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이한 Apr 16. 2024

10년

    스무 살,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는 시기. 친구와 내 삶의 궤도가 본격적으로 나뉘는 나이. 나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오랜 로망이었던 밴드 동아리에 입부했다. 그날은 동아리 가입 후 처음으로 친목회가 있던 날이었다. 택시를 타고 학교 근처 유원지로 향했다. 잔뜩 걷고 사진도 찍고 놀고 나니 저녁 무렵이 되었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 저녁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TV에서는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구조 인원이 투입되어 곧 사람들이 구조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배에 탄 사람을 걱정하는 몇몇 사람들의 탄식은 곧 사그라들었다. 나는 그들이 당연히 전원 구조될 것이라는 무심한 희망을 가졌다.

    그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축제와 행사가 취소되고, 뉴스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가 줄줄이 보도되었다. 부끄럽게도 그때의 내 몸과 마음은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할 기운이 없을 정도로 메말라있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을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 분간할 없었다. SNS에 올라온 글에 소극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거나 유가족과 희생자에 대한 옅은 연민을 품을뿐이었다. 

    반면 끊이지 않는 거짓과 은폐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분들 덕분에 세월호의 진상이 물 위로 떠올랐다. 진실을 알고 난 후 마음속에서는 울분과 슬픔이 끓어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 참사는 내 마음속에서 짙어졌다. 세월호 참사를 뉴스에서 처음 접했던 날의 나의 무신경함에 화가 났고, 수많은 사람을 죽게 내버려 뒀던 선장과, 해경과, 정부가 혐오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날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 교사가 된 후 매년 4월 16일이면 세월호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을 준비하며 혼자 영상을 보다 눈물을 흘리기도, 당시 정부의 거짓말을 설명하다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오늘은 무슨 날일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수업. 수업은 '화요일이요', '누구누구의 생일이요' 같은 가벼운 대답으로 시작되지만,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아이들의 눈에는 슬픔과 분노가 서린다. 수업은 늘 노란 리본 만들기 활동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업을 들으며 느낀 점, 세상에 하고 싶은 말, 나의 다짐을 자유롭게 써보라고 한다. 길게 적어야 한다는 교사의 잔소리 없이도 아이들은 진심으로 한 자 한 자 편지를 쓴다. 

    지난주, 수업 준비를 하다 보니 벌써 세월호 참사가 10년 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0년, 강산이 바뀌는 시간. 세상을 모르던 햇병아리 대학교 1학년이 5년 차 교사가 되는 시간, 걸음마도 떼지 못하던 아이가 뜀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시간. 무엇이든 마음을 먹으면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시간. 하지만 그날 바다에 잠긴 아이들은 그 시간을 박탈당했다. 몇몇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무엇이 바뀌었는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 10년 동안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 '가족을 빌미로 보상금을 뜯어낸다'는 짐승 같은 비난을 그저 속으로 삼켜왔을 유가족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모두는, 그날의 참사를 잊지 못한다. 아니, 잊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픈 손가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