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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EL Aug 02. 2020

[영화 리뷰] 캐롤

feat. ‘여행의 이유’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란 책이 있다.

작가는 인간이 여행을 통하여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여행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통해 내 삶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다고 설명했다.

나는 영화를 보며 캐롤과 테레즈가 서로를 여행하는 여행자처럼 느껴졌다.

물론 여기서의 여행은 김영하의 여행이다.


캐롤의 얘기를 먼저 해보자.

캐롤이 테레즈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는 중이었다.

애비가 말했듯 늘상 자기중심적으로 캐롤을 움켜줬던 남편 하지와의 결혼 생활은 그녀에겐 감옥 같게 느껴졌을 것이다.

작중 시점에서도 하지의 그런 행동들은 여러 번 나온다.

특히나 기억 남는 것은 지네트의 이름조차 기억 못 하면서 캐롤의 선약을 기어코 깨게 만들어
지네트를 보러 가는 장면이다.

나는 하지의 그러한 행동을 보면서 그의 인간관계에 진정성과 배려가 결여됐다고 느껴졌고 캐롤을 마치 트로피 와이프로 여기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는 자신이 캐롤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애비의 말대로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해결할 감정, 즉 자신이 캐롤을 존중하지 못했듯 그 또한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종류의 감정일 뿐이다.

그런 하지와의 이혼 과정 중 캐롤은 테레즈를 만났다.

테레즈를 만날 때의 캐롤은 그런 모든 걱정을 잊고 현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장갑을 돌려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핑계로 만든 첫 식사자리에서

캐롤은 어른스럽고 우아한 사람이 관심 있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상기되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테레즈와의 약속을 위해 평소 안 뿌리던 향수를 뿌린 것, 그리고 그녀를 집에 초대한 것

모두 이혼 과정에 지쳤던 캐롤에겐 굉장히 신선하고 설레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테레즈가 자신의 초대를 흔쾌히 수락하자 캐롤은 말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사람’

그렇다 캐롤에게 테레즈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 과거를 청산하며 괴로운 일상을 살던

자신에게 나타난 설레는 여행 같은 사람인 것이다.


그녀와의 만남 이후 발생한 양육권 분쟁 과정에서 캐롤은 더 이상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부정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선택한다.

나는 이것이 테레즈라는 사람을 통해 그녀가 이룬 내적 성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테레즈에게 캐롤은 어떤 존재인지 얘기해보자.


테레즈가 처음 캐롤을 만났을 때 테레즈는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감정의 속도가 다른 리처드가 말하는 결혼, 둘 만의 여행, 부모님과의 만남 등에 부담을 느꼈다.

이런 부담은 그녀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되었는데 리처드는 그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테레즈는 더욱더 힘들어했다.

이런 와중 만나게 된 캐롤은 그녀의 미래에 관심 갖고 존중해주며 다가왔다.

테레즈가 자신의 재능을 걱정하는 모습에 캐롤은 그런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이 판단할 문제라며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또 그녀의 사진을 보고 싶다며 초대해달라고 한다.

또한 캐롤은 테레즈의 집에 가기 전 그녀를 위한 캐논 카메라를 사서 선물해주는데

이것은 여자들은 싸구려 카메라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리처드와 상당히 비교되는 면모다.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은, 캐롤의 이러한 정서적인 지지와 실질적 도움과 별개로

테레즈에게 캐롤은 인물 찍길 꺼렸던 자신을 변화시켜서 오히려 그녀를 찍게 만든 존재

즉,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한계를 무너뜨려준 존재이자 뮤즈라는 점이다.

대니에게 인물을 담길 꺼린다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캐롤이 트리를 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렌즈에 담아 미소 짓고

그녀와의 여행에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마다 카메라를 들어 기록하는 테레즈를 보면서

이것이 테레즈가 한 명의 포토그래퍼로서 자립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실제로 테레즈는 캐롤과의 이별 시기 그녀를 자신의 포트폴리오로 활용하기도 했다.

테레즈에게 캐롤과의 만남은 미래에 대한 근심을 덜어주는 일종의 여행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은 그녀를 그녀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나가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캐롤은 정말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를 보며 느꼈던 많은 감정과 생각 중 가장 선명한 일면만을 다뤄 리뷰를 썼다.

쓰면서도 느끼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큰 리뷰다.

이에 대한 짧은 글도 쓸 계획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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