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으로 회사에 다니면 특허를 쓰라고 하는 일이 많다. 특허는 아이디어를 선점하는 일로 회사에서는 얼마나 기술개발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가 되며 미래기술에 대한 권리 확보에 대한 의미로 특허를 쓰기를 권장한다. 사실 권장이라기보다는 강요에 가깝다.
특허를 작성하려면 우선 필요한 것은 신규성과 진보성을 갖춘 아이디어다. 이는 사실 특허를 쓰라고 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업무에만 몰두해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특허가 될만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내가 사는 로또마다 모두 1등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일단 특허를 원활하게 쓰려면 필요한 것은 지식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특허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신규성과 진보성이다. 신규성은 제시하는 아이디어가 구조적으로 방법상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여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성은 신규성 있는 아이디어가 단지 새로운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래 기술 대비 나아지는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유갑에 대한 특허를 예로 들어보자. 우유갑을 사용하기 이전의 기술은 우유병이다. 파트라슈의 개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무거운 수레에 우유병을 들고 다니는 것을 상상해 보면 된다. 일단 무게가 무거워서 운반이 힘들고 깨지기가 쉽다. 우유갑은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종이로 만든 팩에 우유를 담아 무게를 혁신적으로 줄이고 병에 비하면 깨질 염려도 적다. 이와 같이 기존에 없던 종이로 액체를 보관하는 신규성, 그리고 무게 감소, 안정적인 보관과 같은 진보성이 존재해야 아이디어가 특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신규성과 진보성을 갖춘 아이디어를 내기 위하여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종래 기술이다. 결국 종래 기술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아는 것이 우선이며, 이 종래 기술이 무엇이 문제였는지 아는 것부터가 특허 작성의 시작이다. 종래 기술의 분석은 보통 한 가지 기술을 검토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련된 기술을 다각적으로 분석해야 하므로 특허 작성에는 상당한 종래 기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특허 작성에는 나의 경함으로 미루어 봤을 때는 역설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아이디어는 사실 정신없이 바쁜 상황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특허를 책상에 앉아서 일주일에 뭐가됐든 써오라고 한다면, 어떻게 쓰지 걱정만 하다가 시간이 가지 사실 마땅한 아이디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데, 종래 기술에 대하여 한걸음 정도 떨어져서 하나씩 정리하고 살펴보면 문제점이 발견되고, 문제점이 발견되고 나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보이게 된다. 실제로도 세상을 뒤바꾼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은 쉬는 상황에서 많이 나왔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밥칙은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케쿨레는 벤젠고리는 꿈속에서 뱀이 꼬리를 물고 있는 장면을 보고 그 구조를 밝혔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유레카라는 유명한 말의 근원이 된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 씻으러 들어갔다가 금관의 무게의 비밀을 밝혀내는 발견을 해냈다. 물론 이 세 가지 아이디어의 비밀은 쉼에 앞서서 그들이 이를 떠올릴만한 충분한 지적 수준을 갖추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골몰히 고민하고 있던 상황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고민만 한다고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백미 터달리기를 할 때는 주변이 보이지 않지만,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할 때는 주변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많은 특허를 작성하였다. 하지만 사실 내가 작성한 특허 중에서 그렇게 크게 가치 있는 특허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결국 내가 적은 특허를 쓰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지만, 나의 얕은 지적 수준이 문제이며 또한 실적을 채우기 위하여 조급하고 여유 없는 마음으로 생각을 짜낸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단지 특허 편수 올해의 실적 달성에 급해져 조급 해지는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를 가진다면 업무의 질도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도 일을 마치고 귀가하여 쉬는 시간에 생계에 급급해져 나를 옥죄며 아이디어를 짜내면서 '다 이렇게 사는 거지 뭐'라고 생각한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한숨을 지으며 하루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