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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Jan 05. 2024

내 별명은 꼬꼬

  

  어릴 적 친척들은 나를 꼭지라고 불렀고 언니들은 나를 꼬꼬라고 불렀다.

  사전에 나와 있는 꼭지(명사)의 뜻은 막내 아우라는 경북 방언이다. 딸을 많이 낳는 집에서 딸을 그만 낳고 아들 낳기를 바라며 사용하던 이름이라고 한다.

  아빠의 형제들은 아들이 한 명씩은 있는데 우리 집은 내리 딸만 다섯을 낳았다.

  다행히 아빠가 차남이어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은 덜했겠지만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아들이 셋만 돼도 당사자는 원치 않는 걱정을 해주는데 그때는 아들 하나 없이 딸만 다섯이라는 사실은 걱정을 넘어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은 아들 낳기를 갈망하며 엄마는 한약을 드셨고 막내딸을 출산했다는 소식에  12살 큰언니와 9살 둘째 언니는 대성통곡했다.

  중년이 된 지금, 어린아이들도 느꼈을 그날의 상황이 느껴져 가슴이 찡하다.


  나는 딸만 다섯인 가정에서 막내로 자랐다.

  꼬꼬라고 불러주며 귀여워해 주던 언니들의 다정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출산을 도와준 간호사가 아쉽지만 이번에도 딸이라고 성별을 알려줄 때 오히려 잘 됐다고, 딸이라 더 좋다고 했다는 젊은 날의 아빠를 상상해 본다.

 막내딸만큼은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그 당시 오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작명소에 지은 내 이름에는 [착할 선]이 아닌 [아름다울 옥 선]이 들어가 있다.

  일반 한자사전에서는 찾기 힘든 한자...

  성별이 바라던 아들은 아니었지만 아들보다 더 귀하게 자라길 바랬던 마음을 담았겠지.



  대성통곡을 했다던 큰언니는 이제 이순(耳順)이 되어간다.

  어느새 막내인 내가 불혹(不惑)을 넘어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다섯 자매의 어린 시절을 기록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려진 기억들을 더듬어 되새겨보면 힘들었던 순간들도 웃으면서 기억되겠지.

  추억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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