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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래이 Sep 14. 2021

자동차 조립라인 노동자에서 계관시인으로, 필립 레바인

땀과 노동의 뜨거운 입김

시를 쓰기 위해 일하는 시인과 일을 포기하는 시인


문창과(문예창작학과) 졸업 즈음 학생들의 삶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진다. 

졸업 전 적당한 취업 자리를 찾기 위해 4년간 현실과 동떨어진 문창과 생활(술마시기, 괜히 남의 글 물어뜯기, 시시한 연애에 신파급 연애편지 작성, 없어도 될 위선의 고통느끼기, 유서쓰기, 유서읽기, 술마시기...)을 급박하게 정리하는 부류와 '등단'이라는 고시를 될 때까지, 밀어붙이려 엉뚱한 이유로 휴학을 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부류. 


문창과 재학 시절 담당과목 교수로부터 이렇다 할 칭찬이나 장래성에 대한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던 A. 형편이 어려워 학교 도서관 알바며, 여러 알바를 돌며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런 A는 졸업 전부터 구직활동을 했다. 어느 광고 회사에 취직한 그는 일을 하며 틈틈이 시를 써나가곤 했다. 아무도 없는 회사 사무실에서 야근을 할 때도, 잠시 머리를 식히듯이 한글 파일을 열고는 몇 자를, 몇 줄을 쓰고 지우곤했다. 


한편 재학 시절 소설이면 소설, 시면 시, '넌  등단 될거야'라는 교수와 동료 학생들의 평가를 심심치 않게 들어온 B. 이번에는 되겠지, 해마다 신춘문예에 응모를 해보지만 운이 없는 걸까. 한 학기, 또 한 학기, 졸업을 미루며 등단 고시를 준비했다. 더 이상 졸업을 유예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취업과 대학원 진학 사이에서 또 고민을 했다. 생활을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하고 시창작을 위해서는 본인만의 몰입의 시간이 필요하고...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대학원에 등록했다.


시와 노동은 나란히 함께 설 수 없는 적일까. 아니면 반드시 함께 가야할 동지일까. 왜 어떤 시인들은 일을 포기하고 왜 어떤 시인들은 일을 통해 시를 쓰는 것일까. 시 쓰기라는 노동은 무엇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 것일까.



"야간 근무 시인"


여기 한 시인이 있다. 가난한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 부부 사이에서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다. 그것도 좋지 못한 타이밍에 바로 디트로이트에. 그가 태어난 해는 1928년, 대공황을 코앞에 둔 바로 전해였고, 반유대인 정서가 강한 디트로이트에서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십대가 되지마자 자기몫의 일을 찾아 노동을 해야만 했다. 

노동자로서의 그의 삶은 열네 살부터 시작된다. 디트로이트 여러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비누공장, 음료수 공장, 변속기 공장, 캐딜락, 쉐보레 등 자동차 공장 조립 라인... 굉장한 공장 소음 속에서 일하며 그 소음을 이겨내기 위해 시를 읊었던 한 청년. 어느 평론가는 그를 "야간 근무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필립 레바인은 1928년 디트로이트,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때 아버지를 잃고 14세부터 디트로이트 여러 공장을 다니며 일한 그의 초년기 삶은 녹녹치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시쓰기를 잘했고 좋아했지만 십대 때 레빈의 관심사는 시쓰기가 아니었다. 아마 힘든 노동이 그의 열정을 잠시 억누른 것인지도 모른다. 열여덟 살부터 본격적으로 시쓰기를 시작하고 열아홉 살때 처음으로 학교 한 선생님께 본인의 시를 보여준다. 

"대단하구나."

선생님은 칭찬과 함께 Harper's 에 보내보라며 그에게 잡지 주소를 적어준다. 조언대로 시를 보내보지만 한달 후 그가 받은 답장은 "당신의 시는 우리 편집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 거절의 메세지였다. 그 선생님을 찾아가 왜 자신에게 그런 희망을 줬는지 묻자, 선생님 역시 잡지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했다. 

시를 직접 쓰는 다른 교사에게 들고가 레빈은 그의 시를 보여주었다. 그 교사는 시가 괜찮지만 '그렇게' 좋은 건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너처럼 무명의, 들어본 적없는 시인의 시는 아마 받고도 읽지 않았을 거라고 말해준다. 

그 순간 레빈은 퍼뜩 깨닫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시쓰기, 문학 역시 하나의 사업이라는 것을 말이다. 레빈은 그 후로 오랫동안 시출판에 관심을 끄고 살았다. 




What Work Is


We stand in the rain in a long line

waiting at Ford Highland Park. For work.

You know what work is—if you’re

old enough to read this you know what

work is, although you may not do it.

(...)

You love your brother,

now suddenly you can hardly stand

the love flooding you for your brother,

who’s not beside you or behind or

ahead because he’s home trying to   

sleep off a miserable night shift

at Cadillac so he can get up

before noon to study his German.

Works eight hours a night so he can sing

Wagner, the opera you hate most,

the worst music ever invented.

How long has it been since you told him

you loved him, held his wide shoulders,

opened your eyes wide and said those words,

and maybe kissed his cheek? You’ve never

done something so simple, so obvious,

not because you’re too young or too dumb,

not because you’re jealous or even mean

or incapable of crying in

the presence of another man, no,   

just because you don’t know what work is.


노동이 무엇인지


우리는 비를 맞으며 포드 하이랜드 파크

긴 줄 속에 서 있다. 일거리를 찾으려고.

당신은 노동이 무엇인지 알테지—이 시를 읽을 

만큼 성숙하다면 당신은 노동이 무엇인지 알테지

비록 일을 하지 않을지라도.

(...)

당신은 형을 사랑하고 

문득 홍수처럼 밀려오는 그를 향한 애정이 감당하기 힘들

당신 옆에도 뒤에도, 앞에도 없는 그

캐딜락에서 끔찍한 야간 근무 후 잠을 청하려 

집에 있을 테니까, 그래야 정오 전에 일어나 독일어를

공부할 수 있을 테니까. 야근 8시간을 일해야

그는 바그너를 부를 수 있다, 당신이 가장 혐오하는 오페라

존재하는 최악의 음악.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가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이후로 

그의 넓은 어깨를 다잡고, 눈을 크게 뜨고 그 말들을 한 이후로

아마도 볼에 입맞춤을 했을지도? 당신은 단 한 번도

무언가 아주 단순한 일을, 아주 명백한 일을 해본 적이 없지,

너무 어려서도 너무 모자라서도 아니지,

시기에 차 있거나 심지어 모질거나 다른 남자 앞에서

울지 못해서도 아니지, 아니야,

그저 당신은 노동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지.




땀과 노동의 뜨거운 입김


레바인은 가족 내 유일하게 대학 학위를 받은 아들이었다. 14세부터 시작된 그의 공장 노동자 생활은 대학 입학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웨인주립대학교 입학 후 아이오와 대학교로 학업을 이어갔다. 장학금을 받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입학해야하는 해 아이오와 대학교에 가지 못하고,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에서 한해 더 일을 해야했다. 그가 얻은 장학금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가버렸고 다음 해 레빈은 등록하지 않은 채 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멘토 시인도 만나고 점차 시인으로서의 이력을 쌓아가게 된다. 


1958년 캘리포니아주립대 프레스노 영문과 교수로 교단에 선 그는 1992년 은퇴 전까지 그곳에서 강의를 했다. 그는 1995년 <The Simple Truth>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두 번이나 내셔널 북 어워드를 받게 된다

( <Ashes: Poems New & Old>(1980) <What Work Is>(1991) 2011~2012년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시에는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 조립 라인에서 일했던 노동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시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불황의 디트로이트와 그 공장들에서 낮은 임금과 고된 삶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애환, 사회 비판과 비. rain, 그렇다. 그가 자주 다루길 좋아하는 소재는 비이다. 

예상하듯이, 그의 작품과 시작 스타일은 모든 비평가들의 입맛을 충족하지 않는다. 반복적인 주제와 강한 자전적 요소, 전통적인 시작법에 대한 회피와 다소 단순한 시작 스타일 때문이다. 몇몇 비평가들은 그의 시가 그저 줄바꿈한 산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몸 반 깨어있고 싶은 정신 반, 반반으로 그의 시를 읽으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이 하루의 노동 후, 그의 시 속에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세계의 노동자들, 공장 화로의 뜨거운 김이 느껴지고 그들이 흘리는 땀과 귀가 멍멍해지는 소음, 때로는 일거리가 없어 오랜 시간 비만 맞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의 허탈감... 레빈이 그려놓는 그 노동의 현장을 방문하고 잠시 살아내는 것으로 내 하루의 고달픔이 어쩐지 위로 받는 기분이다. 그의 시에는 화려한 수식도 그럴 듯한 이미지의 세계도 없다. 하지만 시 속에 그려진 거친 노동의 순간이 어떤 미사여구보다 더 내 하루의 고됨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듯 느껴진다.

망치를 꽉 쥔 노동자의 불쑥 튀어나온 힘줄처럼 정직한 노동의 순간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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