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꾼 꿈을 기억하는가.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세 개의 대형, 중형, 소형, 비행기 세 대를 본 꿈이 떠올랐다. 대형 비행기는 '대형'이었지만 어쩐지 내가 안을 수 있는 크기였고, 종이 비행기를 품에서 날려보내듯, 비행기를 날려 하늘로 올렸다. 꿈속에서 보는 하늘은 언제나 현실의 하늘 보다, 몇 배는 더 찡한 파란, 맑은 하늘이다. 그 하늘로 이미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가 보인다. 꿈속에서도 거리감과 물리의 법칙은 적용되는 듯, 먼 하늘의 비행기가 아득하게 보인다.
품안의 비행기를 공중으로 띄우려 한다. 앵무새 한 마리를 다루듯 비행기를 다룬다. 앵무새를 품안에서 공중으로 날려보냈다, 다시 팔 위로 착지 시키듯, 큰 비행기가 품안에서 공중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공중으로 띄운 비행기를 설레며 바라본다. 그렇게 놀고는 비행기를 안아 제자리에 다시 가지런히 갖다놓는다. 중형, 소형의 비행기가 차례차례 세워져 있는 곳에 말이다.
왠 비행기 꿈일까.
그저께 낮에 본, 낮게 떠 날아가던 비행기 때문이었을까. 비행기 꿈은 지난 밤 내가 꾼 많은 꿈들 가운데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밤마다 최소 2시간은 꿈을 꾼다고 한다. 렘수면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지 않던가. 렘수면, Rapid Eye Movement Sleep, 잠잘 때 우리의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활동성이 관찰되는 수면 단계이다. 이 렘수면 단계에서 잠자는 사람을 깨우면, 사람들은 대개 꾼 꿈을 기억한다. 즉 꿈은 렘수면 단계에서 보통 꾸게 된다.
몸은 잠들어 있지만 뇌는 활성화된 상태. 수면의 단계에서 렘수면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0프로 정도이다. 밤시간의 수면 중 최소 2시간 정도이다. '난 통 꿈이라곤 안 꿔' 꿈을 잘 꾸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밤마다 수면 중 최소 2시간은 꿈을 꾼다는 말이다.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
우리는 하룻밤 여러 번의 꿈을 꾸지만 실제 눈을 뜨고 깨어나서는 직전의 꿈을 주로 기억할 뿐이다.
지난 밤 내가 꾼 꿈처럼, 꿈의 내용은 대개 황당하고 현실의 법칙을 거스른다. 어처구니 없어서 웃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괜한 근심을 주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펼쳐진다.
예를 들자면, 내 꿈속에서는 고래가 날아다니고, 로켓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고, 입을 벌려 밀려오는 바닷물을 다 삼키기도 하고, 사인할 시간이 없다는 한 아이돌이 문득, 손목을 잘라 내게 준다....
낮의 빛 아래에서는 공상과학 드라마나 판타지 소설을 읽어야 가능할만한 수준의 상상력이 꿈속에서는 스스럼 없이 펼쳐진다. 마치 무의식은 밤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낮동안 꾹꾹 눌러온 기괴하고 비논리적인 상상력을 내 몸이 잠든 시간 활발히 깬 뇌속에서 팡팡, 폭죽을 터트리며 즐기는 것 같다.
꿈속의 나는 내 무의식만큼 그 모든 칼라풀한 꿈속 이벤트들을 즐기지는 못한다. 꿈속의 나는 반은 내 무의식만큼 어처구니가 없고, 또 절반은 현실의 나만큼 겁과 조심성이 베스킨라빈스 민트초코의 초코만큼 가득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개의 꿈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다, 잊히기 일수다. 강렬했던 꿈속 사건의 충격도 시간이 지나면 단물이 되어버린, 녹은 아이스크림 같아진다.
그런 보통의 꿈들 가운데 유독 튀는 꿈들이 있다. 유독 튀어서,
때때로 잠을 자다 벌떡 깨기도 하고, 몇날 며칠, 수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들이 있다.
그리고 꿈속의 내용이 다가올 현실을 예고, 암시하는 꿈들, 예지몽.
그런 꿈들은 자꾸 삶과 삶 저편을 곱씹게 한다.
예지몽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보여 주는 꿈"
기계 선별로 상, 중, 하, 사과를 선별하듯, 이 꿈에서도 예지몽에 적합한 꿈의 기준을 제시한 사람이 있다.
한스 벤더라는 독일의 초심리학자는 예지몽의 기준을 몇 가지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 정도를 말해보자면,
먼저 첫 번째, 꿈에서 본 내용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 누군가에게 그 꿈을 이야기하거나 기록해야 한다는 점.
즉, 꾼 꿈을 기록하거나 누군가에게 말해서 꿈의 내용이 실현 되기 전에 어떤 '증인'이나 내용을 뒷받침할 '증거'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두번째는, 꿈속의 내용이 우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 정도의 어떤 특정한 디테일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
이건 꿈속에서 강을 봤다고, 다음 날 아침 지하철을 타고 합정-당산 구간을 지나며 한강을 본다고 해서, 아, 내 꿈이 맞았어, 같은 정도로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예지몽을 꾸는 걸까. 아니면 우리 가운데 몇몇만 꾸는 것일까. 앞으로 일어날 일을 꿈속에서 상세하게 보고 듣게 된다면 어떨까. 가족이나 친구, 때론 모르는 사람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꿈속에서 알게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