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R. Putnam)은 ‘사회적 자본’ 개념을 제시하였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망의 크기를 사회적 자본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사회 내에 사회관계망이 쪼그라들면서 그 자본이 점차 감소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 주장을 묶어 낸 책이 ‘나 홀로 볼링’이다. 사회적 자본을 챙겨줄 하부구조 중 하나인 마을 내 볼링장이 점차 사라질 뿐 아니라 혼자서 볼링을 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책에서 밝힌다. 가족, 이웃, 친구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가 사라지니, 그런 시간도 줄고 자연히 사회적 자본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유럽의 조그만 나라 아이슬란드는 사회적 자본과 관련해 좀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선드라우그(sundlaug)’라 일컫는 수영장이 많기로 유명하다. 인구 38만 명에 127개를 보유하고 있으니 약 3000명당 1개꼴로 수영장이 있는 셈이다. 지열을 이용해 더운물 만들기에 용이해 전천후 풀장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애초 수영장은 수영 교육을 목표로 건립했다고 한다. 그러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웃을 만나 담소를 나누고 지역 사안을 이야기하는 마을 모임 센터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수영장이 사회적 자본을 챙겨주는 공간 역할을 하는 셈이다.
양 국가가 갖추고 있는 사회적 자본의 하부구조가 갖는 효과를 보면 그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의 하부구조가 줄어든다고 보고하는 미국에선 외로움과 관련된 사회 문제가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고령자의 고독사, 각종 재난에 대비할 사회적 안전망의 미비가 지적되고 있다. 홀로 지내다 숨져도 세상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한다. 폭염이나 폭우 등의 재난 기간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의 숫자가 매번 늘어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아이슬란드의 사회적 복지 수준은 매년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수영장 탓만은 아니겠지만 생활 만족도도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을 챙길 하부구조의 쇠퇴와 활성화는 곧 사회적 활력으로 이어지고, 심지어는 생명 보전과도 연관을 맺는 셈이다.
일인 가족의 급증, 고령화의 진전을 목도하고 있는 한국도 사회적 자본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다. 덜 고독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탈락하지 않게 하는 정책 배려가 절실하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을 챙겨줄 하부구조를 따져보면 답은 궁해진다.
고독과 고독사, 재난으로 고통당하지 않을 책임은 고스란히 개인에게 돌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과 친지가 그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 마당에 사회적 자본을 키워줄 하부구조를 요청하고, 그를 구축하자고 말을 꺼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사회적 자본에 대한 논의의 실마리를 도시계획에서 먼저 풀어볼 것을 제안한다. 그 누구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회적 자본을 위한 하부구조 구축의 담론을 도시계획과 건설 주체가 시작해 보자는 권유다. 예를 들어 아파트의 재건축, 신설 건축 과정에서 불가피한 부대시설의 건축에서 사회적 자본 개념을 도입하고 그 증대를 꾀할 수도 있다.
과거보다 훨씬 더 좋은 부대시설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고 있을 터이니 미국이나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자본의 감소와 증가를 건축 과정에 가미해 건축주를 설득하는 프로젝트도 가능할 것이다. 이른바 한국형의 사회관계망 형성과 지속을 가능케 할 공간과 프로그램을 도시행정이나 건설업계가 창발적으로 제안해 보자는 주장이다.
긴 도시 건설이나 건축의 역사 고비마다 새롭게 기획한 건축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공간이 창출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쓰임새도 발생하기도 했다. 도시 계획과 건축업의 기획과 수행이 사회를 바꾼 역사적 사건이 없지 않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대가 방기한 사회적 의제를 챙겨내는 도시 행정, 건설업의 모습과 그로 인해 생길 도덕적 리더십을 만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