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이라는 정체성
시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시가 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내게는 이 질문들이 우로보로스적인 질문처럼 느껴진다. 우로보로스(ouroboros)란 무엇인가. 우로보로스는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을 일컫는다. 제 꼬리를 악문 뱀은 마치 반지처럼, 하나의 고리가 된다. 꼬리를 악물면 악물수록 고리의 반경은 좁혀지고 입구와 출구는 더욱 단단하게 조여진다.
틈틈이 시집을 읽고, 그만큼 틈틈이 시를 쓰던 시절에도 시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처음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일기 쓰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시절, 매일 일기를 써내고 담임 선생님의 '확인'과 한 줄 평가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 친구와 싸우지도, 넘어지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어느 날의 일기를 메꾸기 위해 시를 썼다. 주제는 키우던 강아지, 옆집 장미, 나무들....
어린 시절 내게 시는 무언가 '짧은 것'을 뜻했다. 짧게 써도 되는 무엇이었기에 하루치 일기를 대신하기엔 아주 그만이었다. 그렇게 서너 연으로 된 일기시를 쓸거리가 없을 때마다 쓰곤했다. 그게 나의 첫 시쓰기 과정이었다.
일기 검사에 일기를 쓰지 않는 것으로 반항하거나, 정식 일기를 쓰는 식으로 순응하는 대신, '시 일기'라는 일기 형식을 빌린 시쓰기로 규율에 내성적인 반항을 시도한 어린 시절의 나여.
더 이상 일기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시를 쓰고 있었다. 시가 무엇인지, 무엇을 쓰는 것이 시인지 몰랐지만. 어쩌다 흥얼거리게 된 노래를 어떤 이유에서 흥얼거리게 되었는지 알아내려는 시도처럼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한 이 질문에 자신만의 시학을 세운 시인이 여기 있다. 바로 레이첼 주커이다.
레이철 주커는 미국 뉴욕 태생의 시인이다. 10여권의 책을 출판한 시인이자, <Commonplace>라는 팟캐스트의 기획자이자 호스트이다. 먼저 그녀의 시와 시학에 대한 접근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들이 있다. 바로 그녀가 세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이 자신의 시 쓰기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주커는 세 아들의 어머니이면서 소설가 아버지와 스토리텔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기도 하다. 이 스토리텔러 집안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정체성 역시 그녀의 인터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나, 스토리텔러인 어머니와 주커의 관계는 '어머니'로서의 주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어머니 다이앤 워크스타인은 1967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시의 공식적인 스토리텔러였다. 정기적으로 공원 무대에서 수 백명의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기도 했고, 라디오 쇼 역시 진행하기도 했다. 다수의 책을 집필한 그녀는 뉴욕시 스토리텔링 센터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중국, 아이티, 아프리카 등으로 설화와 전설을 채집하기 위해 여행을 자주 다니기도 했다. 주커 역시 어린시절부터 아이티와 페루 등으로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 채집 여행을 떠났다.
부모님 모두 작가이고 또 활발하게 활동한 스토리텔러 어머니를 둔 주커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주커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예측불가능하고, 경쟁심이 강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애가 강하고, 무서운" (MOTHERs,2013)사람이었다. 외동딸보다 자신의 글쓰기를 우선시했고, 차가웠던 어머니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와 상반되는 어머니상, 슬하에 많은 자식을 두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다정한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에서 이 '모성'이 그녀의 글쓰기에서 중요한 한 부분이 되는 것일까.
"아이를 가진 이후로,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내 글쓰기는 대체로 내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아이를 갖기를 원했다. 나는 임신에 대해서도 썼고, 출산과 모유, 애착에 대해 썼다. 그리고 나는 생물학적인 결과로, 아이를 갖는 것으로 생긴 정체성과 주체성의 위기에 대해 아주 고심했다. ... 그렇기에 아이들이, 또는 모성이 내 글쓰기의 주제이다. 또한 그것들이 글쓰기를 어렵게 만든다. 그것들이 내 글이면서 장애물이다. "(Lunch Ticket 인터뷰 중)
주커는 딸로서, 어머니로서 지속되는 삶 속에서 변화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세 아이를 낳은, 시를 쓰는 어머니 또는 어머니이면서 시인인 자신의 삶이 육아라는 끝이 없는 노동-사랑인 삶의 여정에서 어떤 물음으로 지속되는지, 이어지는지 탐구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솔한 시선은 모성을 향한 뻔한 묘사나 경이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모성의 경험이 시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녀의 시학, <틀림의 시학(The Poetics of Wrongness)>은 마흔 셋, 세 아들의 어머니인 시인이 마주하게 되는 무수한 '그릇됨'과 '부적당함'에서 시작된다. (이어서 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