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래이 Sep 30. 2021

지성과 감성의 절묘한 줄타기, 사라 망구소

고요한 긴장

사라 망구소의 첫 시집


첫인상이라는 오해 혹은 이해


첫인상을 믿는가. 데이트할 때, 회사 구직 면접 때, 연인의 친구나 가족을 만나러 갈 때...첫인상은 우리가 상대를 판단하는, 또 상대가 우리를 판단하는 많은 척도 중 하나가 된다. 거듭, 자신의 내재된 능력이나 매력을 내보일 수 없는 일회성의 관계에서 이 첫인상이야말로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법의 키워드가 아닐까.  "눈빛을 보면 난 알수가 있어 아무런 말도 필요치않아 이런게 아마 사랑일꺼야 첫눈에 반해버린 사랑"  지나간 시절의 유행가 <첫인상>이라는 노래 속 가사처럼, 첫인상은 어떤 설명마저 거부한다. 

이런 불가사의한 첫인상이라는 '오해'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더 좋아하고 또 더 싫어하게도 된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시에도 첫인상이라는 것이 있다. 낯선 시인의 어느 시를 읽고 거기서 느끼는 최초의 감상, 제목에서부터 첫 한 두연을 읽어나가는 사이에 느끼게 되는 감정...처음 읽는 시의 첫인상은 사람대사람의 첫인상과 비슷하다. 어떤 시들은 어떤 사람처럼 만남의 빈도와 상관없이 첫인상에서 그 잠재성을 믿어버리게 된다. 

아마도 매해 출간되는 미국 베스트 시선집에서 처음 그녀의 시 한 편을 읽었을 것이다. 지금은 기억 나지 않는 그녀의 어떤 시 한 편이 계기가 되어 그녀의 시집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하지만 첫인상, 처음 그녀의 시를 읽고 난 후 그 느낌만은 분명히 기억난다. 차가운 겨울 강물에 낀 살얼음처럼 불안스러우면서도 명징한 세계. 무언가 깨질 듯한 유약함과 거기에 공존하는 단호함에 이끌렸다. 그랬기에 망설임없이 당시 출간된 그녀의 모든 책들을 사보게 되었다. 





 우리가 놓치는 것 What We Miss 


누가 목숨을 구하는 일이 쉽다고 했는가. 당신은 붙을 지도 모를 구직 면접 중에, 가장 큰 단점을 묻는 질문에 막 대답을 하는데, 너무 조심성이 많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17층 창밖으로 신호를 무시하고 거리를 횡단하는 고양이를 본다. 당신이 구해줄 수 없는 매 순간마다 고양이를 계속 보게 된다면? 결투나 마라톤보다 실패는 이런 것에 가깝다. 모두 구할 수 있지만 적기가 아니면 안 된다. 사랑하는 당신의 연인이 눈부신 빛에 눈이 어두워 홀로, 길을 건너는 것을 보려고 매 순간 당신은 질문에 대답 중이고, 교회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시_사라망구소, 번역_뚜벅




사라 망구소 


1974년 미국 태생 사라 망구소는 이전 작품들 보다 이후가 더욱 기대되는 중년 작가이다. 그녀의 첫 시집 <The Captain Lands in Paradise> 는 2002년 출판되었다. 첫 데뷔 시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시집 전체에 내재된 시인의 목소리에는 일관성과 더불어 그녀 자신만의 어떤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했다. 차분한 이성적인 목소리 톤으로 그려내는 자각몽같은 분위기의 시들.  

시인, 작가로서의 그녀의 경력은 아직 진행 중이고 미래가 더 궁금한 유망한 작가이지만 그녀 시 분위기, 적어도 데뷔 시집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그녀의 과거 질병 이력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바드 대학 재학 중 그녀는 희귀한 병에 걸리고 만다. 희귀한 병이라 제대로 된 병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chronic idiopathic demyelinating polyradiculoneuropathy. 만성 특발성 탈수초성 다발신경병증. 하지만 이 병명도 애초에 잘못 진단된 것이었다. 그녀의 에세이집 <The Two Kinds of Decay>(두 가지 종류의 부패)는 희귀병을 앓던 시절의 삶을 담고 있다. 


"나는 느리게, 뻣뻣하게 걸었고 세수를 할 때마다 거의 익사 지경이었다. 발은 무감각했고 손 역시 차츰 무감각해졌다. (..)  내 혈장은 말초신경 세포들을 파괴하는 항체로 넘쳐났다. 그렇기에 그것들 역시 버려졌다. 50번 이상 내 혈장은 교체되었고 치료 효과는 새 혈장이 항체로 채워질 때까지 지속되었는데, 이틀간의 치료로 몇 달을 지낼 수 있었다. 기계가 내 혈액을 맑게 하는 데 4시간이 걸렸다. 8온스의 내 피가 원심분리관으로 들어가면 기계가 혈액을 빠르게 회전시켜 네 개의 층으로 혈액을 분리했다. 내 몸의 혈장은 밀봉용기로 흘러들어 가고 내 세포는 생리식염수와 합성 알부민(혈장 단백질), 그리고 다른 혈장 단백질을 갖고 있는 새 동결 혈장과 섞였다. 새 혼합물은 내 몸으로 재주입되었다. 그러면 기계는 또 내 피 한 컵을 빼내고 재주입하고 또 빼내고 재주입하고 또 빼내고, 위의 과정을 반복했다. 이 과정은 신선한 혈장이 혈량을 충분히채워 더 이상 피를 정화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번역: 뚜벅)

그녀의 치료는 이후로 5년간 지속되었다. 회복과 악화의 과정을 반복하며 이십대 젊음의 시간을 병원, 의사, 간호사들과 보내야했다. 원인을 알 수 없게 찾아온 병은 어느 날 차도를 보이며, 완쾌의 사인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언제고 예상치 못하게 다시 병이 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그런 삶에 대한 불확실성, 불안감이 그녀 시에 녹아 든게 아닐까. 그녀는 젊음의 절정 이십대 대부분의 시간을 삶에 대한 기대보다도 죽음에 대한 기대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지 모른다. 피를 정화하고 일상 생활이 가능한 몇 주, 제한된 시간 동안은 여느 20대와 비슷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다시 병원 침대에 누워 피를 갈아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걷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병의 원인도, 병명 자체도, 또 회복 여부 마저 모든 게 불확실한 시간을 그녀는 어떻게 견뎌 냈을까. 

시 속에서 고요한 긴장은 그런 시간의 견딤에서 오는 것일까.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흘러가는 그녀의 시에는 팽팽한 긴장이 흐린다. 죽음을 이야기 할때 조차 그녀의 시어는 아름다운 수학방정식처럼 느껴진다.

 죽음은 환한 방정식들을 덮어 쓴
 한 마리 말의 형태로 온다 

 

인용한 구절은 시 "기수" 중 한 구절이다. 혹은 이런 상상력은 어떤가. 

                

알레고리 속을 걸어 들어가
 한 무더기 조화와 오렌지를 얹은 케이크가 있는
 유람선으로 나오는 일은 좋다.
 

시 "알레고리 속을 걷다"는 이런 기발한 상상력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강렬한 환상의 이미지도 그녀의 혀를 거쳐나오면 한 면은 불, 한 면은 얼음으로 이뤄진 얼음-불기둥으로 지어진 듯 긴장의 상태를 지속한다. 그녀의 시가 품고 있는 고요한 긴장감이라는 첫인상에 나는 끌렸다.그녀의 시들은 친근하지도 편안한 어떤 기분을 주지도 않는다. 그녀의 시는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이다. 지성과 감성, 그 둘 사이 놓인 줄은 팽팽하고 그 팽팽한 긴장감에서 줄타기를 하며 우리를 매혹하는 그녀의 시적 매력은 거부하기 힘들다. 




미지의 시인을 찾아가는 나침반


우연하게 접한 시 한편으로 우리는 한 시인을 발견하게 된다. 한 시인의 발견은 한 미지의 대륙의 발견처럼 벅차고 설레는 일이다. 탐험가들에게 나침반이 필요하듯,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시인을 찾는 데는 그의 시가 필요하다. 시인의 시는 언어 항로를 보여주는 지도이자 낯선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나침반이다. 당신은 어떤 시의 나침반으로 어느 시인을 발견했는가. 어디에 닿았는가.






작가의 이전글 텍스트 아트 뱅크시, 로버트 몽고메리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