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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Nov 17. 2023

오늘도 다시 결심해내며.

 배가 아파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들이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어제 매운 것을 먹었나. 아니면 혹시 밀가루를 잔뜩 먹었던가. 추워진 날에 라떼의 유혹을 못 이긴 것도 아니다. 전날의 기억을 찬찬히 둘러보아도 먹는 걸로는 문제가 없었다. 다가올 병원 일정을 확인한 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2주 남짓 남겨두었지만 다가올 정기 검진에 가서 나의 몸 상태에 듣는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머릿속에서 병원에 관한 생각을 지우려 할수록 오히려 강렬히 남는다. 오히려 출근해서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할 때가 마음 편한 주간이다. 


 연약한 나의 마음의 위로를 위해 책을 들었다. 허지웅 작가의『살고 싶다는 농담』이었다. 병원에서의 생각과 기록을 남기자라던 나의 다짐은 어렵고 귀찮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죽음의 문턱을 다녀왔던 경험을 잊고 살고 있는 나에게 적절한 긴장감과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기엔 제격이다. 지금이야 좋아하고 힘들 때 펴보는 책이 되었지만, 이 책과는 나는 혼자만의 밀당 스토리가 있다.


 림프종 진단을 받고 몇 번의 항암치료를 하던 중, 허지웅 작가의 림프종 진단 소식을 들었다. 일상이 빼앗긴 동지가 생겨 안타깝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했다. 또한 병문안을 오신 분들에게 나의 병을 설명하기도 용이했다. '제가 걸린 암은 혈액암 중 일종으로, 종류가 크게는 어떤 것이 있는데 그중 …….'라며 길게 이어가던 설명이, '허지웅 작가가 걸린 암이에요.'로 간결해졌다. 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엔 상황이 달라졌다. 심장보다 큰 종양과 폐로 전이까지 이뤄졌던 나는 항암제와 방사선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꺼지지 않아 추가 치료를 진행했고, 허지웅 작가는 이 책을 들고나왔다. 같은 환자가 병을 이겨내 축하해 줘야 할 일이었지만 쉽사리 응원과 축하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아이 같은 질투와 부러움만 있었다. 작가의 몸 상태를 정확히는 몰랐지만 가볍게 넘겨짚으며, 'R-CHOP 6번 맞고 괜찮아졌나봐.'라며 그의 시간과 고통을 무시했다. 나는 그 치료를 이후 항암치료가 더 있고, 치료를 받아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몸이라며 한탄과 함께.


 책이 출간된 지 1년이 지나 어머니께서 주문한 택배에 함께 온 이 책을 발견했다. 힘든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을 때여서 그랬는진 몰라도 책을 집어 들어 금세 다 읽어냈다. 몇 장 지나지 않아 만난 문장이 비슷한 경험했음을 느꼈다. 「병동에서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 정말 사실적이고 무미건조한 말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죽음을 저 멀리 미뤄둔 현대사회에선 와닿지 않는 사실이다. 잠들기 전, 하루 종일 맞고 있는 수액 폴대를 끌고 달그락 달그락거리며 병동 안을 몇 바퀴 도는 것은 나의 루틴이었다. 매일 많은 양의 수액을 맞아 3-4kg씩 부어있었기에 적당히 걷고 나서야 누워야 쉽게 잠이 들었다. 환자의 약이 투여 완료되었다는 기계음이 호실마다 나는 병동의 낮의 모습과 일찍 잠을 청해 조용한 저녁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9시면 대부분 병실의 불이 꺼져 조용히 잠을 청하시지만, 항암제 투여 이후 상황이 안 좋아지신 분들은 처치실에서 바이탈 체크를 하며 응급처치를 하는 분들, 끝내 숨을 거두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리고 들려오는 가족들의 가슴 아픈 흐느낌과 통곡. 애써 고개를 돌리고 방으로 향한다. 눕기만 하면 자는 나에게도, 나의 마지막을 떠올리게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어렸을 적부터 죽음에 대해 많은 호기심과 공포가 있던 나에게 덜컥 다가온 암은 머릿속을 '죽음'으로 가득 채웠다. 내 삶의 단위가 3번의 항암제 투여 이후 결과를 듣는 기간으로 바뀌었다. 2달 정도마다 반응 평가를 위해 CT/PET-CT 촬영을 진행하였다. CT 찍을 때는 조영제로 인해 후끈거림을 동반할 때마다 부작용이 없길 바랐고, PET-CT 촬영 시엔 20-30분 걸리는 시간 동안 결과가 나쁘면 어쩌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뾰족한 수도 없었으면서. 그렇게 3일 후 병원을 방문해 교수님 진료실 앞에서 내 차례 호명되길 기다린다. 몇 분 전에 화장실에 가 설사하고 왔음에도 장이 꼬이고 손발은 하얗게 색을 잃어가며 차가워진다. 드디어 내 차례다. 간호사분의 얼굴부터 본다. 이미 꽤나 오래 본 사이라 평소 방긋 웃으면서 맞아주시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제대로 눈을 맞추지 않으신다. 교수님도 마찬가지다. '잘 지내셨어요?'라고 말씀을 먼저 해주신 경우엔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결과지만, 말씀 없이 모니터를 보고 계신 날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결과를 듣는다. 이 순간만큼은 교수님이 나에게 있어 신이다. 교수님의 한마디에 씻은 듯이 괜찮아지거나, 한없이 비관에 빠진다. 그렇게 나는 '죽음'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저 죽음이라는 결론에만 몰두해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결론 앞에 다른 것들은 한없이 사소한 소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다. 결론에 매달려 있으면 속과 결이 복잡한 현실을 억지로 단순하게 조작해서 자기 결론에 끼워 맞추게 된다. … 이와 같은 생각은 정작 소중한 것들을 하찮게 보게 만든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삶을 망친다. … 하지만 그렇게 다른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동안, 나는 죽음 이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 나는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고 말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다. 」


 위의 문장들을 만나며 많은 위로를 받았고, 죽음이란 결론의 늪에 빠질 때면 다시금 펴보게 되었다. 아직도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지만 그토록 죽음이 무서운 이유를 다시금 되뇌인다. 지금 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별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니까. 다시금 만날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토록 죽음을 피하고 싶었는데 그 하루를 죽음을 생각하며 살기엔 안타까우니까. 내 사람들과 함께하고 웃으며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자는 결심을 다시 또 해본다. 책 중간에 소개된 니부어의 평온을 비는 기도로 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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