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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글 쓰는 이들의 자리

생각정리

by 김경희


<AI가 쓴 글이 작가를 무너뜨릴 때>


어느새 쳇 GPT가 삶의 현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던 글 쓰는 현장까지도. 주변의 글 쓰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보면, 이 새로운 도구의 침범은 쓰는 이들의 마음속까지 닿은 것 같다.


몇 달 전, 함께 글을 쓰고 있는 작가가 말했다. 함께 활동하고 있는 사람 중에 쳇 GPT가 있으니 앞으로 글을 안 쓰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니 기운이 빠진다고 했다. 농담처럼 들리던 그녀의 말은 가볍지 않았다. 누군가의 생각과 손끝을 거쳐야 나올 수 있었던 문장들이, 단 몇 초 만에 기계의 손에서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 앞에서 붙들고 있던 끈이 '툭'하고 끊어지는 것 같았다.


지난주에는 또 다른 작가가 글을 올렸다. AI 글쓰기와 순수창작 사이에서 현타가 왔다고. 창작의 세계는 언제나 고민에 고민을 더하는 과정이지만, 지금의 고민은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나만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AI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에는 더 직접적인 일이 있었다. 공저를 준비하는 팀에서 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첫 문장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이전과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 문장, 묘하게 낯선 형용사의 반복, 그리고 즐겨 쓰지 않던 새로운 단어들의 나열까지.
‘AI 냄새가 나는데…’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글쓴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AI 힘을 빌렸느냐고. 그녀는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다음에는 또 다른 풍의 글을 시도해 보겠다고도 했다. 한 주제를 놓고 여럿이 쓰는 글이라 AI가 쓴 글이 아니라니 다행이었지만, 찜찜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예민해진 눈으로 글을 여러 번 읽었다. 색안경을 끼고 봐서 그런지 문장의 흐름이 사람이 쓴 글에서 약간 비켜난 듯한 이질감이 있었다. AI 시대에 의심병이 단단히 걸린 것 같았다. 수사관의 눈으로 글을 대하니 좋은 문장이라 느꼈던 글에 배신당한 것 같았다.

앞으로 점점 쳇 GPT의 활용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다. 아니, 머지않아 모든 이가 AI를 곁에 두고 글 쓰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지금 느끼는 이 미묘한 불편함과 불신, 서운함 같은 감정들은 얼마나 부질없어질까


그럼에도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문장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오래된 슬픔이나 기쁨을 적어 내려간 문장만큼은 영원히 인간의 몫일지도 모른다. AI 그림자가 드리워진 시대라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익어간 글을 읽고 싶다. 언젠가 지금의 이런 고민이 정말로 사라지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다소 거칠고 풋풋해서 사람냄새 풀풀 나는 글을 읽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가볍게 하는 일>


글을 쓴다는 건 내 생각을 마주하는 일이다. 단어 몇 개만 적었을 뿐인데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글 쓰는 시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마음의 실타래가 풀어지는 것 같았다.


50대 초반에 큰 교통사고를 냈다. 순전히 실수였다.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통증이 줄어들자 ' 무슨 이유 때문에 사고를 내게 되었는지 생각했다.' 머릿속에 온갖 감정이 뒤엉켜서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딸이 가져다준 노트에 그때 당시의 모든 일들을 적어내려 갔다.


글은 수십 장 넘게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얽혀있던 관계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까지 쏟아져 나왔다. 속상함, 서운함, 그리고 분노와 원망까지. 모두 쏟아내고 난 날밤, 비로소 불면증에서 벗어나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일 것이다. 머신은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떨림까지는 대신 느껴주지 못한다. 삶을 짓누르던 생각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일은 오롯이 글 쓰는 이만 경험할 수 있는 해방감이다.


우리는 글 쓰며 우리 안의 상처와 눈을 맞춘다. 말로는 끝내 떠오르지 않던 감정들이 문장이 될 때 비로소 드러난다. 글을 쓰면서 나를 아프게 한 사건과 시간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삶이 정돈되고, 습관처럼 힘들어하던 시간에서 한 발짝 물러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이다.


글쓰기를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정서적 통합’이 일어난다. 가치관, 신념, 해석 같은 비합리적인 기준들이 글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순간 우리는 마음을 가볍게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과정을 내면 탐색이라고 한다. 설명할 수 없던 근심이나 원인 모를 불안은 글 앞에서 형태를 드러낸다. 글로 적어 내려가면 부정적이고 막연한 감정들은 방향을 잃고 결국 이별을 통보하는 순간이 온다. 보이지 않던 내면의 흐름을 인식하는 찰나, 신기하게도 마음은 스스로 치유된다.


글쓰기는 거창한 재능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작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 단순한 일기 한 줄로도 충분하다.
“오늘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이 짧은 문장만으로도 우리는 무의식의 문을 두드리고, 스스로 어루만지는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때때로 고단하다. 그럴 때 글쓰기는 삶을 붙드는 힘이 되어준다. 낯선 곳으로 시간을 내서 멀리 떠나지 않고도,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고도,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AI처럼 완벽하고 멋진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유명작가들의 글처럼 수려한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오늘의 나를 잠시 세워놓고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은 어떤 글을 쓰든 쓰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정화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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