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7
150여 명 규모의 스타트업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나이 많은 순으로 TOP 3 정도 안에 들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나이를 말하지 않는 분위기라 서로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누가 나이가 제일 많을까 하고 순위를 정하다가 제가 그 정도 순서에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온 동료 개발자는 스무 살이었죠. 20살이 넘게 차이 나는 동료와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이로 서열을 정해지도 않고, 직급도 없는 조직 문화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그만둔 스타트업에서 친해진 동료와 종종 만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 동료는 저희 팀 막내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저희는 무척이나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동등한 위치로 사적인 이야기도 편하게 나누고 서로 배려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사실 스타트업을 다니지 않았다면 나이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았을 것 같아요. 10살 어린 친구도 생기지 않았을 것 같고요. 나이를 내려놓으니까 오히려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나이에 따라 경험치가 같지 않고, 지혜로움도 거기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저보다 10살이 어려도 배울 점이 많을 수 있고, 저보다 10살이 많아도 배울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기존에 다니던 스타트업 중 한 곳은 시니어 관련 스타트업이라 50대 이상의 고객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슬로건인 회사였는데, 만난 고객분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전통적인 형태에 익숙한 분들이라서 상대적으로 어린 직원인 저희에게 반말을 하거나, 가르침을 전해주려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대화는 일방적이고, 조언을 해주려고 애쓰셨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랬다는 건 아닙니다.
저 역시 저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왔던 적이 있어서 그분들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나잇값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사전적인 의미로 나잇값은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점잖은 척, 내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아한 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달까요.
하지만 지금은 나잇값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경험치와 나이의 무게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경험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충고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이를 내려놓고 모두를 스승이라 여기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배우려 하고 겸손해야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요.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이나 말이라는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고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이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삶의 방법이 아닐까요.
처음 스타트업에서 나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를 OO님이나 영어 이름을 부를 때는 속으로는 속상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보다 최소한 10년은 더 경력이 더 많은데, 왜 내 의견에 반대하는 거야? 네가 뭘 알아?’
‘내가 쌓아 온 경력은 무시당하는 거잖아. 동등하다고 강요하느라 진짜 인재를 못 알아보네?’
이렇게 생각한 적도 정말 많았습니다. 제 경험도, 나이도 중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진짜 보여줘야 하는 건 실력이더라고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실력을 증명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일에 임하다 보니까, 어느새 저도 나이와 경험, 경력 같은 건 잊고 오직 현재의 저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스타트업에 있으며 가장 크게 배운 점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는 겁니다. 경력이나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면서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나이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었고요. 사십 대 김유정이 아니라 그냥 인간 김유정으로 살 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