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를 모두 등원시키고 나니 오전 10시가 거의 다 되었다. 간만의 휴무가 이렇게 오전에 아이들과의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늘 휴무인 날은 내가 아이 셋을 등원시키는 것이 부부 사이의 묵언의 계약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지난밤 사이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집안 거실과 곳곳을 정리하고, 얼마 전에 새로 구입한 토스트기로 바삭하게 구워진 빵 한 조각에 따스한 온기와 대륙을 넘어 나의 작은 잔에 담긴 구수한 커피 한 잔을 내려 허기진 배를 채웠다.
아내는 며칠 간의 육아로 지쳤는지 이미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도래했다.
복층으로 올라가 모든 창문을 열고, 지난밤 사이 내린 비를 물리치고 펼쳐진 아름다운 가을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가득한 대기의 차가운 공기가 열린 창으로 밀려 들어왔다. 오래간만에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화분들을 모두 정리하고, 먼지는 닦고, 인터넷을 연결해 읽고 싶은 책들을 모두 꺼내 두었다. 그리고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면서 나의 나됨을 발견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다른 한 인간과 활자를 통해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그의 생각과 경험과 철학과 이론을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지만 그들의 생각들을 듣고 있는 동안 나 역시 그의 의견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심지어 나의 인식의 한계와 지식의 바운더리가 Boundary 조금씩 더 확장되어 간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나만의 세계에서 세상의 다양한 사람과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