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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낭 Jan 26. 2023

여학생과 여교사를 위한 학교는 없다.

진정한 성폭력 예방은 성평등한 교육 환경에서부터

중학교 어느 교육 시간,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몇몇 학생들은 잠을 자지 않고 있지만 교육에 집중하기보다는 밀린 숙제를 하거나 옆자리 친구와 잡담을 하기 바쁘다. 바로 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 시간의 풍경이다. 강사도 없이 동영상으로 일제식 강의를 하니 학생들의 흥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2020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N번방 사건)이 일어난 이후 청소년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의 중요성은 커져갔지만, 학교는 옛날 옛적 모습에서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2020년 학교에서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코로나19 감염병 발발로 사상 초유의 전국의 초중고교 개학 연기 사태를 겪었다. 학교는 원격 수업 플랫폼과 감염병 방역 체계를 구축했다. 학생들에게는 개인 스마트 기기가 보급되었고, 교사들은 동영상 편집과 메타버스를 공부해 수업에 적용했다. 이 모든 일이 1년 안에 이루어졌다. 사회 변화 앞에서 철옹성 같던 학교가, 강산이 다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학교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는 발 빠르게 변화한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폭력 사건이 나날이 증가하는 현실에서는 그런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인지 학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교직에 몸을 담고 있지 않은 친구들은 가끔 교사인 나에게 물어본다. “아직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벌점을 주나?”, “아직도 학교에서 학생들 치마 잡나?” 나는 아직도 그렇다고 대답한다. 학교는 비청소년인 당신이 다니던 시절 그때 그대로다. 아직도 학교는 학생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발과 복장을 규제하고, 벌점으로 통제하고, 연애와 정치 활동을 금지한다. 성차별적인 관행도 그대로다. 혼성학급이라면 남학생이 1번부터, 혼성학급이 아니라면 남학생 반이 1반부터 학번을 부여받는다. 여학생은 바지교복을 개별적으로 신청하지 않는 이상 치마교복을 기본으로 사게 된다. 두발과 복장 규정도 여학생에게 더 세부적이고 가혹하다. 남학생은 체육, 스포츠 시간에 다양한 종목이 개설되지만 여학생은 무조건 피구다. 교사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없다. 젊은 여교사는 일명 ‘꽃순이’를 맡아서 학교 행사에서 꽃 전달과 시상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친목 배구 행사라도 있다하면 여교사들이 모여 응원과 간식을 준비한다. 회식 때에도 젊은 여교사는 교장과 교감 옆자리에 자리가 마련된다. 여교사는 전체 교사 중 70%에 달하지만 여자 교장은 30% 내외이다(2019년 기준).     


성차별적인 관행이 하나의 문화로서 그대로 자리 잡고 있는 학교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의 실효성은 얼마나 될까? 성차별을 말하면 유난을 떠는 것으로 취급하는 학교에서 어느 누가 성폭력을 고발할 수 있을까? 성차별적인 학교 환경과 성폭력의 발생은 연결되어 있다. 반대로 말하면 진정한 성폭력 예방은 성평등한 교육 환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성폭력 예방 교육 예산과 횟수를 숫자만 늘리고 엄벌주의로 다스리는 것보다, 여성과 남성이, 학생과 교사가 각자 한 명의 존엄한 존재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이 기본적인 명제가 지켜질 때야 비로소 폭력이 사라질 가능성이 생긴다.      


지도하는 동아리 학생들과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단어들을 조사하여 이런 단어들을 쓰지 말자는 교내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로부터 돌아온 것은 지지와 격려가 아니라, 비난과 냉대였다. 캠페인 포스터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찢어졌다. 만약 한 번만이라도 성차별적인 단어들을 들으며 상처받았을 여학생들의 입장에 공감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고작 성차별적인 단어를 쓰지 말자는 작은 목소리도 짓밟히는 학교에서, 성차별과 성폭력을 고발한다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할까?    

 

여학생과 여교사를 위한 학교는 아직 없다. 하지만 한 번 여학생과 여교사를 위한 학교가 있다고 상상해보라. 여학생과 여교사가 받는 차별을 없애려 모두가 노력하고, 디지털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모두가 관심과 열정을 쏟아 해결책에 대해 토론하고, 학생들이 스쿨미투를 얘기하자 교사와 학교가 진지하게 경청하고 반성하는, 그런 학교 말이다. 그리고 그런 학교에서 여학생과 여교사가 눌러져있던 자신의 가능성을 얼마나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지 말이다. 학교는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학교가 변하는 것을 보았다. 학교는 성평등한 곳, 성차별과 성폭력이 없는 곳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그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2022년 6.1 충북 지방선거 특별페이지 <다른 시선>에 기고한 글을 약간 수정하여 옮깁니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성평등', '성 소수자', '재생산권'이라는 단어를 삭제하였고,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수년에 걸친 행정소송으로 공개된 ‘스쿨미투’ 학교들에서는 교사들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축소하고 은폐한 사실들이 드러났습니다. 여학생과 여교사를 위한 학교는 언제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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