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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절매의 미학

32화

by 김경희

절대로 손해 보지 않고 주식을 하겠다는 사람은 결국 주식에서 돈을 벌 수 없다. 아니, 번다해도 수익은 적고 오래가지 못한다. 시장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그 안에는 오르내림의 리듬이 있다. 이런 리듬을 이해하지 못한 채 ‘손해 없이 이기겠다’라는 마음으로 덤비는 것은 거센 파도를 이기려는 태도다. 바다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포츠에서 낙법을 먼저 배우는 이유는 안전하게 넘어지기 위해서다. 넘어지는 법을 알아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주식도 다르지 않다. 잃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이길 수 없다. 손실을 견뎌본 사람만이 평정심을 배운다. 시장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불안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겪어본 사람만이 담대함을 얻는다. 매수나 매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손절매다. 손절매는 패배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익히지 못하면 시장에게 먹히고 만다.


주식 초보자들이 손절매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비싸게 샀기 때문에 싸게 팔고 싶지 않은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오를 거야’라는 믿음, 그 순진한 믿음이 손실을 더 키운다. 하지만 진짜 투자는 감정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손절 구간을 미리 정하고, 그 선을 지키는 사람만이 시장의 폭풍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손절매는 자신에게 내리는 냉정한 명령이다. 순간의 결단이 결국 수익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손절매 구간에 들어섰다면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미련 없이 자르는 것이 결국 손해를 줄이는 것이다. 오랜 기간을 두고 투자하는 경우라면 손실이 나든 이익이 나든 묻어두면 되겠지만 말이다.


앞에서 불타기와 물타기의 장점을 이야기했지만, 진짜 고수는 잘 올라가는 주식에는 힘을 실어주고

내려가는 주식은 가차 없이 잘라낸다. 수익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지만, 손실은 과감하게 털어버려야 한다.


개미 투자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시장과 싸우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감정으로 설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 누구도 시장을 이길 수 없으며, 오직 시장의 흐름 위에 자신을 맞출 수 있을 뿐이다. 추세가 꺾인 종목에 물타기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짐을 얹는 일이다. ‘이번엔 다를 거야’라는 기대는 대부분 같은 실수로 이어진다.


주식은 본질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힘으로 움직인다.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때 가격은 오른다. 팔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때 가격은 내린다. 그러니 수요가 넘쳐날 때, 즉 모두가 사고 싶어 할 때는 고가에 팔아야 한다. 반대로 공포로 인해 모두가 팔 때, 그때가 바로 저가에 사야 할 때다.


이런 단순한 원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투자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원칙이다. 주식투자는 결국 ‘때’를 사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비쌀 때 사면 손해 본다. 우량주라도 고점에서는 독이 되고, 저점에서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시장의 흐름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 경기의 주기, 금리의 방향, 산업의 순환…이런 것들이 ‘언제’ 살 것인가를 결정짓는 신호들이다.






고점인지 저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던 때 에르코스라는 주식을 샀다. 시장의 분위기는 활활 달아올라 있었고, 모두가 “이제 시작이다”라며 들떠 있었다. 시장의 흐름에 휩쓸려 매수 버튼을 눌렀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주가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리막길을 걷듯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정이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했지만, 계좌의 숫자는 점점 깊은 음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손실이 30%를 넘어섰고, 백만 원 넘는 금액이 사라졌다.


언젠가는 오르겠지라는 말로 위안 삼으며 몇 달을 기다렸다. 하지만 주가는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밑으로 내려앉으며 마음을 짓눌렀다. 그 주식은 정책 수혜 주였는데 고점에서 매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매일같이 차트를 열어보며 '오늘은 조금이라도 오르겠지' 생각했지만, 그날도, 다음 날도, 주가는 희망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손절매해야 하나, 아니면 더 버텨야 하나. 갈등이 길어졌다. 백만 원이라는 손실금이 커서 도무지 결단이 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까지 떨어졌는데, 더 떨어지겠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종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장에는 늘 새로운 기회가 있다.


사면 좋을 주식이 많아져서 점점 더 갈등했다. 손해를 보고 팔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고, 그냥 가지고 있자니 돈이 묶여 있었다.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결심한 후 전량 매도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간, 마치 오랜 시간을 함께한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기분이었다. 손해를 본 만큼 마음도 쓰라렸지만, 그 자리를 비워내자 새로운 기회가 왔다. 다시 숨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후, 다른 종목을 눈여겨보았다. 철저히 분석하고, 기업의 방향성과 재무상태, 시장의 흐름을 살폈다. 그렇게 신중히 매수한 주식이 곧 상승하기 시작했다. 몇 주 만에 2백만 원의 수익이 났을 때, 깨달았다. 손절은 단지 ‘손해를 인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문’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만약 그때 아까워서 팔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여전히 계좌 속 숫자를 보며 한숨 쉬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종목은 지금도 바닥을 헤매고 있다. 3만 5천 원이던 주가가 9천9백 원까지 내려와 있다. 그때 손절하지 않았다면, 더 큰 손실과 함께 투자금이 갇혀 있었을 것이다. 손절의 결단은 결국 나를 다시 앞으로 나가게 했다.


주식시장에서 ‘손절’은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다음’을 위한 준비다. 많은 이들이 손절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회복할 수 없는 시간과 기회를 잃는 것이다. 나쁜 종목을 붙잡고 있는 동안 좋은 종목은 지나가 버린다. 돈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은, 가능성을 잃는 일이다.


물론 손절은 쉽지 않다. 하지만 시장은 늘 변한다. 어제의 인기 종목이 오늘의 하락 주가 되고, 오늘의 저점이 내일의 기회가 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때로는 단호하게 ‘잘라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손절은 미련을 정리하는 기술이자, 자신을 다스리는 훈련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손절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매도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질서를 바로잡는 과정이었다. 손절은 나의 오만을 덜어내는 일, 새로운 배움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손절은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이고 버리지 못한 것을 내려놓는 용기다. 이것이 바로 손절매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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