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가 특별해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위로
나는 평범하다.
나는 평범하다. 이립(而立)을 앞둔 나이임에도 구슬 아이스크림과 요거트 스무디 앞에서 무너지는 애기입맛 불이립이지만, 아무튼 나는 평범하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된 계기는 본과 4학년 때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였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20대 중반이 되도록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학은 정시로 입학했고, 학부생 때에도 한의학과라는 특성상핑계로 대외활동을 참여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첫 경험이 참 막막하고 생경했다.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고, 그동안 써온 감투들도 꽤 있었는데, 이것을 간결한 문장으로 담아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화목한 가정... 장남으로서... 앞으로 열심히 할 것...
(채용 담당자들이 뽑은 자소서 최악의 내용이라고 한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로 자소서가 채워지는 것을 보며,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구직 광탈의 각을 선연히 직감했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취뽀에 성공했고 나도 1년간 뽀개졌다! 하하!)
평범한 내가 초라했다.
여기서 문제는 이 생각이 드는 순간의 내가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 초라함의 이유를 살펴보자면, 그간 내가 나름 특별한 사람이라 여겨온 신념의 부정 때문일 수도 있고, 찬란한 20대 청춘의 허무였을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평범’이라는 단어를 본인만의 색깔이 없고 별 볼일 없는 것처럼 해석하는 문화의 학습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사이버대학생이 된 여동생의 대입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줄 때에도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생활기록부가 너무 평범해.’ ‘너만의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해’ 등이었다. 이 또한 상위 포식자교수님 눈에 띄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합격할 수 있는- 생존을 위한 역설적 본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생에게 면접 마지막 한 마디 때 써먹을 수 있는, 지극히 연극적작위적 마임까지 전수해주었다.) 아무튼 그 시절 나는, 평범한 내 모습이 초라했고 싫었다.
평범함이 나만의 특별함으로
그런데 요즘은 평범함이 나만의 특별함으로 빛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평범했던 일상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되어버린 2020년을 살아가며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외딴섬에서 서로 밥 지어먹고 부대끼는 예능이나, 평범한 하루 일과를 소소하게 담아내는 VLOG 영상들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2020년의 우리는 보통과 평범의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함을 나만의 색깔 중 하나로 정하기로 했다. 평범함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일까? 아마 투명 내지는 잘 쳐주면 하얀색을 떠올릴 것 같다. 사람이 투명하다는 표현은 보통 존재감이 없다는 은근한 조롱으로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전환해보면, 투명해서 존재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한결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또 하얗기만 한 내 모습이 진부한 것이 아니라 모난 데 없이 모두와 어울릴 수 있는 균형 잡힌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이 정도면 곁의 사람들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꽤 괜찮은 사람 아닐까?
특별한 당신들과 치얼스 할 수 있길!
평범에 관한 자투리 생각을 덧붙이자면, 평범한 하루가 그리운 요즘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여름날, 에어컨 빵빵한 시원한 카페,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 한 잔, 노 마스크로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전락하고 나니 이 모든 것들이 너무너무 간절하다. 본가 아파트 단지 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마스크를 쓴 채 놀다가 숨차 하던 모습을 보고는 별안간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글을 읽게 될, 나에겐 무척이나 특별한 독자들과도 와인 한 잔 기울이며,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평범한 날이 다시 오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