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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래이 Oct 07. 2021

여백의 미_ W.S.머윈

추운 겨울 날이었다. 

친구에게 빌린 카메라를 들고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여든을 넘기신 할아버지는 정정하신 편이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반나절 나들이용으로 빌려 탄 승합차가 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 몇 주 병원에 머물다 집으로 오셨지만 노년의 회복은 예전같지 않았다. 큰 사고가 아니었기에 부상도 깊지는 아니었지만 예전보다 걸음에 힘이 더 들어간 듯 보였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아침, 오후 회복을 위해 할아버지는 산책을 하셨다.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서는 할아버지를 따라 나도 함께 길을 나섰다. 작동이 서툰 로모 필름 카메라와 함께 말이다. 

집 뒤편으로는 수명이 삼, 사백 년은 족히 될 거대한 당나무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그 큰 밑둥과 멀리 뻗어나간 숱한 가지들에 압도당했다. 그 당나무가 선 길은 오르막이었다. 그 오르막을 오르면 다시 조금 평탄한 길이 나오고 그 길 위로 할아버지의 사과밭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오전 첫 산책 코스는 그 사과밭이었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앞서가고 뒤따라가는 나는 찰칵, 찰칵 셔터를 눌렀다. 필름 카메라였기에, 잘 찍히고 있는지, 초점은 맞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앞서가다 간간히 뒤를 돌아 나를 보셨다. 저 녀석이 뭐하나, 싶은 무심하면서도 다정한 눈빛. 

"할아버지, 거기 잠깐만 서 보세요" 당나무 밑에 왔을 때,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오르막 길에 멈춰 선 할아버지는 길게 숨을 내쉬셨다. 그 날숨은 추운 아침 공기 속으로 하얗게, 짧게 길을 내고 사라졌다. 찰칵. 찰칵. 사진이며, 포즈며 아직 물정모르는 아이처럼, 할아버지는 담담한 얼굴로 멈춰서보라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찰칵. "할아버지 웃어보세요" 아침부터 졸졸 뒤따라오며 황당한 주문을 하는 손녀딸이 진정 웃기신지 할아버지는 환희 웃으셨다. 

그 추운 겨울날 지팡이에 의지해 오르막길을 오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 앙상한 사과나무 가지 사이로 나를 돌아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내가 사진으로 담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알게 모르게, 나는 그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었다.



유리건판 사진 _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진가


(...)

다행히도 유리판 위에 새겨진 것들을 알아본 이가

전부 스튜디오로 가져왔다

글자라고는 없었지만 유리 위로

빛의 한 얼굴 한 얼굴이

나타났다 누군가 바라보기도 전에

그들로 이어지는 긴 자갈길

또 다른 세기에 꽃을 피운 사과나무들

예전 집 담 앞, 백합은 햇빛 아래 열리고

전쟁 전 낡은 돌계단

며칠째 보이지 않는, 구부정한 모습의

후드 아래 분간이 어려운 그는

사라져버렸다


(W.S. Merwin_ 시, 뚜벅_번역)


"사진가"는 윌리엄 스탠리 머윈의 시선집 <시리우스의 그림자>에 실린 시 중 한 편이다.  W.S 머윈은 1927년 미국 태생의 시인이다. 2019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왕성한 시작 활동과 번역을 했다. 머윈은 살아 생전 다수의 유명 문학상을 받으며 문학적 성과를 인정 받았다. 2010년 미국 계관시인으로 인명되고, 풀리쳐 시 부문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이 미국 문학계 거물 시인이 우리에겐 번역된 책이 없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정도다.

"사진가" 시는 한 사진가의 죽음 이후 그의 집을 비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사잔가의 집을 비워내기 시작하면서 인화하지 않은 유리건판 사진들을 한 아름 발견한다. 집안의 여러 잡동사니와 함께 사진은 수레에 실려 버려질 위기에 처해진다. 하지만 누군가, 그 유리건판에 새겨진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아본 이가 있다. 스튜디오로 그것들을 가져와 보자 거기, 한 유리건판에 보이는 이미지가 있다.

위의 번역한 부분은 이 시의 마지막 연이다. 전쟁 전에 찍힌 아주 오래된, 골동품 유리건판 사진 속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다. 사진 속 사과나무 꽃들은 다른 세기에 피어나 흔들린다. 지금은 없는 예전 집 담 곁에 핀 백합꽃들, 오래된 돌계단이 사진에 보인다. 그리고 거기, 한 얼굴이 보인다. "며칠째 보이지 않는", "후드 아래 분간이 어려운" 한 인물, 바로 죽은 사진가의 얼굴이다.

죽은 사진가의 집을 치우는 장면에서 시작한 시는 이렇게 한 사람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죽은 이의 빈집을 치우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사진가임을 알 수 있다. 우연히 그의 집에서 발견한 골동품 유리건판 사진 속에서, 다른 세기의 풍경을 엿보게 된다. 사과나무와 백합꽃들, 돌계단....그 풍경 가운데 오래 전, 아마도 젊은 시절의 사진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보인다. 사진가의 부재에서 출발한 시는 다른 세기에 존재하는, 하지만 현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사진가의 부재를 조명하며 끝이 난다. 

머윈의 시세계는 금욕적이고, 명상적이다. 그의 시 중에는 하이쿠 같이 짧지만 여운이 긴 시들이 많다. 그는 번역가로서 일본 에도 시대 시인 요자 부손의 하이쿠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촘촘한 말들로 빈틈 없이 쓰여진 시가 아니다. 대신 그의 시는 최소한의 말들로 더 버릴 것이 없는 뼈대로 듬성듬성 이루어져 있다. 그 단촐한 말들의 빈 공간은 시를 읽는 순간 독자에 의해 채워진다. 검소한 말들의 빈 공간에서 바람과 봄과, 비, 그리고 기억, 시인이 보는 세계가 보인다.   




한 사람의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 될까. 무엇으로 되새김 될 수 있을까. 특히, 이미 죽어버린 한 사람의 존재는. 머윈의 시 속 사진가의 죽음은 어느 시절 찍힌 사진 한 장으로 더욱 분명해진다. 이제는 그의 존재보다 그의 부재가 더욱 도드라진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기억, 그리고 그가 쓰던 물건들과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한 사람의 죽음 후에 그와 함께 했던 기억들은 잔류하는 어떤 공기처럼 남은 사람들의 삶을 채운다. 어떤 순간은 잊고 싶지 않아서, 또는 너무 쉽게 잊어버릴 것 같아서,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 믿어서 또는 변할 것이 분명해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긴다. 우리 사랑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어느 커플의 사진처럼, 이 순간의 행복함에 그저 취한 이들처럼, 다시 오지 않을 첫 걸음마를 막 떼는 아이의 한 순간, 사진에는 늘 상반되는 욕망이 담긴다.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순간도 그랬을 것이다. 여든을 넘긴 할아버지의 삶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할아버지와 함께 한 추운 겨울 아침의 산책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소망. 카메라가 있든 없든 한결 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내 삶 안에 간직하고 싶은 욕망.

할아버지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앙상한 사과나무 가지 사이로 지팡이를 짚고 선 할아버지 사진을 볼 때면 그날 아침의 추위, 할아버지의 입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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