인:지넷 윈터슨:민음사: 2019
프랑켄슈타인과 프랜치 키스를 조합해서 만든 것 같은 제목 프랭키스슈타인은 무척이나 생소하여 오랫동안 제목이 제대로 외워지지 않았다. 책의 표지는 사람의 얼굴인데 상하좌우 대칭을 이룬다. 그 사이에 절반의 빨간 입술이 유독 눈에 띈다. 빨간 입술과 동일한 색깔로 01N 같은 숫자와 글자가 세로로 줄지어 흐른다.
책의 첫 문장은 '1816년 레만호 현실은 수용성이다.'로 시작된다. 그리고 등장하는 익숙한 인물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가 남편 퍼시, 바이든과 함께 스위스에 체류중일 때 비가 많이 오던 시기 서재에서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임 중에 나온 이야기가 시작이었음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 메리 셀리에서도 이 내용이 나온다. 프랭키스슈타인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비가 계속 내리는 스위스, 모든 것이 물에 젖어 있는 듯한 저택의 공간에서 메리는 남편과 있다. 메리는 자신이 본 과학실험을 떠올리고 괴물의 존재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글을 쓴다. 하지만 한계에 부딪히고 다시 쓰고, 또 고민하고 그렇게 글을 써내려 간다.
스위스 바이든의 집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메리의 아버지가 결혼하면서 자매가 된 클레어와 바이런을 돌보는 의사 폴리도리이다. 폴리도리는 메리와 같이 이곳에서 책의 소재를 발견해서 글을 쓴다. 메리가 퍼시와 사랑의 도피를 할 때 함께 집에서 나온 클레어는 바이런과의 사이에 딸을 낳는다. 딸은 훗날 수학자가 된다. 그녀의 시대도 이 책의 한 축을 차지한다.
그리고 현재인지 미래일지 모르는, 미래일 것 같지만 현시대 어디선가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들이 벌어지는 시대가 등장한다. 이 시대의 주인공은 트랜스젠더 의학박사 라이다. 라이는 우연히 만난 빅터라는 과학자와 사랑에 빠진다. 여기에 섹스봇 제작자 론이 등장하고, 기독교 광신자 클레어와 기자 폴리가 나온다. 그들은 1816년 스위스에 함께 있었던 4명의 인물인 메리, 퍼시(또는 프랑켄슈타인의 빅터), 바이런, 클레어, 폴리와 대칭을 이룬다.
지넷 원터슨은 1959년에 태어났으며 현재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다양한 책을 쓰고 있다. 이미 수많은 경험과 글쓰기를 했던 작가는 '12바이트'라는 인문에세이를 쓰고, 프랑키스슈타인을 세상에 내놓았다. 12바이트와 프랑키스슈타인 또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페미니즘과 비트와 아톰의 세계가 혼용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 두 가지에 끌림을 느낀 작가는 비슷한 주제의 인문학 도서와 소설을 써냈다.
작가는 책을 어떻게 쓰기 시작했고, 독자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책의 첫 문장은 '현실은 수용성이다'로 시작된다. 나는 이상하게 이 문장이 좋았다. 계속해서 비만 내려 집 안의 모든 물건이 습기에 절어 있는 여름의 장마에 다시 몸을 담근 기분을 던져준다. 어둡고 습한 기운이 내 몸에 수분을 가득 채운다. 이불이며 옷이며 수건이 물을 머금고, 바닥마저도 물에 젖어 있는 어느 날의 기분 말이다.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메리 셀리가 어떤 기분과 생각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썼는지 독자는 금세 이입된다.
반면 라이와 빅터의 이야기는 몰입이 어렵다. 감정의 파고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왜 사랑에 빠지고 어떻게 감정을 이어가는지 알 수 없고 섹스봇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퍼트리는 론의 주장만이 내 머리를 맴돈다.
여기 내가 있다. 눈에 띄지 않는 익명의 존재로서 길을 걸어간다. 나는 현존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난동도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 내가 느끼는 것들은 나만의 사적인 베들럼(날리 법석)이다. 나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만의 광기를 감당해 낸다. 그리고 내 심장이 미어진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박동한다. 삶의 기이한 점이다.
폴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온다.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요?
그럴까 싶다. p.443
1816년의 메리와 현재의 라이는 같은 고민에 빠져있다.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 메리는 한 사람으로 작가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여성이라는 벽에 갇혀있다. 그의 남편 퍼시는 메리를 훌륭한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라이는 트랜스젠더를 통해 남성이 되었다. 그리고 남자도 여자도 사랑한다. 자기 몸의 정체성을 명확히 깨닫는 순간 라이는 소수자가 되었다. 라이와 메리의 머릿속은 난동 투성이지만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익명의 존재로 살아갈 뿐이다. 나도 그렇다. 443쪽의 문장은 프랭키스슈타인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게 되었다. 라이가 사랑하던 빅터가 왜,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알 수 없는 순간 라이는 그의 집을 빠져나와 거리를 걸으며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마치 데카르트의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난리법석인 내 머릿속만이 여기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현재의 세계는 아톰과 비트의 세계를 오간다고 말한다. 영화나 책에서 몸은 없고 뇌의 일부분만 존재하는 상황을 꿈처럼 그리는 경우가 자주 등장한다. 꿈은 언제나 아름답진 않다. 악몽일 경우도 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어떤 상상일 때도 있고, 내가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소망일 때도 있고, 때로는 실제로 내일 아침이면 실현될 어떤 것일 때도 있다. 메리는 1816년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과학연구 발표회를 보고 프랑켄슈타인을 썼다. 라이는 빅터와 론이 개발한 과학적 세계를 본다. 그리고 자신의 몸과 생각을 본다.
프랭키스슈타인이 작가가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많았을 테지만 나는 크게 두 가지가 계속 읽혔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소수자인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 내가 있다'이다. 그것만 가지고 있다면 오늘 저녁 추풍낙엽처럼 또 다른 안식처를 따라 흘러가고 괜찮을 것 같다. 여기 내가 있지만 나는 외로우니까.
다시 시작해 볼까? 인간의 꿈을.(마지막 문장)
내가 있다는 전제를 잃지 않고, 삶의 기이한 점을 받아들이며, 외로움을 달래며 산다. 그러면서 사람은 인간의 꿈을 다시 시작한다. 그 꿈이 앞으로 어떻게 커갈지 모르는 채로. 꿈을 실현하기 전에 18살의 소녀 메리 셀리가 쓴 소설에서 우리는 고민과 걱정을 안고 현시대를 바라본다. 우리는 읽고, 생각하고, 실행한다. 그러면 그 꿈이 아무리 악몽이더라도 또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희망에 베팅을 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