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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래이 Sep 23. 2021

텍스트-아트 뱅크시, 로버트 몽고메리 (1)

불과 빛 그리고 텍스트

시가 거리로 나온다면?


시를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에서 시를 읽을까. 도서관에서 혹은 카페에서, 침실에서, '시집'을 들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읽지 못할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읽는 시는 어떤 시일까. 한 페이지짜리 짤막한 시일까. 서너 장은 거뜬히 넘는 장편시일까. 

어떤 사람들에게 시는 '골방'에서 읽는 음습한 이야기일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모국어로 쓰여졌지만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이성적이지 않은 정신활동의 결과물일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사람들에게 시는 언제나 멀리 있다. 선물이 아니면 시집을 사지도 않고, 과제가 아니면 읽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시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시'라는 행위는 좀처럼 다가가기 힘든 영역이다. 입에 넣으면 스르르 녹는 사탕처럼 노력없이 단맛을 주지 않기 때문에.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 미지의 맛으로 남는 아리송한 어떤 덩어리, 어떤 사람들에게 시는 금단의 세계이다. 모국어 속의 '외국어'처럼 낯선 언어이다.

하지만 당신이 시를 찾아가는 대신, 시가 당신에게 온다면?

당신을 기다리다 지친 시가, 거리로 나와 당신을 맞는다면?





공공장소로 나온 시


여기, 거리로 나온 시가 있다. 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시가 있다. 때로는 낡은 트럭을 타고, 낯선 도시를 돌아다닌다. 수평선이 보이는 해변가에서 발견되고 길거리 빌보드 광고판, 맥주 광고와 나란히 서있을 때도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당신과 맞닥뜨리길 기다리는 시들, 로버트 몽고메리의 시들. 


로버트 몽고메리는 1972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다.  바로 그와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말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 조각가, 거리 예술가, 개념 미술가, 상황주의자, 펑크 아티스트, 반달(공공기물파손자), 텍스트 아트 뱅크시.... 어떻게 그에게는 이렇게 다양한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 텍스트 아트계의 뱅크시라니. 

뱅크시는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신원을 알 수 없는 거리 그래피티 예술가이다. 스텐실 기법을 이용해 무단으로 담벼락, 건물 벽 등에 풍자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한번쯤은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몽고메리의 작업을 들여다 보면 그 별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어둑한 밤, 길거리 빌보드 광고판이나 건물 광고판 등에 무단으로 자신의 시를 게재했다. 그때문에 몇 번 경찰차에 오르기도 했다. 몇몇 광고판 주인들은 도리어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시를 버스 정류장 광고판, 터널 광고판, 건물 외벽, 한적한 바닷가 등에 설치한다. 

1960년대 상황주의자 텍스트 아트 운동에서 비롯된 그 시작업의 재료는 심미적 언어가 아니다. 전통적 방식으로는 그의 시를 읽을 수 없다. 오히려, 그의 시는 전통적인 방식의 접근을 거부한다. 빛과, 불, 텍스트, 그리고 공간과 공공 장소의 사람들, 그것들이 그의 시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광고판을 점령한 시, <Billboards> 


그의 작업은 크게, 불을 이용한 "불의 시"(Fire Poems)와 재활용 태양빛을 이용한 "빛의 시"(Light Poems) 그리고 길거리 광고판이나 건물 광고판에 작업한 "빌보드"(Billboards)가 있다. 빌보드 작업은 2004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홈타운 쇼디치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영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빌보드 작업을 이어갔다.  


빌보드, 광고판의 광고 코드는 단 몇 초, 짧은 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그런 광고판에 시작업을 하는 몽고메리는 광고판을 활용하지만 광고 코드와는 상반되는 방식으로 시를 쓴다. 즉, 시를 설치한다. 

그의 시는 광고 문구처럼 짧지도, 기억하기 쉽지도 않다. 오히려 그는 광고판에 적합하지 않은 다소 긴 시를 쓴다. 하지만 그의 시를 읽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의도가 통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이유에서 이런 광고판을 목표로 시작업을 하기 시작했을까. <Dazed>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그게 광고가 아닌 걸 또 그래피티도 아닌 걸 알아요. 그리고 그걸 읽는 데 예술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고요. 전 보통의 사람들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요. 매일 일터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문득, 이 이상한 텍스트를 보게 되는 거죠. 제 관심사는 이런 사람들에게 가닿는 것입니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 플랫폼, 기차역....잠시 기다리는 시간은 무언가를 읽기에 좋고, 다른 곳에 적당히 정신이 팔리기에도 좋은 시간이 아닐까. 버스가 오는 방향을 덩그러니 바라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매일 보는 광고판의 익숙한 광고를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시간. 그런 '틈'에 놓여진 몽고메리의 시. 출근길에 마주하는 그의 시는 퇴근길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출근과 퇴근, 아침과 저녁, 서로 다른 시간과 상황 속에서 마주치는 그의 시는 다른 여운을 품지 않을까. (이어서 2부에 계속)



사진 출처: 로버트 몽고메리 사이트: https://www.robertmontgome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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