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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을 일했는데 디자이너 채용 시장에서 쓸모가 없었다

디자이너서 비즈니스 파트너로 포지셔닝 하기

by LANLAN 란란

"디자이너로 12년을 일했는데 채용 시장에 나왔더니 쓸모가 없었다."


디자이너 7년 차 때, 한 회사의 창업멤버로 합류했다.

‘내 회사’라는 마음으로 그곳에서만 5년을 보냈다.약 3년간은 월요일에 출근해 토요일 오전에 집에 가곤 했다. 잠은 라꾸라꾸에서 자고 씻는건 아침에 찜질방에 가서 씻었다.비효율의 끝판왕이었지만 그 생활이 싫지만은 않았다. 성취감과 동료애가 그 시간을 낭만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함께 창업 멤버로 합류했던 나 포함 총 4명의 우리들은 그렇게 밤을 새고도 매일 웃으며 일했다.


곧이어 회사에 첫 투자가 들어오고, TV 광고도 찍고, 팀도 커지며 "이제 잘 되는구나" 싶었다.하지만 곧 매출이 꺾였다. 파격 세일, 쿠폰, 이벤트… 마케팅은 체리피커만 모았고, 회사 재정은 빠르게 말라갔다. 그런데 그때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투자를 왜 받는지, 또는 왜 못 받는지, 지표는 다 뭐고 매출은 왜 떨어지는지도 몰랐다. 그저 "난 디자인만 열심히 해야지"뿐이었다.


늘었던 인원은 절반으로 줄고, 우린 창문을 타고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넘어오는 작은 사무실로 이사를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회사에 생기가 돌지 않았던게.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색상으로 비유하자면 회사의 공기부터 냄새까지 무채색인 느낌이었다. 회사는 더 이상 뭔가를 하려 하지 않았고 우리는 점점 할 일이 줄어들었다. 뭐라도 변화를 주고 싶어 ‘리뉴얼을 해보자’라고 의견을 내도 "지금은 안 돼"라는 말만 돌아왔다.


갈수록 나는 '생각하지 않는 손'이 되었다. 점점 일은 하기 싫어졌고 의욕도 떨어져 그러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자리를 비우고 산책을 다녀오는 시간이 많아졌다.


회사는 우여곡절 끝에 엑싯을 했다. 그것도 꽤 유명한 빅테크에. 아마도 창업자가 애를 많이 쓴 덕분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루어 놓은게 의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업 멤버인 나와 동료들을 포함해 몇 명 남지 않은 구성원들은 모두 '대감님댁 노비가 되어보는구나' 라며 긴장과 설렘을 안고 그 회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창업 멤버는 모두 얼마 있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거대한 흐름 안에서 보이지 않는 밀어냄을 느꼈고 우린 할 만큼 했으니 물러날 때가 된 것 같다’며 그곳을 나왔다. 창업자는 우리를 잡지 않았다. 씁쓸했다.


나올 때 이미 예상은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의 생기가 사라졌을때부터 위기감을 느꼈고 그때부터 조금은 예상 했다. '웹디자인과 콘텐츠 디자인만 12년을 한 디자이너'는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거기다 가장 최근의 경력인 창업 멤버로서 5년간의 결과물이 온통 상품 상세페이지와 배너 이미지뿐인 나는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채용 시장에 나와보니 내 예상은 적중했다. 정말로 내가 갈 곳은 없었다. 회사는 팔렸는데 나는 안팔리는 셈이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회사 안의 나'만 키웠지 '시장 속의 나'는 한 번도 키운 적이 없었다는 걸.

그날 이후 1년간 취업을 미루고 틀어박혀 공부했다. '예쁘게 만드는 디자이너'에서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미치도록 되고 싶었다.


비즈니스 이해도부터 높이기 시작했다. 아는 단어보다 모르는 단어가 더 많았다. 투자의 개념도 몰랐던 나였으니 배경지식이 얼마나 없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같은 디자이너들에게 비즈니스의 이해도를 높여주는 수업을 하고 있다. 그 이후 스타트업만 일곱군데를 다니며 배운 스타트업의 생태계와 투자 단계에 따른 제품 성장 전략을 알려주며 비즈니스 목표와 사용자 목표를 연결하는 UX 설계 능력을 키워주고 있다.


"선생님 수업은 정말 쉽고 재미있어요. UXUI 강의 많이 들어봤는데 선생님 수업처럼 오늘 배울걸 기대하며 오는 수업은 처음이에요."


내 수업을 수강하는 고객님들에게 많이 듣는 피드백이다. 내가 쉽게 가르쳐줄 수 있는 이유는 누구보다 그 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너무 몰랐고 그래서 참 힘들었다. 혼자 배우는 시간동안 서럽고, 부끄럽고, 서글펐다. 종종 울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열심히만 했던 나'를 비난하는 내가 싫어서였다.


이제는 디자인만 하지 않는다. 이제는 비즈니스 이해도 함께 한다. 그리고 그저 '열심히만 했던 나'를 더 이상 비난하지 않고, 그 시절의 나를 꼭 안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당연히 내 고객님 역시 마음으로, 눈빛으로 꼭 안아줄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다음 편은 ‘디자인만 하지 않는 디자이너 ② - 데이터 읽는 디자이너’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때의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면.


'란란클래스'에서 고민을 털어놔보세요. 때로는 나의 고민을,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한 번 푼 사람에게 말하기만 해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하니까요.


https://www.lanlanclass.com/





이 글은 '디디디님이 운영하는 My Threads Insight - 월간 스레드 3호'에 올라간 글입니다.


https://mythreadsinsight.com/monthly-threads/20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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