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배부르니까 놀고먹는 거야. 아니 공장에라도 취직해야지. 욕심이 너무 많아. 나 때는 말이야, 일단 맨땅에 헤딩부터 하고 봤어.”
네? 맨땅에 헤딩하셨다고요? 저런… 그럼 어서 병원부터 가보시는 게….
나는 요새 이렇게 대처한다. 아아, 이 끝도 없는 권위주의적인 영웅담이여. 요즘 애들이 배부르다고요? 그렇다면, 일단 전 요즘 애들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돈을 벌어도 벌어도 배고프니까요. (눈물) 어떤 애들이 놀고먹는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굶주리는 것보다 더 아픈 건 소통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취업? 자소서 쓰고, 고치고. 면접 연습도 하고, 여기저기 일단 되든 안 되든 넣어보고. 어차피 준비는 우리가 하고, 해결도 우리가 한다. 단지, 힘들다는 거다. 힘듦을 알아달라는 거라고! 우리는 공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대화를 하고 있다. 마치 연인끼리 싸울 때처럼. ‘나 너무 힘들어’라는 말에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어!’라는 일방적인 형태의 대화 방식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고 나면, 지친다. 나는 분명 속마음을 말했는데, 고구마를 꾸역꾸역 삼킨 듯 속이 더 답답해진 것 같다.
유튜브에서 「당신이 옳다」라는 책의 저자 정혜신 박사님이 하신 이야기가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다. 공감되지 않는 이유는 당신의 ‘충조평판’때문이라는 것이다. ‘충조평판’은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을 의미한다. 공감은 개인의 개별성에 눈을 맞추고 한 개인의 마음을 궁금해하면, 그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판단을 내리는 데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우울해하면, ‘네 나이에 우울할 일이 뭐가 있어’라고 답하고. 힘들어하면, ‘나 때는 더 힘들었어. 복에 겨웠네’라고 답한다. 똑똑. 감정이 전달되었으면 공감이 와야 하는데, 이게 뭐죠? 아직 출발 안 하신 게 맞죠? (흑흑)
따지고 보면 청년들이 일자리난에 시달리는 건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우리가 무슨 저 외딴섬에서 태어나 홀로 크다가 20살이 되자 유람선을 타고 한국으로 짠! 하고 돌아온 게 아니지 않은가. 일궈놓은 사회에 발을 들인 것. 그뿐이다. 일자리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2가지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사람의 인원을 줄이는 것과 신규 채용 인원을 줄이는 것. 한국의 경우 후자를 선택했다. 그러니, 당연히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우리도 ‘좋은’ 일자리를 원한다.
우리 아빠도 가끔 저렇게 이야기한다. 청년들의 일자리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생각을 하신다. 따흑. 이건 꿈이라며, 두 볼을 꼬집어봐도 날 닮은 게 분명 우리 아빠가 틀림없다. 공장이라도 취직하라고? 만약 공장에 취직하겠다는 사람이 나였다면? 아빠는 과연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을까? 4년제 대학을 어렵게 들어갔고, 전혀 다른 학과를 전공했지만 ‘그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공장에 가서 열심히 기계를 돌려 산업화를 가속해야겠어!’라고 다짐한다면? 100% 아니 10000%. 우리 아빠는 절대 안 된다고 할 거다. 애들 손에 기름 묻히는 거 싫다고 뼈 빠지게 일해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니까. 어렵게 돈을 벌어놓고, 남의 집 이야기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다니!
아아. 안 되겠다. 이제는 대륙을 뒤집어엎을 만큼! 제대로 된 소통이 필요하다. 작은 규모가 아닌 대규모에 걸친 담론이 필요하다. 청년의 서러움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어른이 있어야, 현실적인 대안이 만들어질 것이다. 큰 그림을 위해 작은 그림부터 시작해 보자. 일단 가까운 곳부터 점령해야 한다. 자자, 다들 본인의 아빠부터 시작해 아빠 친구들로 설득의 범위를 늘려보자. 혹시나 아버지가 낚시하신다거나 등산을 가신다면! 와 이거 완전 땡큐다. 같이 따라가서 설명해 주자. 그렇게 하면, 삽시간에 청년을 사랑하는 아버지들이 줄을 서실 게 분명하다.
“아빠 이게 청년들 문제가 아니라니까? 완전 엄한 곳에 화풀이하는 거라고. 내 이야기를 좀 들어봐. 에헤이 끊지 좀 말고! (*$^%@#@$^…)”
ps. 우리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