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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래이 Sep 14. 2021

남편의 자살과 말년에 찾아온 명성, 루스 스톤

시인들의 시인

첫 시집 출판을 앞두고 닥친 갑작스런 남편의 자살, 세 딸을 혼자서 키워내야 했던 시인 루스 스톤.

 Ruth Stone. 

어떻게 그녀의 시를 읽게 되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올해 최고의 미국 시선집" 같은 책에서 우연히 그녀의 시 한편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산 그녀의 시선집은 그녀 인생 말년에 출판된 선집 <What Comes to Love>, 이 책이었다. 한 편, 한 편, 읽어내려가다 시 속에서 퍼져나오는 오래된 상실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시인은 도대체 누구를 잃었을까. 무엇을 잃은 것일까. 얼마나 오래된 비통함이기에 이런 유머와 함께 어우러진 시를 쓰는 것일까. 



인생 절정에 찾아온 남편의 자살


1915년 미국 버지니아주 시골, 드러머이자 노름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루스 스톤.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그녀에게 테니슨의 시를 읽어주곤 했다고 한다. 어린 루스 스톤이 시를 읊을 때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소소한 용돈을 주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후에 '따분한 화학자'라고 부른 남자와 첫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의 대학원 진학을 따라 일리노이 주로 간 그녀는 그곳에서 대학원생이자 시인이었던 월터 스톤 Walter Stone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곧 그 둘은 사랑에 빠지고, 첫 남편과는 이혼을 하게 된다. 

월터와 결혼을 한 이후 그녀의 삶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들 사이에서 두 딸이 태어나고, 그녀는 시를 여러 잡지에 출판하기 시작했다. 월터 역시 <뉴욕커>에 시와 소설이 게재되고 커플 모두 책 출판이 예정된, 완벽한 커플의 삶을 사는 듯 보였다. 월터가 런던에서 목을 매기 전까지는 말이다. 

1959년 월터는 런던에서 자살했다. 그의 나이 마흔둘이었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월터는 1년의 안식년을 맞아 가족 모두와 런던에 체류 중이었다. 루스 스톤은 자신이 죽기 전까지도 남편 자살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촉망 받던 시인이었고, 두 딸과 막 안정적인 캐리어를 쌓아가던 시인 아내,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자살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막지 못했기에 그녀의 상실감은 끝이 날 수 없었다. 월터가 죽은 그해, 그녀의 첫 시집<"In an Iridescent Time>도 세상에 나왔다. 


Curtains


(....)

Listen, last night 

I am on a crying jag 

with my landlord, Mr. Tempesta. 

I sneaked in two cats. He screams, "No pets! No pets!"

I become my Aunt Virginia, 

proud but weak in the head. 

I remember Anna Magnani. 

I throw a few books. I shout. 

He wipes his eyes and opens his hands. 

OK OK keep the dirty animals 

but no nails in the walls. 

We cry together. I am so nervous, he says. 


I want to dig you up and say, look, 

it's like the time, remember, 

when I ran into our living room naked 

to get rid of that fire inspector. 


See what you miss by being dead?


커튼

(..)


있잖아, 지난 밤

집주인 템페스타 때문에

울음보가 터졌어

고양이 두 마리를 들였거든 그가 소리쳤지, 

"애완동물은 안 돼" "애완동물 안 돼"

난 당당하지만 마음 약한 

버지니아 이모가 되고

안나 마냐니를 떠올리지

책 몇 권을 집어 던지고 소리쳤지

그는 눈을 훔치고는 손을 벌려

알았어, 알았어, 그 더러운 것들을 거기 둬

하지만 벽에 발톱 자국은 안 돼

우리는 함께 울었지 난 너무 불안해, 그가 말했지


당신을 무덤에서 파내 말하고 싶어, 봐

그때랑 같아, 기억나

소방 점검원을 물리치려고 

내가 벌거벗은 채로 거실로 뛰어 들었지


봐 죽어서 놓친 것이 무엇인지?


남편 월터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 이상의 존재였다. 함께 시를 쓰는 동료이자, 그녀 시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 야심차게 캐리어를 시작하는 여타 동시대 다른 시인들과 달리 그녀는 그저 많은 책들을 읽고 스스로를 위해 쓰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 그녀의 시를 타이핑해서 세상으로 내보내고 알린 존재가 월터였다. 

월터는 그녀가 엉망으로 휘갈겨 침대 밑에 던져 놓은 시들을 구해, 그의 하바드 친구 레슬리 피들러에게 보냈다. 피들러는 스톤의 편지를 칼 샤피로 편집장에게  보냈다. 그렇게 시를 출판해 받은 상으로 그녀는 이후 그녀 인생의 주거지가 되는 물도 전기도 없는, 작은 시골집을 사게 된다. 

천성이 시인이었지만 뚜렷한 활동 계획 없이 시심을 쏟아냈던 그녀를 '시인'으로서 세상에 알린 그였기에,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삶이었기에, 아무도 설명 하지 못할 그의 죽음은 한 평생 그녀 시의 주제가 된다. 비통함. 또는 익숙하게 낯선 상실감.



말년에 찾아온 명성 



The Electric Fan and the Dead Man

(...)

Tied a silk cord around his meat neck

and hung his meat body, loved though it was,

in order to insure absolute quiet,

on the back of a rented door in SoHo,


선풍기 그리고 죽은 남자

(...)

실크 노끈을 그의 고깃덩이 목에 매고

사랑했었던, 고깃덩이 몸을 매달았다

완벽한 침묵을 보장하기 위해

소호의 세낸 문 뒤에서


"선풍기 그리고 죽은 남자" 시에는 월터의 죽음이 그려져 있다. 그의 죽음의 순간을 묘사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이성적이기까지 하다. 너무 오랜 시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죽음을 곱씹었기 때문일까.

이 시가 담긴 그녀의 시집<In theNext Galaxy>는 2002년 출판되었다. 사실 이 시집 전까지도 루스 스톤의 명성은 미국 내에서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루스 스톤은 이 시집으로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했고 그때 그녀의 나이는 여든일곱이었다. 

말년 종신교수로 임명되기 전까지 그녀는 '떠돌이 강사'생활을 이어갔다. 미국 전역, 이 대학에서 저 대학, 떠돌이 강사로 혼자서 셋 딸(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월터 사이에 둔 두 딸)의 양육을 책임져야 했던 루스 스톤. 그녀의 딸 루비게일은 10년의 시간 동안 27번이나 이사를 다니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월터의 죽음이후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를 위해 숱한 대학에 수백 통의 구직 편지를 보냈다. 동료 시인 리처드 윌버의 소개로 한 출판사에 취직을 하게 되지만 남편의 자살은 그녀의 정신마저 뒤흔들었다. 불안정한 심신 때문에 결국 그녀는 직업을 그만두고 미국 전역을 떠돌며 강사 생활을 이어갔다. 그녀의 떠돌이 강사 생활은 말년에야 끝이난다. 72세가 되던 1990년 그녀는 뉴욕주립대학교 빙엄턴 캠퍼스 종신교수직을 임명받는다.


 2011년, 아흔여섯으로 나이로 삶을 마감한 그녀. 월터를 잃은 그녀의 삶의 고통은 느리게 생애 마지막까지 지속되었고 시인으로서의 명성 역시 느리게, 하지만 피해가지 않고 그녀를 찾아왔다. 2009년, 죽기 2년 전, 그녀는 시선집 <What Love COmes To: New and Selected Poems)은 퓰리처상 시 부분 최종심에 올랐다. 첫 시집이 나온 1959년부터 1990년까지 그녀는 단 네 권의 책만을 출판했다. 시인으로서의 그녀의 생산성과 열정은 만년으로 가면서 식기는 커녕 더욱 불이 타오는 듯, 2011년 삶을 마감하기 까지 여섯 권의 책을 펴낸다.  



시인들의 시인


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리는 루스 스톤. 그녀의 시세계를 '비애'로만 한정 짓는 것은 어리석다. 그녀 시속에는 삶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굉장히 행복한 삶을 살았다...운이 좋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월터를 잃기는 했지만." 그녀의 인생은 비극이 아니었다. 그 비극 마저 열정적으로 시를 통해 살아냈기에 그녀의 시에는 삶과 우주를 향한 열린 마음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월터를 잃었고, 이후 전국을 떠돌며 떠돌이 강사로 삶을 이어갔지만, 늘 문득 찾아오는 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곁에 공책을 준비해두고, 심지어 차 안에서도 그 시 채집의 기록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가르치던 학생들에게도 늘 곁에 공책을 준비해둘 것을 충고했다. 그렇게 문득 찾아오는 시를 놓치지 않고 잡아두라고 말이다. 

미국의 계관시인 필립 레빈은 루스 스톤의 죽음 이후 이렇게 말했다. 

"왜 여든다섯이나 나이를 먹어 내 시대 진정으로 뛰어난 시인을 발견한 것인가? 내 무지를 스스로 해명할 이기적인 이유 두 가지를 들어볼까 한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시인을 발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가진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에밀리 디킨슨을 생각해 보라. 루스는 문학계의 방식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 아마도 루스는 휘트먼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미래의 시인들에게 그 누구를 향해서도 자신을 낮추지 말라고 한 그의 이야기를. ( ...)
그녀는 출판사나 상, 명성, 경쟁, 질투, 돈 같은 것이 없는, 오직 시만이 중요한 세계를 살았다. 우리가 '영원한 시'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위대한 시들이 사는 그 곳. 이제 그녀는 영원히 그곳에 있다."


모든 시가 꼭 시인의 거울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시인들은 시 속에 하나의 거울, 자신과 독자를 비추는 거울을 세워놓는다. 루스 스톤의 시가 그랬다. 그녀의 시 안에는 독자의 슬픔을 비추는 거울이 있다. 시 한 편에 그녀의 비통한 얼굴과 그 시에 감응하는 나의 얼굴까지 모두 담긴다.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이기에 상실은 해를 거듭하며 무겁고 가벼워지기를 반복하다 급기야, 투명하게 가벼워진다. 유머를 담을 만큼 깊어진다. 

루스 스톤의 시를 읽을 때마다 그녀의 시-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누구를 잃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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